빛을 잃을뻔 한 순간에도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야.
어둠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둘째를 임신한지 5개월 차에 접어든 어느 날 아침. 집을 나서는 남편의 현관문 여는 소리와 이내 스마트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에 잠이 깼다. 손을 베개 밑으로 넣어 핸드폰을 집어 들자마자 바로 알람이 울렸다. 알람을 끄고 날씨부터 확인했다. 커피 장사는 날씨에 민감하기 때문에 전날 밤 확인을 하지만, 잠에서 깨면 다시 업데이트된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오늘의 날씨는 맑음.
그런데 오른쪽 눈에 뭐가 붙은 것일까. 왼쪽 눈을 손으로 가려보니 오른쪽 눈으로 보이는 스마트폰 화면이 반이나 잘려 있는 것이 아닌가. 다시 오른쪽 눈을 손으로 가렸더니 스마트폰 화면이 온전히 다 보인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시 왼쪽 눈을 가려보았다. 역시나 마찬가지. 침대에서 빠져나와 화장대 거울 앞에 얼굴을 갖다 댔다.
눈에 뭐가 붙었나? 아닌데, 아무것도 없는데....
침대에 걸쳐 앉은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네이버 검색창에 '한쪽눈이 까맣게 안 보이는'이라고 타이핑을 하고는 돋보기 아이콘을 눌렀다. 스크롤을 내리고 내리는데.... 여러 글에 공통적인 단어가 보였다.
'망막박리'
몇 개 의학 관련 기사와 개인 블로그 글들을 하나씩 확인하면 할수록 점점 내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망막박리는 응급 수술을 요하는 매우 위급한 질환'이라는 공통된 설명이 있었지만, 아직 단정 지을 순 없었다.
일단 첫째부터 챙겨야 했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나는 아이를 깨워 밥을 챙겨 먹이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내가 지금 오른쪽 눈이 잘 안 보이는데, 9시 되면 안과 가보고 전화할게. 혹시 자기가 조퇴해야 할 수도 있으니깐 그리 알고 있어."
"뭔데? 왜 그러는데?"
"몰라. 일단 병원에 가보고 전화할게."
8시 45분에 나는 안과에 도착했다. 아직 뱃속 아기의 성별도 모르는 상황.
'반짝아, 별일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속으로 아이와 나를 동시에 위로했다.
오전 진료가 시작되고, 의사 선생님 앞에 앉은 나는 간단히 증상을 말씀드렸고, 임신 중이라는 말도 인지 않았다. 산동제를 넣어 동공을 확장한 다음 망막을 봐야겠다고 하셨다. 안약을 넣고 10분 뒤 의사 선생님은 내 눈을 면밀히 관찰하셨다. 그리고는 화면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지금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세요. 여기 보시면 망막이 떨어져 펄럭거리고 있어요. 긴급으로 수술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네... 그런데 선생님 제가 지금 임신 5개월이거든요. 수술을 할 수 있나요?"
"무조건 수술은 해야 합니다. 일단 보호자분에게 연락하세요. 괜찮을 거니 걱정 마세요."
언제부터 흘렸는지 모를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진료 후 간호사분이 근처 대학병원 몇 군데를 알려주시고 진단서를 챙겨주셨다.
인사를 하고 병원을 빠져나온 나는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고, 2시간 뒤 우리는 목동에 있는 이화여대병원 응급실로 들어섰다. 남편의 손에는 입원 준비물이 들려있었다.
몇 가지 간단한 서류를 작성한 후 응급실을 통해 바로 안과로 이동했다. 몇 개월 전부터 예약을 하고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수십 명의 환자들을 제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동네 안과 병원에서 진단받은 대로 망막박리가 맞았다.
"저녁 7시쯤 수술 잡겠습니다. 나가셔서 입원 절차 밟으세요."
입원실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몇 가지 검사를 마쳤다.
남편은 첫째를 하원시켜야 했기에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그 시각, 엄마는 부산에서 올라오는 KTX 안에 계셨다. 엄마가 집에 도착하시면 그때 남편이 다시 병원으로 오기로 했다.
임신 5개월이라 혹시 몰라 국소 마취만 하고 수술을 진행한다고 하셨다.
"그런 경우가 있었나요?"
"많습니다."
겁에 질린 내게 무미건조하게 답하신 의사 선생님의 그 말이 '별로 안 아픕니다.'와 같은 뜻인지 아닌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안전이 걸린 만큼, 그래도 전신 마취 하겠다는 말을 엄마인 내가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술 시작 30분 전에 남편이 도착했다.
내가 받을 망막박리 수술법은 공막돌륭술로, 안구 외부에 실리콘 밴드를 조여 떨어진 망막이 원래의 자리로 이동하여 고정되도록 돕는 수술이며, 추후 필요시 망막 유착을 위해 가스를 주입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떨어진 걸 붙인다는 간단한 의미로 이해했지만, 무슨 가스를 주입하는 건지, 눈 안으로 어떻게 밴드를 집어넣겠다는 건지, 나에겐 온통 의심스럽고 무서운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수술대에 올라 무영등을 바라보고 누웠다. 나를 진료했던 교수님과 레지던트로 보이는 여자 의사 한 분이 들어오셨다. 마취까지는 참을만했다. 문제는 그 뒤로부터 펼쳐진 지옥의 불구덩이 같은 시간들이었다. 라섹 수술받을 때 느꼈던 고통에 가까운 불편하고 불쾌한 느낌의 대략 이 천 배쯤 정도 되는 통증이었다. 더 힘든 것은 두 사람의 대화였다.
"아니, 그렇게 하면 어떡하나? 환자 눈이 어떻게 되겠어."
"그게 아니라고. 다시 해."
"그만, 그만, 그만! 큰일 날 뻔했잖아!"
교수님은 내게도 화를 내셨다.
"환자분, 움직이지 말라니까요!"
"큰일 납니다. 가만있으세요!"
콱 그만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할 수 있는 건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다. 지금이라도 전신마취를 해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내가 고통에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칠 때마다 임신한 배가 강하게 수축되는 것을 느꼈다. 안과 밖으로 고통스러운 두 시간이 흘렀다.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된 내가 수술실에서 나오자 남편이 달려왔다. 남편의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남편이 말을 잇지 못했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아 보였다. 울고 있었나? 의심했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으로 눈을 감았다.
밤 9시가 넘어 입원실로 들어왔으나, 간호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눕지 말고 엎드리세요. 들으셨죠?"
"아... 네... 근데 제가 임신 중이라..."
"3일 동안 엎드려 계셔야 합니다. 안 그럼 망박이 떨어질 수 있어요. 어쩔 수 없어요. 엎드려서 고개를 숙이고 계세요. 무릎을 꿇고서라도 엎드려 계셔야 해요."
간호사가 나가고, 남편은 나를 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더 당황스러운 건 나였다.
나는 배를 완전히 침대에 대지 못하고 네 발 달린 짐승처럼 두 무릎과 두 팔로 침대를 지지한 자세로 엉거주춤 엎드렸다. 상체를 지지하는 팔목이 5분도 채 되지 않아 부러질 듯 아팠고, 그럴 땐 윗가슴만 침대에 닿도록 엉덩이를 더 추켜올렸다.
남편은 다음날 아침 5시 출근이었다.
"어서 집에 가요. 난 뭐 어쩔 수 없잖아."
남편은 먹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실을 떠났다. 아픈 아내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도, 곁에 머무를 수도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긴 그림자로 남기고....
입원실 불이 꺼졌다. 도저히 잘 수 없는 자세였다.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몇 시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자세에서도 선잠이 들었던 것 같다. 갑자기 병실 문이 열렸다. 누군가 들어오는 듯했다.
'간호산가?'
내 자리 커튼이 걷히더니 누군가의 흐느낌이 터지듯 쏟아졌다.
"엄마?"
"으 흐흐흑흑흑흑.....어흑흑흑. 그래. 내가 니땜에 몬산다."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이 시간에 왜 왔어요? 내일 오시지."
엄마는 울기만 했고 답이 없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주섬주섬 풀더니 나의 가슴과 배 밑으로 숙 집어넣어 주셨다.
침을 몇 번 삼켜 안정을 되찾은 엄마가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이불이다. 너 엎드려 있어야 한다는데, 그 배 땜에 어떻게 엎드리냐. 이거라도 받쳐야지."
이불 냄새가 우리 집 이불이 아니었다.
"우리 집에 있던 거 맞아?"
"부산에서 올라올 때 가지고 온 거다. 요즘 애들이 이런 두꺼운 이불이 있나? 없을 것 같았어 집에 있는 거 들고 왔다."
낮에 병원 진료 후 엄마에게 다시 전화했었다. 수술 후 엎드려 있어야 된다는 말을 했을 때 엄마는 그 말을 흘려듣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 가진 배로 3일을 엎드려 있어야 한다니, 갑자기 망막이 떨어져 눈 수술을 한 것도 어이가 없는데, 기가 찰 노릇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이미 장롱 안에서 가장 두툼하고 푹신한 이불을 꺼내 보자기에 싸고 있었다. 보자기 걱정은 없었을 것이다. 어디서 났는지 엄마 집에는 항상 보자기가 가득했다.
"아무거나 가져오면 되지, 그 큰걸 가지고 기차를 타고 온거야?"
엄마는 내가 가장 편할 수 있는 자세가 될 때까지 이불 모양새를 바꿔가며 내가 편안한지 확인하셨다. 나의 잔소리 따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좀 어떠냐?"
"훨씬 낫네."
"이제 좀 자라. 너 잠들면 갈란다."
"응..."
어스름한 새벽 눈을 떠보니 엄마는 떠나고 안계셨다.
이불을 타고 먼 길 떠나온 친정집 냄새에 코를 박고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