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부모 선택권

브런치 10주년 작가의 꿈

by 시월아이

서점에 가니 아이들 동화책 코너에 '뽑기' 시리즈가 많이 보인다. 반려동물은 물론, 동생, 선생님, 심지어 아빠까지 뽑을 수 있다니, 제목 그 자체로도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충분하다.


불현듯 어디선가 본 소수민족에 관한 글귀 하나가 떠올랐다. 이들은 부모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나면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라고 믿는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지나가는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너무나도 명명백백한 이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구상 어디에, 자신의 태생 자체를 스스로 결정한 것과도 같은 자발적 부모 선택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니. 처음에는 헛웃음이 났지만, 이내 가슴이 요동쳤다.


누구나 공감의 대상이 다르고 기준이 다르듯, 또 그 어떤 진리에 가까운 주장이 할지라도 그와 반대되는 경험이나 삶을 살았던 이들이 분명 존재하므로 각자에 맞는, 혹은 믿고자 하는 학설이나 명언은 모두 다름이 분명하다.

그런 관점에서,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어느 소수 민족의 '부모 결정론'에 대한 믿음은 적어도 나의 눈빛만은 흔들어 놓았다고 고백하고 싶다.


부모의 성격, 외모,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은 자식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당연히 아니다.) 다만 평균에도 못 미치는 내 부모의 학력이나 경제력이 실망스럽긴 해도, 그 '정도'를 결정하는 것 순전히 내 몫이라는 거다. '그러한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을 통해 우리 부모의 모습이 결정된다는 것.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방송인 박경림 씨가 했던 말이 있다. 자신을 이 자리까지 이끈 것은 한없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갖게된 간절함이었다고. 그리고 거기에 감사한다고.


태어난 환경이나 부모를 실제로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부모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나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우리는 나이가 듦에 따라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과 기준도 바뀌게 된다. 우리 역시 '선택받은 부모'가 되고 나를 선택해 준 아이들을 보면서 계속해서 자라나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국민학교도 겨우 졸업하고 친구들은 중학교에 다닐 때, 남의 집 식모살이를 시작한 한 소녀가 있었다. 한 번 선 본 남자와 열 아홉에 결혼 해 스무살에 첫 아이를 낳다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을 고비를 넘겼다. 피임이 뭔지도 잘 몰랐던 그 시절 소녀는 이듬해에 또 딸을 낳았다. 그녀를 나의 엄마로 선택했던 그 딸은 어느덧 마흔 넷의 아줌마가 되었다.


엄마 이야기를 반드시 책으로 써야겠다는 꿈은 오래 되었다. 언제 이룰지 몰라 그 누구에게도 꿈을 말해보지 못했다. 마흔 넷. 지금에서야 그 꿈을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자 한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