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면 끝장이야!

어쩌다가 난 극성스러운 엄마가 되었을까.

by 시월아이

첫째가 일곱 살, 둘째가 네 살이던 무렵, 하원 시간이 되면 아파트 놀이터는 어린이집, 유치원을 마친 아이들과 엄마들로 늘 시끌벅적했다. 아이들 덕에 관계 맺기에 어려움이 많은 나도 자연스럽게 다른 엄마들과 어울리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들은 놀이터에 풀어놓고,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아이들 과자를 주워 먹으며 남편 흉, 시어머니와의 흥미로운 스토리(?), 다이어트 고민등을 진지하게 펼쳐놓으면서 그날의 육아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반면 나는 의자에 앉지도 서 있지도 못하고, 뭐 마려운 사람인냥 아이들이 있는 곳을 향해 몸통은 반이상 돌아가 있고, 정신은 온통 아이들에게 가 있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큰 딸이 혼자 떨어져 숨어있진 않을까, 네 살 아들이 뒤뚱거리다 넘어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제일 컸지만, 정작 내가 단 몇 초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곳에 있는 다른 아이들의 안전까지도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수다를 떠는 동안, 엄마의 통제를 벗어난 아이들은 마음껏 안전하지 않은 행동들을 해 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남의 애들까지 걱정하는 오지랖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평소 남의 사정에는 쥐똥만큼의 관심도 없다. 다만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아이들은 '다쳐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가까운 집착이 있다. 위험을 감지하는 나의 전두엽이 과잉 활성화되어 있는 탓인 듯하다. 이러니 집밖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내 눈에는 아이들만 보인다.


이런 나의 집념 덕분에 길 잃은 네 살 아이의 집을 찾아준 적이 있다.

아이는 여러 아파트로 둘러싸인 사거리 인도에 서 있었는데, 처음 이 아이를 지나칠 때는 당연히 가까운 곳에 보호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렴 그 어린것이 혼자 큰 도로가에 나왔을 거라고는 나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아이가 맨발인 것이다! 나는 앗차 싶었다.


얼른 아이에게 다가가 엄마는 어디에 있는지, 집은 어딘지 물었다. 간단한 인적 사항 정도는 대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이는 모르겠다는 대답조차 없이 눈만 멀뚱 멀뚱거렸다. 울지도 않았다. 자세히 보니 손에는 선크림이 들려있었다. 난 직감했다. 맨발에, 엄마 선크림을 들고 나온 것을 보니 분명 집이 멀지 않을 것이고, 아이가 혼자 횡단보도를 건넜을 리 없으므로, 의심되는 아파트는 B 아파트 딱 한 군데였다.


나는 얼른 112에 실종 신고를 한 뒤, B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 인상착의와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장소를 알려주고, 단지 내 해당 아이의 보호자가 있는지 긴급으로 단지 내 방송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로부터 5분 뒤, 경찰이 도착하기도 전에 B 아파트 뒷길로 한 엄마가 허겁지겁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 내려왔다.


"00아, 혼자 나가면 어떡해!"


아이를 다그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엄마를 보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이 엄마는 내 얼굴을 보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그대로 아이 손을 잡고 도망치듯 돌아서는 것이다. 허리 숙여 고맙단 인사를 듣자고 한 일은 아니지만 다소, 아니 꽤 많이 당황했다. 너무 많이 놀래서 인사를 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을 것이라고 믿으며, 그래도 참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 사귄 단짝 친구가 자신의 두 아이를 데리고 우리 집에 왔다.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커피를 사러 다 같이 나섰다. 그런데 상가 편의점을 지나쳐 커피 가게로 내리막길을 내려가던 중, 한 여자 아이가 편의점 에어컨 실외기에 기대어 바닥에 앉아있고, 다른 두 아이가 그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말이라 다니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고, 우리 일행만 6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얼핏 지나칠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나의 섬세한 전두엽이 위험을 대번에 감지했다.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그 아이들 무리에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왜 여기 앉아있어?"

그러나 서 있던 한 여자 아이가 말했다. 우리 딸과 같은 초등학교 4,5학년쯤 되어 보였다.

"어지럽대요."

난 앉아있는 아이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핸드폰 있지? 엄마한테 전화해 볼래?"

내 말에도 아이는 답을 하지 못했다. 아이의 눈이 초점을 잃고 머리가 어깨까지 축 쳐져있었다.

"잠금화면을 못 풀겠어요. 비밀번호가 뭔지 말을 안 해요." 옆에 있던 다른 아이가 얼른 대답했다.

나는 아이가 눈은 뜨고 있으나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태임을 직감했고, 친구에게 얼른 119에 연락을 하라고 말했다. 그 사이 아이는 바닥을 지탱하던 팔에도 힘이 빠졌는지, 몸이 더 기울었다. 나는 아이를 편안하게 아예 바닥에 눕혔다. 이윽고 나는 119 구급대원과 직접 통화를 하면서 아이의 상태를 주시했다.


10분쯤 지나 119 구급대원들이 도착했고, 아이는 안전하게 구급차 안으로 옮겨졌다. 그리고는 어렵게 아이의 엄마와 통화가 되었고, 아이가 평소 간질을 앓고 있다는 말과 함께, 곧바로 현장으로 오겠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서야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큰 소리로 싸우던 연인을 신고한 적도 있다. 남성이 여성에게 심하게 소리를 치며 화를 내는 것을, 길 건너편에 숨어 몇 분간 지켜보다가 여성의 팔목을 잡고 어느 가게 건물 뒤편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을 본 뒤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대략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그 옆을 지나갔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더욱이, 그런 위험이 예상되는 상황임에도 "설마"하는 생각으로 지나가 버리기 일쑤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육아의 제1 원칙이며,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도움과 관심 없이는 절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다.

놀이터에서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 과잉보호나 과도한 걱정이라며 나를 예민한 엄마로 생각해도 좋다. 아니, 어쩔 수 없다.


요즘 기어가 없는 픽시 자전거나, 공공 킥보드를 안전 원칙을 지키지 않고 타는 아이들이 많다. 특히 아파트 내 놀이터에 서너 살 아기들이 놀고 있음에도 자전거로 묘기를 부리는 청소년들로 인해 마음 놓고 놀이터를 이용하기도 힘들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아이의 안전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나아가 그 아이들이 커서 남의 안전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클 수 있다.


다치지 않고 클 순 없다. 아홉 살 난 아들내미 얼굴에는 다이소 선반에 찍혀서 난 이마 흉터와, 집에 있던 책장 모서리에 입술을 찍어 열 발을 꿰맨 흔적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얌전한 편인 큰 딸조차도 학교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을 크게 다친적이 있다. 그 상처가 아물 때까지 진물에 들러붙은 거즈를 뗐다 붙였다 하면서 진땀 뺀 시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몸을 다치면 마음도 함께 약해진다.

여기저기 많이 아파보니 그렇더라. 가능하면 다치지 않게 키우고 싶다. 내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