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외롭게 한 건 다름 아닌 바로 나
지금까지 딸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미안했던 순간이 있었다. 이 일이 있었던 날 밤, 나는 두 주먹을 꽉 쥐고 내 머리를 마구 때리며 밤새 울었다. 죽고싶을 만큼 후회가 되었던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때의 일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키우면서 미디어에 최대한 늦게, 그리고 적게 노출되도록 하자는 신념이 강했다. 초등학교 2학년 정도까지는 본인도 특별히 스마트폰을 쓸 일이 없어서 별도의 통제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점점 스마트폰 사용량이 많아지자 나는 아이가 스마트폰을 정해진 시간 동안만 쓸 수 있도록 여러 설정을 걸어두게 되었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을 처음 개통하면서 받은 번호로 오는 각종 스팸 문자와 알 수 없는 전화들을 차단하기 위해 시간 제한과 함께, 모르는 번호에 대한 수신이나 저장을 막는 등 여하튼 가능한 모든 설정을 걸어두었다.
3학년 새학기가 시작된지 두 달 쯤 지나서 아이에게 친구들 번호를 많이 받았냐고 물어보자, 아이가 얼버무렸다.
"어....근데 친구들이 그러는데, 나한테 전화가 안된대."
"니가 번호 잘못 가르쳐준거 아냐? 내일 가서 다시 확인 해봐. 안되면 니가 친구 번호 저장 시켜 오면 되잖아."
"네....알겠어요."
그리고는 어느덧 여름 방학을 앞둔 시점이었다. 도통 학교 수업시간 외에는 친구들과 연락을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길래 방학때 같이 따로 만나서 놀 수도 있으니 친구들 연락처 좀 받아오라고 아이를 독촉했다. 안그래도 소심하고 까탈스런 아이가 한 학기가 다 지나도록 친구도 못 만드는 것 같아 답답했다.
"네...."
몇 일 뒤 아이가 말했다.
"엄마, 근데 애들이 나한테 문자도 보내고 했는데, 내가 씹더라는거야? 난 근데 문자 받은 적이 없어."
"그래? 어디 한 번 보자."
순간 나는 등에서 쎄한 한기를 느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때마침 잘 시간이 다 되어서 아이들을 먼저 방으로 들여보낸 뒤 나는 아이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래도 이런 저런 설정을 하면서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한참을 이런저런 설정을 살펴 보던 도중, 주소록에 이미 저장된 번호 외에는 일체 연락을 받을 수 없도록 설정을 걸어 둔 것을 알게 되었다. 의도했던 바와 달리, 아이가 새 친구를 만드는 것에 내가 방해를 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친구의 번호를 먼저 물어서 스마트폰에 저장을 먼저 했더라면, 걸려오는 전화나 문자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을테지만, 아이는 자신의 번호를 먼저 알려준 뒤, 친구가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보통의 아이들이었다면 쉬는 시간이나 수업이 끝난 후 둘이 마주 앉아 스마트폰을 켠 채로 전화를 서로 걸어보는 등, 적극적인 행위를 했을테지만, 뭔가 자신이 잘못해서 그런건 아닌가 싶은 마음에 누구에게도 이런 문제를 밝히거나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두 아이가 완전히 잠든지 확인 한 후, 거실에 불을 끄고 어두컴컴한 안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입을 틀어막고 울기 시작했다. 다행이 남편이 야간 근무하는 날이라 혼자였다. 울었다기 보다는 나에 대한 역겨움을 꾸역꾸역 토해내었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엄마라는 사람이, 아이가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하지는 않을까, 혹은 게임 채팅이나 유튜브 댓글등을 통해 위험에 노출될까하는 지나친 걱정으로 인해 아이의 3학년 친구 관계 전체를 망쳐버렸다는 생각에 미칠것만 같았다. 학기초에 친구를 못사귀면 1년 내내 혼자여야 하는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고, 안그래도 친구 사귀기에 어려움이 많은 첫째가 3학년이 되어서만큼은 1,2학년때와 같이 외롭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었다. 그런데 엄마가 그러한 상황을 아이에게 만들어 준 꼴이 돼버린 것이다.
새벽 2시가 다 되어서도 나는 진정이 되지 않았다. 나에 대한 화가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속이 뒤집어질듯한 복통도 찾아왔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었다.
누군가는 그럴수도 있는 일이니 너무 자책하지 마라, 아이들 친구 관계야 좋다가도 나빠지고 나쁘다가도 좋아지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또 기회는 찾아온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더 괴로웠던 것은 단지 아이가 친구를 사귈 기회를 뺏은 것이 아니라, '안전'과 '교육'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로 아이를 신뢰하지 않고, 아이를 빈틈없이 통제하려고 했던 것이다. 아이에게 충분한 설명과 지속적인 지도로도 충분히 안전한 스마트폰 사용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인터넷 검색을 해 가면서, 내 아이폰과 아이의 스마트폰을 연결해 둔 후, 원격으로 통제하는 법을 찾아냈고, 아이의 스마트폰에서도 불필요한 요소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기능 설정 등, 집착에 가까울만큼 완벽한 제어를 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하는 마음도 들었었다. 심지어 나는 그런 '방법'에 대해 나름의 노하우를 내 개인 블로그에 정리하여 올리기까지 했다.
"미안해....미안해...엄마가 잘못했어. 어흐흐흐흑"
새벽 동이 터서여 나는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새우잠을 잔 뒤 아침에 일어나 여느때처럼 아이들 등교 준비를 했다. 지난 밤 엄마의 격정적인 감정을 알리 없는 딸 아이는 언제나처럼 아무런 감흥 없이 등교했다. 오늘에 대한 기대도, 설렘도, 계획도 없어 보이는 아이를 보며 또 한 번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그 날 오후 나는 아이의 스마트폰에 설정된 대부분의 제한을 풀었다. 그렇지만 그 해 여름방학 동안에도 역시나 아이는 그 누구로부터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뒤늦게 저장한 두 어명의 친구에게 먼저 연락할 용기를 강요할 수도 없었다. 세 살 아래 남동생과 가끔 푹 빠져 놀기는 했지만 어딘지 모를 외로움이 느껴져 나는 마음이 시렸다.
태생적으로 언어 표현 능력이나 상황 이해력이 낮은 아이의 불안도는 자연히 높을 수밖에 없기에, 안정적인 집에서의 시간을 더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간혹 집 근처 마트를 가는 길 놀이터나, 다이소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하면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빨리 가자고 재촉하곤 했다. 내가 꿈쩍도 않고 버티면 아이는 재빠르게 몸을 낮추고 얼굴을 숙여, 자신의 모습을 숨기려 했다. 자신을 감추려고 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아이 내면의 공허함을 알기에, 내게 주어진 숙제가 꽤 크다는 것을 점점 더 크게 깨닫게 되었다.
엄마가 지켜줄께. 엄마가 살펴봐줄께. 엄마가 비춰줄께.
엄마가 뒤로 물러서도 니가 불안해 하지 않을 때까지.
조금 늦어도 괜찮아.
우리 같이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