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아이는 학원이 답일까?

by 시월아이

4학년 겨울 방학이 끝나갈 무렵, 나는 일주일 전 진행한 딸아이의 지능 검사(웩슬러) 결과를 듣기 위해 위해 지역 심리 상담센터 상담실에 원장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아이의 지능 지수, 그러니깐 아이큐는 평균보다는 조금 낮지만 정상범위였다. 그리고선 내게 이렇게 물었다.


" 그런데 어머님 사시는 지역에 계시는 분들도 저희 센터 많이 오시는데, 아이가 다니는 학원을 보니 너무 놀랍네요.이렇게 학원을 안 다니는 아이는 처음 봅니다."


나는 순간, 내가 학원에 학습 상담을 하러 온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검사를 하기 전 미리 아이의 학교, 다니는 학원, 거주지 주소, 부모 직업 등에 관한 정보를 모두 기입해 두었기 때문에 상담 선생님께서는 아이의 인적 사항에 대해 알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아이의 지능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는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전문가라는 분이 이런 식의 총평을 하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00이와 같은 아이는 일반적으로 주변에서 하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해서, 그러니깐 간접 경험하는 것만으로 는 학습이 힘든 아이입니다. 따라서 인위적이고 지속적입 주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굉장히 세심한 아이이기 때문에 선생님의 성향도 매우 중요하죠. 일단은 언어 이해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논술 학원은 무조건 보내셔야 하고, 수리쪽도 떨어지니 수학 학원도 바로 보내셔야 합니다. 어머님께서 일일이 학원을 다니면서 아이에게 친절하게 학습을 가르쳐줄 수 있는 선생님을 찾아보세요."


아이가 다섯 살 무렵부터 줄곧 걱정하던 '경계성 지능장애'가 아니라는 결과에 안도의 한숨을 쉬긴 했지만 선생님의 뜻하지 않은 "부모 탓" 원인 규명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부산 지역에서 학구열이 높은 학교로 유명했기에, 아파트와 학교 주변은 온통 학원 천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가 학원을 안 다닌 것은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논술 수업과 미술 학원 수업이 있고, 줄넘기도 일주일에 3번 다녔다. 수학은 이제 보내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아이가 강하게 거부하고 있어, 대신 그동안은 집에서 교과서를 구입해서 따로 예습과 복습을 시키고 있었다.


평균을 밑도는 지능 지수에 대한 선생님의 학원 솔루션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아이에 대한 선생님의 평가는 정확하긴 했다. 특히 '간접경험'만으로는 학습이 어렵다고 한 부분이 그랬다. 만일 기본적인 언어 발달 속도가 느렸다면, 언어 학습에 가장 기본이 되고 가장 중요한 '노출 빈도수'가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의 언어 발달이 특별히 느렸던 것은 아니다.


파도의 주인은 바다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람인것을.


학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상담 선생님의 의도에는, "아이는 자연스러운 학습이 잘 안 되는 성향이니, 학원을 좀 더 많이 보내서 학습 노출도를 올리고 다른 아이들보다 학습시간도 상대적으로 많아야 한다"라는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동의했다. 하지만 아이의 지능검사를 했던 부모의 목적이 "학습"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인 교우 관계"에 있음을 미리 밝혔음에도, 상담의 방향이 '학습'으로만 귀결되는 것이 다소 불만족스러웠다.


아이의 긴장도가 매우 높아(나도 인지하고 있었던 바이다.), 지능 검사가 응시자의 긴장도를 모두 반영한 검사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그 영향이 더 커서 실제 지능보다 다소 더 낮은 결과를 받았을 가능성도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따라서 긴장도가 높은 아이는, 특히나 엄마가 함께 미리 학원을 가보고 아이가 원하는 곳으로 선택하라는, 역시나 '학원 선택법'으로 상담은 마무리되었다.




"10 다음은 뭘까?"

"........."

"모르겠어? 10에 1을 더하면, 그게 10 다음 숫잔데, 뭐지?"

"........."

"10에 1을 더하면 11이야. 그럼 11 다음은 뭘까?"

"........."



"오늘이 일요일이잖아. 그럼 내일은 무슨 요일일까?"

"........"

"월화수목금토일이 반복되거든. 그러니깐 일요일 다음은 다시 월요일인 거야."


다른 이들이 보면 엄마가 너무 숨 막히게 질문을 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영재, 선행, 영유 이런 적극적인 교육 시스템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던 우리 부부가 걱정을 할 정도로 아이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지식들을 때에 맞춰 습득하지 못하는 모습들이 자주 발견되었기에 이렇게라도 자꾸 물어보고 가르쳐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고개를 넘으면 또 한 고개가 기다리듯이 전반적인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내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이가 "월화수목금토일"이라고 한 번에 읊거나 노래로 흥얼거리면서도, 막상 이것에 대한 질문을 하면 아이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더욱 취약했던 것은 방향 감각이었는데, 왼쪽 오른쪽, 앞뒤 이런 개념들을 매우 알아듣기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정확히 말하면, 개념은 잘 알면서도 누군가 '질문'내지는 '지시'와 같은 목적으로 말을 했을 때, 아이는 긴장도가 확 올라가면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부모나 학교가 아이의 학습 능력을 평가하지 않거나, 혹은 그런 평가가 큰 의미가 없다고 스스로나 판단하면, 성적이나 학력은 삶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본 상식 혹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크고 작은 결정들을 매일 해야 하고, 반드시 숙지해야 할 과제들을 숱하게 접하게 된다. 보드게임의 규칙을 알아야 친구들과 함께 플레이할 수 있고, 가전제품 매뉴얼을 이해해야 그 제품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소화기 사용법을 알아야 불도 끌 수 있고, 비행기 구명조끼 착용법도 빠른 시간 내에 이해해야 생존할 가능성이 커진다.


모두 사람이 빠른 이해력과 높은 언어 소통 능력을 가질 순 없지만(나 역시도 적당히 똑똑할 뿐), 적어도 내 아이만큼은 정글과도 같은 사회에서 생존해 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 능력' 정도는 갖췄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바람일 것이다.


상담 선생님과 나의 '취향(?) 차이'를 이유로, 웩슬러 검사를 받은 상담 센터가 아닌 다른 상담센터를 다시 알아보았고, 새로운 센터에서 딸아이는 약 8개월간 매주 1회 상담을 받았다. 40분 아이 상담, 그리고 10분은 부모 상담이었는데, 8개월 동안 나 역시 아이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도 많이 바뀌었지만, 내가 참 많이 바뀌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아이를 보는 눈과 태도가 바뀐 것이다.

어디든 쓰고 그려보는 아이. 표현은 서툴지만 표현의 가치를 아는 아이다.


내가 처음 아이에게 바랬던 삶을 잘 살기 위한 '기본능력'이, '언어를 이해하고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었다면, 상담 후에는 그 '기본능력'은 바로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아이는 아이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힘을 키웠고, 그것이 곧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나 역시 아이의 행복한 삶은 외부에 있지 않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깨달음은 나에게도 깊은 안도와 편안함을 주었고, 점차 남편의 결벽증에 가까운 깔끔함을 안타까움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런 그의 행동으로 인해 불편했던 내 마음도 어루만져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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