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 = 위험한 것
남편은 일상의 소소한 변화도 꺼리는 사람이다. 베갯잇을 새로 사서 바꿔 놓으면 그 전의 것보다 덜 부드럽다며 어느새 예전 베갯잇으로 다시 바꿔놓는다. 키친타월을 세워 두면 개수대 자리가 좋아 평소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래서 다이소에서 주발 상부장에 걸어놓을 수 있는 거치대를 사서 키친타월을 걸어 두었더니, 그날부터 일주일 내도록 걸려있는 키친타월은 쓰기가 불편하다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 마디씩 했다. 결국 새로 산 키친타월 걸이를 수납장 깊은 곳에 넣어두고, 원래 쓰던 키친타월 거치대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주방의 주인은 나라고 우겨도 봤지만, 설거지 담당은 주로 남편이다 보니, 남편의 잔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는 것이 내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아 언제나처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후 10년을 넘게 살면서 이런 일들은 일상 전체에 걸쳐 확인(?)되었다. 원래 있던 물건의 위치가 바뀌는 것을 매우 싫어했고, 매번 하던 음식의 조리법에서 살짝만 바꿔도 맛이 이상하다며 '하던 대로'를 강요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오리지널', 혹은 '전통적인' 음식이며,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퓨전음식이라나 뭐라나.
평소 자장면이나 짬뽕처럼 중국집 음식을 좋아하는데, 제주도, 전라도, 목포 등으로 여행을 가면, 그 지역에서 유명한 지역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중국집을 찾아서 반드시 한 끼를 해결해야 했다. 나와 아이들은 정색을 했지만, 낯선 곳에서 남편은 '보증된' 맛있게 한 끼 먹는 것을 원했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새로운 곳의 새로운 음식은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있기 마련이지만, 한국 어느 곳을 가든 중화요릿집의 맛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아내로서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이런 남편의 기질을 딸아이가 그대로 물려받았다.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이 하나같이 주 4.5일제 혹은 주 4일제를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어느 날 우리 네 가족이 다 같이 뉴스를 보고 있다가 남편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 얘들아, 어쩌면 엄마도 너희도 금요일에도 회사랑 학교 안 갈 수도 있어. 좋겠지?"
두 아이의 반응은 상반되었다.
기쁨에 만세를 부르는 아홉살 아들과는 달리, 딸아이는 고개를 세게 흔들며 "싫어 싫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편이 다시 설명했다.
" 아니, 금요일에도 학교를 안 간다고~ 엄마도 회사 안 가고~ 그럼 좋잖아?"
그러자 딸아이가 대꾸했다.
" 아니, 난 지금이 좋아. 금요일에도 학교 갈 거야. 바뀌는 거 싫어."
딸아이의 대답에 우리 부부는 이것은 '더 나은' 변화이며, '확실히 더 좋은 것'이라 굳이 더 말하지 않았다. 과거에도 있어왔던 예상치 못한 아이의 반응을 한템포 늦었지만, 그냥 받아들인 것이다.
학교 가는게 정말 좋아서 그랬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변화 그 자체가 싫을 뿐. 아이는 어떤 변화가 발생했을 때, 그것이 상황을 더 나아지게 만들 것인지, 더 나쁘게 만들 것인지를 단 한 순간도 따지지 않는 듯 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아이가 평소에 바라고, 기대하던 변화는 기꺼이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단지 생각하지도 못했던 변화는 그것이 좋은 쪽으로 바뀌더라도 일단은 거부감이 드는 듯 했다.
매일 자신이 해 오던 방식이나 루틴에 변화가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 반응을 보인다.
스마트폰 사용은 하루에 1시간 30분씩 할 수 있는데, 과제나 유튜브 편집 등의 이유로 특별히 많이 써야 하는 날에 한 시간 정도 더 풀어준다. 그러면 다음날은 다시 1시간 30분으로 설정을 바꿔놔야 하는데, 가끔 그걸 깜빡할 때가 있다. 그러면 어김없이 퇴근 후 돌아온 내가 딸아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한다.
" 엄마, 시간제한 다시 안 줄였어요? 오늘 엄청 많이 한 것 같아요."
" 아 맞다. 엄마가 모르고 다시 설정을 안 바꿨어."
" 지금 바로 다시 원래대로 해 주세요. 지금 바로요."
아이는 엄마가 만든 룰 밖으로 나가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는지 모른다. 보통의 아이들 같으면 늘어난 시간을 엄마가 혹시나 다시 되돌릴까 마음을 졸일 텐데, 딸아이는 그러한 변화조차도 어쩌면 자기 기준에서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아이의 이런 면을 문제삼는 것이, 어쩌면 내가 남편이나 아이와는 다르게, 새로운 변화를 대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기 때문인것도 사실이다. 상황이 악화되어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변화든, 어쩔 수 없이 외부에서 주어진 변화든, 나는 거기에 순응하고 빨리 적응하려고 하는 편이다. 거부하며 신세 한탄하는 시간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여, 하나의 전환점으로 만드는 것이 나에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이 가장 좋고, 익숙한 것이 편하니 새로운 변화는 싫다는 사람과의 일대일 비교에서 내가 더 우세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매일매일이 항상 같을 수는 없는 터, 어느 정도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는 것이 좀 더 정신적, 신체적으로 수월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영원히 내 품 안에서 아이에게 다가오는 변화의 바람을 막아줄 수 없는 노릇이니 아이에게 어떤 힘을 키워주면 좋을까 하는 고민이 몇 년째 풀리지가 않는다. 우리 아이에겐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사소한 변화도 큰 두려움이 될 수 있을 거란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아이는 엄마의 낯설고, 때로는 무시하는 듯한 눈빛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까 싶다가도 남편을 보면, 또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는 확신도 든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러한 남편의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 지금의 사회적, 경제적 안정적 위치와 온전한 가정을 이루게 하였으니, 딸아이의 그러한 성향도 그 나름의 거름이 되어 나와는 다른 꽃을 피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애써 자꾸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