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미국에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수출입 물량이 크게 감소하여 관세 수입은 곤두박질쳤지만 재정 수요는 불경기로 더 늘어났다. 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갤런당 50¢ 였던 주세를 갤런당 $1.10로 두 배 이상 늘렸다. 계산상으로는 조세수입이 두 배 늘어나야 하였지만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불경기에 위스키 소비를 절제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밀주가 성행하여 주세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높은 세율은 세무공무원을 바쁘게 하였다. 주세 탈세로 인신구속 사건은 두 배 늘었으며, 밀주 압수 건 또한 1,016건에서 2,273건으로 2배 증가하였다. 두 배 높은 세율에도 1894년 주세를 통한 재정수입은 감소하였고, 낮아진 주세 수입은 6년이 지난 1899년에서나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납세자는 수학공식대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정부는 그러할 것이라 믿는다. 어리석은 정책은 자주 일어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온갖 세금을 다 동원하였지만 실패하고 오히려 주택가격만 더 올려놓았다. 정치인은 세금을 징수하는 데 있어 간단한 수학공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세율을 두 배로 높이면 조세수입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는 것을 반박하기 어렵지만, 정치인의 이러한 믿음을 반증하는 것이 래퍼 곡선이다.
래퍼 곡선은 소득세율과 조세수입과의 관계를 비교한 실험이다. 세율이 0% 이면 당연히 조세수입이 없다. 세율이 올라가면 조세수입이 점점 증가하지만, 일정 시점에 이르면 조세수입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율이 100%가 되면 조세수입이 전혀 없게 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높은 세율에서 일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세수입을 최적화하는 세율은 그 중간 어딘가에 존재한다.
레이건은 1980년대 래퍼 커브를 기초로 세금이 최적 세율보다 높다고 감세정책을 펼쳤다. 공급경제학은 세율을 인하하면 단기적으로는 조세수입이 감소하고 재정적자가 발생하지만 투자가 활성화되어 장기적으로 조세수입이 증가한다 한다. 이것이 조세를 감면하면 투자가 일어나고 그 효과로 보통 사람들의 수입이 늘어난다는 '낙수 효과(Trickle Down)' 이론이다.
납세자가 수학공식 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례는 미국의 소득세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7%에서 77%로 늘어났지만 징수 금액은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세율이 높아지면서 고소득자들이 마법처럼 사라진 것이다. 1916년 최고세율이 7%이었을 때, 1,296명의 부자가 최고의 소득세율로 신고하였다.
이들의 소득 총액은 $2억이었다. 1921년 최고 세율이 77%로 높아지자, 246명의 부자가 최고 세율로 신고하였다. 이들의 소득신고 총액은 $2 1백만으로 줄어들었다. 세율이 10배 높아지자, 5년 만에 신고된 소득이 1/10로 감소하고 백만장자 10명 중 9명이 사라진 것이다.
사라진 최고 소득자 1,050명은 어디로 갔을까? 사라진 부자들은 소득을 줄이기 위해 일하지 않거나 다른 나라로 탈출하였을 가능성은 낮다. 상당수는 조세 설계사(Tax Planner)의 도움으로 납세 대상 소득을 투자소득으로 변경하거나 세금이 과세되지 않는 소득으로 변경시켰다. 높은 세율은 세수에 도움을 주지 않으며 탈세만 조장한다. 이는 국가의 신뢰와 법질서를 무너뜨리는 나쁜 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1930년부터 1980년까지 소득세 최고세율은 평균 78%였다. 높은 소득세를 과세한 이유는 초(超) 부자(Super-Rich)의 소득을 억제하고 이를 분배하기 위해서였다. 최고 소득세는 평균 소득보다 100배 정도 높은 부자에게만 적용되었으며 보통 부자는 25-50%를 납부하였다. 소득 불균형은 이러한 정책으로 개선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 상위 1%가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서 1970년 초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초부자에 높은 소득세를 과세하면 소득 불균형이 개선되다는 것은 다른 모든 국가에서 나타났다. 조세의 정책 목적이 소득 불균형의 해소라면 높은 세율은 나쁘지 않다.
부는 권력이다. 극단적인 부의 집중은 권력의 집중을 말한다. 권력은 정부의 정책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 경쟁을 제한한다. 부자는 독점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경쟁을 제거하고 새로운 규제와 세금을 거부한다. 여기에 더하여 부자들은 언론과 금융을 통제하여 자신에게 절대 유리한 환경을 만든다. 극단적인 소득 불균형은 사회 안정을 저해하며 민주주의의 자체를 위협한다. 승자독식의 이윤과 지대 추구가 높은 소득세로 억제될 때 오히려 경제가 더 활성화되고 발전할 수 있다.
통계는 이러한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높은 세율의 소득세가 부과되던 기간(1946-1980) 경제성장은 견실하였으며, 그 열매는 모든 계층이 폭넓게 나누어 가졌다. 이 기간 동안, 경제성장률은 평균 2%에 이르고 모든 계층의 소득도 평균 2% 고르게 성장하였다. 이는 낙수 효과(Trickle Down) 이론으로 낮은 세율의 소득세가 부과되던 기간(1980-2018)과 완전히 다르다.
소득세가 낮은 기간에 경제성장률은 평균 1.4%에 그쳤으며, 모든 계층의 소득은 정체하고 초(超) 부자의 소득만 증가하였다. 이 기간 동안 상위 0.1%의 부자는 소득이 320% 증가하였으며, 상위 0.01%의 부자는 430% 증가하였다. 최상위 0.001%인 2,300명의 부자는 소득이 600% 증가하였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하위 50%의 소득은 1970년대 말 $17,500에서 40년이 지난 2018년 $18,500으로 정체하였다. 이는 매년 소득이 평균 0.1% 증가한 것이다.
낙수 효과 이론은 기대되는 경제적 효과를 가져오지 않았고, 재정적자의 심화와 부의 양극화만 불러왔다. 폴 크루그먼은 그의 저서 "미래를 말하다"에서 레이건의 낙수 이론은 부자를 위한 경제정책이었다 비판하였다.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현재, 부자 과세가 사회안정과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는 이유이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에 없는 내용입니다.
참고 도서
The Triumph of Injustice (Emmanuel Saez and Gabriel Zuckman, Norton & Company 2019), From Boston to Richmond page 37, Beyond Laffer, page 157-159, Beyond Laffer, page 160-165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The Miracle Economies, page 432-434Those Dirty Rotten Taxes (Charles Adams, Simon & Schuster 1998), Yankee Ingenuity: The tax rebels find a new weapon, page 21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