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태어난 지 어느덧 4개월이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시간을 아기와 단둘이 보냈다. 신생아 시절 한 달 동안은 정말 정신없이 보냈던 기억만 남아있다. 그 시절 아기는 너무 작고 연약하고 잠만 자는 존재 같았다. 애초에 깨어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는 시간이 적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한 달 두 달 지나다 보니 어느새 깨어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이 기간 동안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주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기는 어떻게 기쁨을 줄까?
순진무구함이 주는 기쁨이 있다. 푹 잘 자고 일어난 아침에 눈이 마주치면 아기는 방긋 웃는다. 잘 자고 일어나서 기쁘기 때문이다. 밥을 잘 먹고 나서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뗀다. 잘 먹었냐는 물음에 또 행복한 웃음으로 대답한다. 가끔은 내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웃는다. 내 존재만으로도 순수하게 기뻐하는 아기를 보면 나도 같이 덩달아 기뻐진다. 내가 아기에게 해주는 것보다 아기는 더 큰 표현으로 응답한다. 내가 무엇인가 제공하였을 때 아기가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아기는 내가 주는 것이 무엇이든 그저 받아들인다. 그러한 순수함 앞에서 내 마음까지 맑아지는 기분을 느낀다.
반짝이는 호기심이 주는 기쁨이 있다. 아기는 커다랗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주변을 관찰한다. 그것이 가끔 내 얼굴이 될 때도 있고 자신의 손가락이 될 때도 있으며 의자가 될 때도, 그냥 벽지가 될 때도 있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이것저것 관찰하는 눈빛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간다. 강렬하게 집중하며 관찰하는 모습을 보면 그 힘을 이끌어내는 동기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무한한 잠재력이 주는 기쁨이 있다. 아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이다. 어른은 현재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하려는 반면, 아기는 불확실하고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근육을 단련한다. 엎드린 상태에서 한 팔을 내딛으려면 몸의 균형을 깨야하지만 아기는 균형을 깨고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수천번을 넘어지면서도 계속 앞으로 기어가려 하고 결국 성공해 낸다. 매일매일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마음속 깊이 기쁨이 차오른다.
서론의 질문은 사실 잘못되었다. 아기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가 아니다. 밝고 반짝이고 긍정적인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한 존재를 옆에서 지켜보고 그 성장을 매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나에게는 참 큰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