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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Mar 18. 2024

천사들의 추억과 따뜻한 커피 한 캔

부모님의 따뜻한 마음 

    한 해가 저물어 가는 12월 어느 날이다. 모두 하원 한 어린이집에 혼자 앉아 다음 해 2월에 졸업할 친구들의 앨범에 쓸 사진을 정리하고 있다. 띵동~ 하는 초인종 소리에 의아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민서 아버님이다. 점퍼 주머니에서 까만 비닐봉지에 쌓인 뭔가를 꺼내 불쑥 내민다. 손에 받아 드니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주머니 속에 넣어 손으로 꼭 감싸 쥐고 온 따뜻한 커피 한 캔이다. “웬일이세요?” 하고 묻자 지나가는 길에 어린이집 불빛을 보고 원장 선생님이 아직 일하고 계신 것 같아 들렸다며 멋쩍게 웃으신다.      


  “우리 민서 졸업 앨범도 원장님께서 손수 만드셨다고 들었어요. 아마 이맘때쯤 원장님 퇴근 못 하시고 또, 우리 둘째 진서 앨범 만들고 계실 것 같아서요. 지금도 우리 민서는 재롱이 어린이집 앨범을 꺼내 보며 ‘우리 원장 선생님, 우리 사슴반 선생님’ 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찡해요. 재롱이 어린이집의 앨범은 아이에게나 우리에게 아름답고 행복했던 추억으로 간직되고 있어요. 사진 속의 어린 시절 천사 같은 모습을 볼 때마다 재롱이 어린이집에 다니던 그 시절이 참으로 소중했던 시간이었구나 싶어요. 그 소중한 시기를 함께해 주신 재롱이 어린이집이 저희 도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되네요”.      

 하고 말씀하시고는 급히 돌아서 가신다. 돌아서는 민서 아버님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이 벅차 온다. 매번 조금이라도 잘 나오고 예쁜 사진을 고르느라 눈도 침침하고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오늘은 참으로 흐뭇하다.     

   사진 찍는 일부터 관리하는 일 앨범을 만드는 일은 해마다 내 손으로 직접 하고 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 돌 보느라 시간도 없지만, 우리 아가들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서 오래도록 행복한 추억으로 간직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다. 앨범을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천사 같은 모습으로 내 품에 찾아와 안겼다 떠나갈 때까지 아가들과의 행복했던 시간, 또한 힘들었던 시간, 내가 부족했던 점은 없는지 반성과 앞으로 더 잘해보려는 계획 또한 이때 많이 생각한다. 한 친구 한 친구에게 얼마나 진심으로 대했는지? 얼마나 사랑을 줬는지? 많이 생각하고 많이 반성하며 떠나가는 아가들에 대한 추억도 함께 정리한다.    

  

    늦은 시간 커피를 잘 즐기지 않는데 오늘 이 커피는 왠지 마시고 싶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커피를 음미하니, 가슴 한편이 따뜻해진다. 따뜻한 커피 한 캔으로 수줍게 감사를 표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져 작업하는 내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더 따뜻해진다. 어릴 적 아이들의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부모의 마음과 내 마음이 담겨 이번 앨범은 더욱 아름다운 빛나는 추억이 될 것 같다. 0세부터 1세, 2세, 3년을 내 품에서 건강하게 자라 떠나가는 아가들의 마지막 모습을 내 손수 정리해 오래도록 추억으로 간직하게 하는 작업은 내게는 행복이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우리 어린이집에는 내가 졸업생들의 추억을 정리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두 아이를 졸업시키는 아버님께서는 알고 계신 것이다. 왠지 오늘 밤은 잠자리에 들어도 쉽게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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