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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Aug 05. 2024

할매들의 일탈

친구들과의 대천여행

여기저기 봄꽃 소식이 들려오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고향 친구 6명이 만든 단체 카톡방에서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모사가 시작된다. 같은 동네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까지를 같이 지내며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함께했던 친구들이다. 그간 다들 직장생활에 자식들 뒷바라지로 시간 내기 쉽지 않았고, 서로 각지에 흩어져 살다 보니 자주 만나기는 어려웠다. 이제는 정년퇴직도 했겠다 자식들도 자라 거의 독립했으니 걸릴 게 없다. 몇 해 전부터 1년에 두어 번씩 1박으로 여행하자 약속하고 매달 회비도 모아 통장에는 제법 돈도 쌓여있다. 

   

충남 공주의 산골에서 자란 우리는 이번 여행 장소로는 바다로 하자는 의견에 따라 대천 해수욕장으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장소와 날짜를 정한 뒤 숙소로 바다 전망이 멋진 해수욕장 근처 펜션을 예약하며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여행 준비를 했다. 지난해 스승의 날 무렵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을 찾아뵐 때 가슴에 “스승님 존경합니다.”란 문구를 새겨 넣은 하얀 티셔츠를 단체로 맞춰 입었다. 올해도 상의는 그 옷을 입고 하의는 Deep red의 잔 체크무늬 파자마를 단체로 구매했다. 뭔가 일률적일 때 동질감으로 더 재미있고 화기애애하다. 그리고는 이번 여행의 concept을 “할머니들의 파자마 파티”로 하자 말하니 이미 할매가 된 친구들은 “친숙하니 좋은데”하고 말하지만, 아직 할매가 되지 않은 친구들은 “아직 할매 싫어 6 공주의 파자마 파티로 해”하며 수다를 떨며 행복하게 파자마 파티를 준비했다. 대망의 여행 날 대천역과 대천 터미널에서 여섯 친구는 뭉쳤다.

   

이제부터는 초등학교 6학년 생으로 돌아갔다. 숙소 입실 시간 조금 전이다. 일단 숙소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대천 해수욕장 백사장으로 나갔다. 끝없이 펼쳐진 하얀 모래밭이 봄날의 화사한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눈이 부시다. 탁 트인 백사장과 잔잔한 파도를 일렁이며 펼쳐진 파란 바닷물은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래 위를 한참 걷다 보니 출출하다. 근처 식당에서 꽃게탕과 꽃게찜으로 바다의 맛을 만끽하며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는 숙소에 짐을 풀고 보령에 있는 개화예술공원으로 갔다. 넓은 잔디밭과 대지에 온갖 봄꽃들이 화려하게 피어있고 여러 시인의 이름다운 시를 새겨 넣은 멋진 돌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웅장한 조각 작품들도 중간중간 설치해 예술 공원의 진가를 발휘해 준다. 또 그 안에 허브랜드라는 작은 공원에는 각종 아기자기한 허브 종류와 조류, 어류에 카페까지 꽃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모두가 아름답고 황홀함에 찬사와 환호를 아끼지 않으며 예쁜 꽃 속에 묻혀 꽃이 예쁜지 우리가 예쁜지 서로 뽐내기라도 하는 듯 다양하고 예쁜 표정으로 연신 핸드폰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다. 

   

조잘조잘 끊임없는 수다를 떨며 다시 숙소 근처 해수욕장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밤바다로 나갔다. 밤바다는 낮과 사뭇 다르다. 낯에는 주위에 시선을 의식했다면 밤이 되니 주위의 시선이 덜 느껴진다. 한 친구가 양말을 벗어던지고 바지를 둥둥 걷어 올리더니 바다 물속으로 첨벙첨벙 들어간다. 그리고는 한 사람씩 물속으로 끌어들인다. 서로 끌고 당겨 모두가 물속으로 풍덩풍덩 뛰어들었다. 아직 밤 기온은 쌀쌀하다. 물가 모래 위를 걷는 사람은 많지만, 물속에서 노는 사람은 우리뿐이다. 주위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으니 용기가 났다. 물속에서 마음껏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우리만의 작은 일탈을 즐겼다. 우리의 왁자지껄 수다와 깔깔깔… 웃는 웃음소리가 바닷바람을 타고 넓은 해수욕장에 울려 퍼진다. “나사 하나쯤 풀린 듯 살짝 미쳐야 삶이 재밌다”라는 한 친구의 말처럼 우리는 어두워져 세상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틈을 타 살짝 미쳐본 시간이다. 초등학교 6학년 생으로 돌아가 춤추며 노래하고 뛰며 허벅지가 뻐근하도록 놀고 나서 늦은 시간에야 숙소로 들어왔다. 

   

 다들 준비해 간 흰 티셔츠와 파자마를 갈아입자 한 친구가 여행용 가방에서 와인 두 병을 꺼낸다. 모두가 놀란다. 술이라고는 입에도 못 대는 친구들이다. 알코올도수 5퍼센트란다. 안 취하니 걱정하지 말고 한 잔씩 받으란다. 호기롭게 한 잔씩 받아 들고 ‘빠삐따’(나이 들면 빠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따지지 말자) 하고 건배사를 큰 소리로 외치며 건배했다. 마셔보니 정말 환타 맛이다. 취하지 않을 것 같아 한 잔씩 받아 홀짝홀짝 마셨다. 각처에서 오느라 힘들었고, 백사장을 신나게 누비며 놀아서인지 와인 한잔을 먹고 나서는 하나둘씩 눈꺼풀이 풀리기 시작한다. 계획은 지난해 같이 맞춰 입은 티셔츠를 똑같이 입고 동영상을 찍어 동영상으로나마 스승님께 인사를 드리려 했었는데 동영상의 촬영도 못 하고 5퍼센트 알코올의 와인 한 병에 모두가 떨어져 잠들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 된장찌개와 밥을 하고 각자 준비해 간 반찬 한 가지씩 꺼내놓으니 진수성찬이다. 맛깔난 아침밥을 먹고 대천에 있는 스카이레일 바이크 장으로 출발했다. 땅 위가 아닌 바다 위를 달리는 레일 바이크는 바람결에 아찔아찔한 긴장감과 약간의 공포감도 느껴진다. 유난히 무서워하며 눈을 못 뜨고 떨고 있는 친구를 놀리면서 다시 한번 배꼽을 잡고 웃으며 이번 여행의 막을 내렸다. 

   

 우리는 여행 중 처음으로 마신 술로 잠이 들어 계획대로 동영상을 촬영하지 못한 아쉬움이 조금은 남았지만, 대천 앞바다 바닷물 속에서 초등학생으로 돌아가 순수하게 마음껏 웃고, 춤추며 노래도 불렀다. 그 순수함으로 돌아가 힐링도 했고 술에 취해 곯아떨어져도 보았던, 우리만의 작은 일탈의 즐거웠던 추억을 가슴에 고이 담아 간직하고, 다음 여행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자는 약속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안전하게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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