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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Jul 29. 2024

추억여행

초등시절의 추억 

스승의 날 즈음 인천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 창밖은 온통 연초록이다. 봄 햇살은 눈이 부시게 화사하다. 차창 밖 아름다운 풍경과 곧 만나게 될 선생님과 친구들의 모습에 설렘으로 가슴이 뛴다.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 여섯 명이 각자 다른 지역에서 초등학교 육 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께서 살고 계신 대전으로 모인다. 친구들과 단체 카톡방에 서로 어디쯤인지 근황을 묻고 전하며 대전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대전에 사는 친구가 차를 가지고 미리 터미널에 나와 기다리고 있다. 친구의 차를 함께 타고 기차를 타고 서대전역으로 도착하는 친구들을 마중했다. 서대전역에서 만난 친구들과 화장실에 모여 내가 준비해 간 “스승님 존경합니다” 라 쓴 흰 티셔츠를 시끌벅적 웃으며 갈아입고 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선생님은 사모님께서 준비해 주신 간식 바구니를 들고 미리 아파트 주차장에 나와 기다리고 계신다. 오랜만에 뵙는 선생님의 모습에 좀은 놀랐고 마음이 아프다. 테니스를 오래 치셨고 농구, 배구, 운동을 잘하시던 멋진 총각 선생님이셨다. 젊은 시절 테니스 치다 다쳤던 다리를 제때 치료를 못 해 연세가 드시니 편치 않으시단다. 다리를 약간 절고 계셨다. 다리 때문에 운동을 못 하시니 건강이 약해지신 듯하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 항시 젊고 멋진 총각 선생님의 모습만 상상했는데, 더 늦기 전에 잘 찾아뵈었구나 싶다. 

   

자기 차를 가지고 안산에서 내려오는 친구가 차가 밀려 조금 늦게 도착했다. 도착하자 차 속에 숨어 티셔츠를 갈아입고 모두 선생님 앞에 모여 겉옷을 벗으며 “스승님 존경합니다”를 외쳤다. 선생님의 흐뭇해하시는 표정에 모두가 행복했다. 선생님께서는 멀리서 운전하고 온 제자를 걱정해 주신다. 친구 차는 선생님 댁 주차장에 주차해 놓고 대전 사는 친구 차와 선생님의 차로 옥천에 있는 선생님의 농장으로 가자 하신다. 다리도 불편하신데 괜찮냐는 우리의 걱정에 운전하는 데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고 걱정하지 말라 하신다. 

    

선생님 차와 대전 사는 친구 차에 나누어 타고 사모님께서 준비해 주신 간식 바구니를 들고 농장으로 갔다. 농장 방에 들어간 우리는 한 친구의 구령에 맞춰 겉옷을 벗고 똑같은 하얀 티셔츠에 “스승님 존경합니다.”라고 쓴 옷을 입고 나란히 서서 절로 인사드렸다. 선생님께서도 반백의 머리에 할머니가 되어 찾아온 제자들의 절을 같이 맞절로 받아 주신다. 그리고는 사모님께서 준비해 주신 간식을 탁자에 위에 펼쳤다. 떡과 만두, 참외, 오렌지 모두 먹기 좋게 깎아서 담고 커피와 물까지 보온병에 따뜻하게 준비해 주셨다. 감동이다. 멀리서 오는 제자들 아침이나 제대로 먹고 왔을지 걱정이셨단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간식을 먹으니 기운도 넘친다. 우리는 선생님을 모시고 봄꽃이 흐드러진 농장 정원으로 나갔다. 초등학교 6학년 생으로 돌아갔다. 호호 하하 웃으며 서로 선생님 옆자리 차지하려 밀치며 사진도 찍고 동심에 젖어 행복했다.          

   

순간 이대로 잠깐의 만남을 뒤로하고 몇 시간 후 헤어져야 함이 못내 아쉽다. 하루 더 같이 보내자는 나의 의견에 망설임 없이 만장일치다. 급히 숙소를 찾았다. 다행히 평일이라 공주 한옥 마을에 숙소가 있다. 얼른 예약했다. 공주는 우리 모두 가 태어났고 자라 초등학교를 함께 다닌 곳이다. 우리는 하루의 시간을 더 벌어놓고 여유롭게 선생님께서 계획해 둔 옥천과 금산의 멋진 드라이브 코스를 돌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께서 금산 월영산에 새로 생긴 출렁다리를 안내해 주신다. 다리가 불편하신 선생님께서는 차에서 기다려 주셨다. 우리는 기분 좋게 산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출렁다리에서 “야호” 하고 마음껏 소리쳐보며 힐링의 시간을 보내고 월영산 출렁다리를 한 바퀴 돌아내려왔다. 

   

다음 코스로는 금산에서 어죽과 도리 뱅뱅이 잘하는 식당으로 안내해 주셨다. 도리 뱅뱅이와 어죽을 시키신 다음 인삼 막걸리도 한 잔 시키신다. 막걸리를 한 잔씩 따라 주시며 건배사를 제안하신다. 선생님께서 “우리 모두”를 선창 하시면 우리는 “빠, 삐, 따”를 후창 하라 하신다. 우리는 뜻도 모르고 술잔을 높이 들며 빠,삐, 따를 크게 외쳤다. 건배사를 외치고 무슨 뜻인지 모두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다. 나이 들면 “빠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따지지 말고” 살라 하신다. 절실히 공감되는 말이다. 이번 여행도 아무도 빠지지 않고, 삐지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 함께했으니 지금 이리 행복한 것이다. 맛있는 도리 뱅뱅이와 어죽을 먹고 멋진 드라이브 코스를 돌아 대전 선생님 댁으로 돌아왔다. 선생님과의 행복하고 따뜻했던 하루는 우리의 지쳤던 몸과 마음을 힐링해 주었다. 

    

늦은 저녁 시간 선생님과 헤어져 공주 한옥 마을 숙소로 왔다. 선생님과의 행복했던 하루의 추억을 가슴속에 간직하며 우리에게 더 주어진 내일 하루를 알차게 계획했다. 즐거웠던 하루를 소재 삼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밤을 지새웠다. 잠을 잔 듯 만 듯 아침을 맞았다, 그래도 피곤함이란 없다. 마음의 치유를 제대로 한 덕분이다. 아침 식사 후 고향을 지키며 다육식물을 가꾸는 친구 집에 들렀다. 농장 옆에 낡은 피아노 한 대가 있다. 나의 서툰 반주에 맞춰 고향의 봄과 산토끼, 작은 별 등 동요를 함께 부르며 동심의 시간을 보냈다. 다육식물도 얻고 그 친구 부부와 함께 우리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둘러보았다. 이미 폐교되어 운동장에는 풀만 무성했다. 그 커 보였던 운동장도 손바닥만 한 느낌이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어릴 적 내가 살던 고향 집이 있다. 옛집에도 가보았다. 부모님 떠나신 뒤 십여 년 만에 찾은 고향 집은 지금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지 인기척도 없이 폐허처럼 변해있다. 아련한 그리움이 밀려와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목까지 차오르는 그리움을 가슴깊이 묻어두고 고향에 사는 친구의 안내로 인근에 있는 시골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 식사를 나누고 헤어져 각자의 보금자리로 떠났다. 중년을 지나 노년으로 접어드는 초등 친구 여섯 명과 함께 초등학교 육 학년 담임 선생님을 찾아뵈며, 고향 마을도 돌아보고 행복했던 나의 추억 여행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돌아오는 차창 밖은 출발할 때의 화사했던 햇살과는 대조적이다. 희뿌연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어린 시절 추억에 젖었던 친구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나의 마음과 닮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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