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원장 Jul 08. 2024

문화 지체 극복기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지병으로 오래 고생하시던 시어머님께서 이십여 년 전 정월에 돌아가시고 건강하셨던 시아버님께서도 같은 해 팔월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나의 남편은 7대 종갓집의 장손이다. 종갓집인 우리가 많은 기제사를 모셔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일이었지만 갑자기 제사를 모셔 오면서 당황스럽다. 그간은 시부모님 뒤 수발만 들었지 직접 해보지 않은 일이라 걱정이 된다. 

    

시골 시부모님 댁에서는 다식틀까지 준비되어 있어 콩다식, 검정깨 다식, 송홧가루 다식 등 세 가지 다식을 집에서 직접 만드셨고 육전에 어전, 채소전까지 세 가지의 전과 삼색나물과 김 조기에 홍어찜에 천엽에 소의 날간까지 나로서는 처음 보는 음식에 손질 법도 모르는 음식이 많다. 양도 어마어마하다. 제기 위로 음식을 쌓아 올리시는 시아버님의 솜씨가 묘기를 부리시는 것 같다. 시간도 딱 자정이 되어야 지냈다. 제사를 모시고 뒷정리를 끝내고 나면 새벽 서너 시는 거뜬히 지난다. 그 길로 다시 시댁 공주에서 내가 사는 인천으로 그 밤에 다시 올라오면 출근 시간이다. 잠은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출근해야 했다. 시부모님께 제사를 조금 일찍 모시면 안 되냐고 말씀드리니 완고하시다. 나중에 너희가 모실 때는 마음대로 해도 되지만 지금은 안된다고 잘라 말씀하신다. 맏며느리를 끔찍이 아끼셨던 시아버님이시지만 제사에 대해서만은 전혀 양보나 특혜가 없으셨다. 

    

두 분이 갑자기 다 돌아가시고 이제 제사 준비를 내가 하게 되었다. 시골에서 하던 형식을 조금씩 바꾸어 보려고 마음먹고 낡은 다식틀은 가져오지 않았다. 틀이 없으니 당연히 다식은 만들 수 없다. 다식은 제사상에 올리지 말자 생각했고, 설탕을 물들여 만든 새빨갛고 알록달록한 사탕도 너무 달아 아무도 먹지 않으니 준비하지 않았다. 소간에 천엽 홍어 등 준비하기 번거로운 것은 모두 빼고 내가 모시는 첫제사의 준비를 해 놓았다. 제사 전날 내가 준비해 놓은 제물을 확인한 남편은 놀라며 화를 버럭 낸다. 두말없이 마트로 달려가더니 다식에 진한 색상의 다양한 사탕 과자들 어시장까지 다녀왔는지 껍질도 벗기지 않은 홍어까지 사 들고 씩씩거리며 들어온다. 기가 막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의 날간과 천엽은 못 구했다 아쉬워한다. 

    

은근히 화가 난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나의 남편은 변하면 하늘이라도 무너질 듯 변하지 않고 옛것을 고수한다. 그 뒤로는 “당신 사다 주는 대로 할 테니 알아서 사 달라” 말했다.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다. 홍어의 껍질을 벗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처음으로 해보는 일에 남편과 둘이 매달려 애를 먹고 난 뒤론 홍어찜도 포기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구하기 힘든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매번 사다 주는 대로 소리 없이 제사 음식을 준비했다. 제사가 끝나고 나면 먹지 않고 며칠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 버리는 음식이 많다. 아까웠다. “조상님들은 자손들이 힘들게 번 돈으로 요리해서 버리는 것을 좋아하겠냐?” 계속된 내 잔소리로 잘 먹지 않는 기성 제품으로 나온 다식이나 알록달록한 사탕 등은 점차 제사상에서 사라졌다. 

   

시아버님의 기일이 추석 다 다음날이다. 그날은 추석 차례 음식도 그냥 남아 있는데 똑같은 제사 음식을 장만해 놓으면 먹지도 않고 같은 음식을 연속으로 이어서 준비하는 나도 미리부터 질린다. 추석 차례 음식과 아버님의 기일 음식이 겹치니 음식을 바꾸자 또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예전에 먹지 않던 피자에 치킨에 새로운 음식들을 골고루 먹으면서 왜 제사상차림은 수십 년을 한결같이 어릴 적 시골에서부터 보던 대로 준비하는가? 매번 똑같은 나물에 똑같은 전과 돼지고기. 닭고기 모두 푹푹 삶는 음식만 대접하는가?” 요즘 세대가 변했으니 우리 제사 문화도 바뀌기를 노래했지만, 묵묵부답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남편이 답답했다. 

   

그런데 올해 시조부님의 기일과 원장 필수교육인 “아동학대 예방 교육” 일이 겹쳤다. 고민이다. 두 가지 모두 내가 빠질 수 없는 일인데 남편에게 고민을 이야기했다. 그럼 점심시간에 잠시 나와서 두부와 간단한 전 두어 개 붙이고 나물 세 개와 탕국만 끓여 놓고 가란다. 삶은 닭 대신 전기구이 통닭과 육전 대신 고기 피자로 대체해 보겠다고 말한다. 놀랍다. 몇 년을 음식 바꾸자 설득했지만, 목석같이 꿋꿋하고 변함없던 남편이 마누라의 교육으로 날씨도 덥고 미리 준비도 못 하게 생겼으니 음식을 바꾸겠단다. 내심 교육과 제사가 겹친 것이 고마웠다. 그렇게 점심시간에 나와서 제사 준비를 간단히 준비해 놓고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교육장으로 출발했다.

   

저녁 7시에 교육이 끝났다. 소고기와 닭, 돼지고기를 사다 놓고 삶으라 할까 봐 은근히 걱정하며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왔다. 시동생과 동서랑 남편 셋이서 제기를 꺼내서 씻으며 준비하고 있다. 닭과 피자는 시켰으니 곧 올 거란다. 감격이다. 처음으로 닭 삶지 않고 육전도 부치지 않고 전기 통닭구이와 고기 피자라는 새로운 제수를 차려 시 조부님의 기제사를 모셨다. 제사를 모시고 모두가 피자와 전기구이 통닭을 맛있게 먹는다.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도 편안하지만 먹는 사람들도 좋아 보인다. 이 습하고 더운 장마철 여름 제사 준비로 닭과 돼지고기 푹푹 삶아대고 전 부치고 나면 집에 있는 모든 냉방기기를 풀가동 해도 음식 냄새와 열기가 쉬 빠지지 않는다. 그런 쾌쾌하고 습한 집안의 공기 속에서 제사 후 먹는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맛도 잘 모르고 먹는다.

   

오늘은 집안의 공기부터가 쾌적하고 좋다. 남편의 표정을 살폈다. 남편은 피자와 통닭을 좋아한다. 그저 말없이 피자와 통닭에 음복주를 시동생과 한 잔씩 나누고 있다. 싫지 않아 보인다. “어때요. 편안하고 맛있고 좋지요?” “그러게 이제 당신도 힘들고 바꾸긴 바꿔야 할 것도 같긴 한데…” 하며 깊은 심호흡으로 대답한다. 남편도 편안하고 좋은 것은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아들아이 결혼 전이니 몇 해 전이다. 직장에 집안 제사라서 조금 일찍 퇴근해야겠다고 하니 상사분이 요즘도 제사 지내는 집이 있냐고 놀라더란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그 정도라니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있다. 우리도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변하는 것이 맞는다는 생각이다. 이번 제사를 계기로 우리도 더 이상 문화 지체로 살지 않고 시대에 발맞춰 변화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