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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Jul 01. 2024

세상사 마음먹기 달렸더라

현실과 잘 타협하기 

“내일모레 조부님 기일에 아이들 퇴근 후 잠시 다녀가라고 해요.” “이번 주말 아이들 이사인데 어떻게 다녀가요?” “이사니까 더 다녀가야지요.” 아니 무슨 어불성설인가? 직장 다니는 아이들이 휴일도 아닌 평일, 더구나 주말에 이사가 잡혀있는 주의 주중이다. 정신없을 텐데 어떻게 다녀가라고 하냐며 남편과 옥신각신했다. 남편은 칠 대 종갓집 종손으로 어릴 적부터 조상님들께 제사 모시는 것을 보고 자라서인지 제사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긴다. 나는 그런 남편과 아들, 며느리 사이 중간에서 곤란할 때가 더러 있다. 이쪽도 저쪽도 불편하지 않도록 중간 역할을 잘해야 했다.

     

아이들에게는 “내일모레가 할아버지 기일이니, 아버지께 이사도 해야 하고 바빠서 못 간다고 전화라도 한번 해드릴 수 있겠니?” 하고 카톡을 남겼다. 싹싹하고 눈치 빠른 며늘아기에게서 얼른 답이 온다. “예 어머니 죄송하지만, 이번에는 못 갈 것 같아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님께는 따로 전화드릴게요.” 젊은 아이가 나이 든 사람의 마음을 곧잘 헤아려 주니 고맙다. 사실 나도 제사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아이들에게도 사후 나의 제사는 챙기지 말고 차라리 살아 있을 때 신경 써 달라 말한다. 반면 나의 남편은 본인의 제사는 푸짐하게 잘 차리란다. 그때는 제삿밥 못 얻어먹는 친구들이 많아질 테니 모두 데리고 오겠단다. 

   

이번 시조부님의 기일이 있는 주 주말은 아들 며느리가 결혼하고 처음으로 자기 집을 장만해서 이사 가는 날이다. 아이들 이번 제사는 이사로 준비할 것도 많고 바쁠 테니 오지 말라고 하자 말하니, 남편은 조상님의 보살핌으로 집도 장만하게 되었으니 조상님 제사를 더 잘 모셔야 한단다. 그 말을 들은 며늘아이는 “아버님 이번 제사는 참석이 어려우니 대신 이사해 놓고 조상님의 산소에 집 등기 나오면 가지고 찾아뵐게요.” 하고 말한다. 고맙고 놀랍다. 시아버지의 고리탑탑한 사고를 이해하고 편안하게 해 드리려고 최선을 다하는 지혜로운 모습이 기특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그럼 이번 제사는 오지 말라고 말한다. 할 말이 많았지만, 그 정도에서 잘 해결됨에 다행이라 생각하고 참았다. 

    

처음에는 그런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답답하고 고지식하다고 생각하며 종갓집 큰며느리로서 시댁의 제사에 대한 불만으로 다툼도 있었다. 하지만 종교가 없는 남편은 매사를 조상들이 돌봐 준다 생각하며 조상을 잘 섬겨야 후손이 잘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남편은 제사를 정성껏 잘 모시고 나면 마음 편안해한다. 제사를 잘 모시지 않으면 벌이라도 받을 것 같은 마음인 듯하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믿는 신에 의지하는 마음과 딱히 따로 믿는 신이 없는 사람의 조상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일맥상통한다 생각하게 되었다. 매주 아니면 매월 교회나 절을 찾는 의식을 하지 않는 대신 조상들의 제사 때만이라도 조상님을 기리며 바라는 바를 간절히 부탁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남편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힘이 있는 한 당신 마음 편하도록 조상님들의 기제사 잘 모실 테니 아이들에게만은 더 이상 요구하지 말기를 은근히 어필하고 있다. 

    

그리고 몇 주 뒤 주말이다. 아이들이 이사 정리도 대충 되었으니 조상님을 모신 고향 선산을 찾아뵙자 한다. 임시변통으로 낸 의견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조상님 산소에 찾아뵙자 하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아이들도 제사에 대한 의미를 크게 두지 않는 것 같지만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마음 편안하게 해 주려 노력하는 깊은 속내가 예뻤다. 아이들을 앞세우고 든든한 마음으로 선산 조상님을 찾아뵈었다. 막걸리 한잔에 북어포와 과일 몇 가지를 차려놓고 절을 올리며 흐뭇해하는 남편의 표정에서 평온함과 행복감이 깃들어 보인다. 그 모습에 아이들과 나도 행복했다. 

    

조상님의 산소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 며늘아이가 내게 하는 말이 “어머님께서는 제사 준비를 정말 즐겁게 하시는 것 같아요. 비결이 뭐예요?” 하고 묻는다. 평소 내 생각을 말해주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자기가 믿는 신에게 의지하지만, 신앙생활을 하지 않은 아버지는 조상에 의지하는 마음인 것 같아 이해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한 해에 몇 번 제사 준비 한다고 수명이 단축되거나 건강을 해치는 것도 아닐 테고 힘이 닿는 한 즐겁게 제사 모시기로 마음먹으니 편안하고 즐거워지더라고, 더구나 제사 모시고 나면 뿌듯해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엄마도 그냥 흐뭇했다고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더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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