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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Dec 16. 2024

나는 집밥 파였다

나의 과거 

나는 집밥 파다. 외식은 싫다.’ 스스로 그리 정해놓고 외식 문화를 터부시 해 왔다. 집에서 정성껏 내 입맛에 맞게 만들어 먹는 음식이 건강과 영양 정서 모든 면에서 최상이라 생각했다. 아들아이의 어릴 적부터 친했던 친구가 군에 입대할 때다. 집으로 초대해 삼겹살과 등심을 노릇노릇 구워 배불리 먹이며 스스로 만족하고 흡족해했다. 며늘아기가 결혼을 결정하고 첫 번째 인사를 온단다. 집에서 모든 음식을 손수 정성껏 만들어 먹이며 최선을 다했다 뿌듯해했다. 큰오빠가 얼마 전 혼자되셨다. 밖에 밥으로 끼니를 때울 때가 많다. 가끔 내가 내려갈 때만이라도 집밥을 드시도록 밑반찬에 국거리를 준비해 갔다. 한 끼라도 내가 좋아하는 집밥을 더 드시게 했다는 자부심으로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집밥 예찬론자였다. 

   

올여름 날씨가 유난히 더웠다. 여름휴가에 아이들과 시부모님 산소와 외가댁을 대신해서 큰 외삼촌 댁을 방문하기로 했다. “어머님 날씨가 꽤 더우니 이번엔 외삼촌 모시고 밖에 나가서 식사해요” 외식을 즐기지 않는 며느리와 나였지만 날씨가 여간 덥지 않다. 반찬을 준비하기도 힘들어 그러자 했다. 저녁을 밖에 나가 먹고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잔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아 오손도손 정담을 나누었다. 삼복더위에 더운 줄 모르고 시원하게 식사하고 편안하게 담소를 나눌 수 있다. 따로 신경 쓸 일 없이 대화에 집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대화의 질이 높아지며 서로 이해의 폭도 넓어진다. 몸과 마음이 편하니 행복하다. 늦은 시간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원한 카페에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집에 들어와 집에서는 씻고 잠만 자니 이상적이다. 이 맛에 외식을 즐기며 외식 문화가 성행하는구나! 누군가는 식사 준비에 설거지에 비지땀을 흘리며 준비와 마무리를 해야 할 텐데…. 모두가 공평하게 함께 즐길 수 있다. 한가롭게 식사하고 편안하게 대화를 즐길 수 있음에 이제야 외식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집밥 파다.” 그것이 자랑인 듯 며느리를 맞이하고 가감 없이 나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예 어머님 저도 외식 썩 좋아하지 않아요”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서로 이견 없이 가족이 만날 때마다 아이들 집에서도 우리 집에서도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시아버지 생일상도 며늘아기가 손수 음식을 만들어 준비했다. 나도 남편의 생일상을 그렇게 정성껏 차려 본 기억이 없는데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지내기를 오 년이 흘렀다. 남편의 생일이 음력 시월이다. 겨울로 접어드는 환절기라 날씨가 을씨년스럽고 환절기 감기가 기승을 부릴 때다. 올해 남편의 생일 무렵 며늘아기가 감기에 걸렸단다. 직장 다니랴 감기까지 걸려 시아버지의 생일상 때문에 마음 쓰일 며느리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이제 우리도 밖에서 먹자”“그래도 괜찮을까요?” “그래 아빠가 좋아하는 메뉴로 선택하면 좋아하실 거야” 우리의 생각이 적중했다. 남편도 만족스러워한다. 아이들과 밖에서 맛난 음식을 사 먹고 간단히 차와 케이크를 준비해 집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케이크를 자르고 선물을 교환하고 나니 깔끔하고 편안하니 효율적이란 생각이다. 서로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더 벌었다. 예전 같았으면 준비하느라 이삼일을 고생하고 음식을 차리고 치우느라 진솔한 대화의 시간도 없었을 텐데…

   

요즘 다들 맞벌이에 바쁘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가끔이라도 볼라치면 먹을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먹고 나면 정리도 해야 한다. 지치고 힘들어지면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우선 만나면 편하고 즐거워야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집밥만 좋다고 고집했던 것이 얼마나 시대에 뒤진 생각이었나 싶다. 시대의 변화에 유연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 난 집밥 파다”하고 자랑스럽게 말했던 것이 겸연쩍다. 60대도 중반에 들어서서야 외식의 편리함을 알았다. 그간 집밥만을 고집했던 내가 얼마나 무모했나 깨닫게 된 것이다. 문명의 이기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융통성 없는 사람이었다. 밖에 나가면 맛나고 좋은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이제라도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여 편리한 생활을 즐겨야겠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 했던가 이제부터 이 편리함에 길들어 외식 문화 예찬론자로 바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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