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를 보고 배운다.
“날씨도 추워졌는데 날 배추로 보내서 어찌 김장은 잘했는지 걱정되어서” 전화기 너머의 째깐 언니 목소리다. “응 언니 덕분에 맛난 배추로 김장 잘했어.” 배추와 무, 쪽파, 대파, 고춧가루까지 손수 농사를 지어서 다 보내주고도 김장을 못 해준 것을 걸려 한다. 칠 남매 중 유일하게 시골에 사는 둘째 언니다. 어릴 적부터 조그만 언니라 불러서인지 지금도 째깐 언니란 말이 입에 배었다. 언니는 가끔 “야! 내가 얼마나 작으면 째깐 언니라 부르냐?” 불평도 했지만, 여전히 내겐 째깐 언니다.
남아 선호 사상이 심했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우리 집안은 유독 더 심했던 모양이다. 째깐 언니는 위로 언니 하나 오빠 하나를 두고 있는 셋째인데도 딸이라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달가워하지 않으셨단다. 더구나 둘째 오빠인 남동생을 연년생으로 보면서 어른들은 어린 손자만 챙기느라 한 살밖에 되지 않은 손녀는 어른들의 관심에서 밀리며 젖배도 많이 골았다고 한다. 젖배 고는 어린 딸이 안쓰러워 고아원에라도 보낼까 했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화가 났고 언니한테 한없이 미안했다. 언니가 측은하단 생각과 엄마가 밉기도 했다. 어찌 자기 자식을 고아원에 보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엄마에게 따졌던 적도 있다. 엄마는 배고팠던 그 시절의 이야기하며 요즘처럼 분유도 없고 쌀도 귀해서 암죽도 제대로 못 먹여 혹시 아이가 죽을까 봐 그랬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치신다. 그 고되었던 시절이 그려진다.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뒤론 우리에게 아픈 상처인 그 이야기는 대상이 되었다.
그런 언니는 어릴 적부터 인정이 많아 농번기에는 동생들도 잘 보살피며 부모님의 일손을 제일 많이 도와주는 착한 딸이었다. 언니는 명절에 사주는 설빔이나 추석빔을 사준다 해도 동생들 먼저 사주라 양보했다. 어쩌다 고기반찬이 나오면 고기는 골라 엄마의 밥그릇이나 동생들 밥그릇에 넣어주었다. 그런 언니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야 하나’하고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나는 맛난 것 내가 먹고 싶었다. 설 빔도 추석빔도 내가 먼저 받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육성회비도 동생들 다 낸 뒤에 언니는 제일 마지막에서야 낸다. 나는 그것도 싫었다. 학교에서 육성회비 봉투를 받기 무섭게 바로 주지 않으면 떼를 부려서라도 빨리 내야 했다. 어릴 적 나는 그런 언니가 이해도 되지 않았고 어떻게 저렇게 동생들부터 생각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언니는 천사인가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뒤로는 김장도 언니 집에 모여서 함께했다. 툭하면 언니 집에 모여 옻닭도 해 먹고 삼겹살도 구워 먹으며 캠프 화이어도 했다. 언니 집이 우리 형제자매의 구심점이 되어 모임의 장소가 되었다. 언니는 손수 농사지은 나물이며 양념으로 반찬을 뚝딱뚝딱 맛나게 만들어 내며 우리의 입을 행복하게 해주곤 했다. 봄이면 쑥을 뜯어 쑥 개떡을 만들어 냉동실에 얼려서 칠 남매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가을이면 손수 농사지은 콩으로 청국장을 만들어 또 나누어 준다. 어릴 적부터 부모나 동기간들에게 베풀기만 했던 언니가 어른이 되어서도 베풀기만 하는 것이 늘 고맙고 미안했다.
지난여름 된 더위로 모든 사람이 힘들어하고 있을 때다 시골에서 더위에 어찌 지내는지 또 며칠 전 위내시경을 받았는데 결과가 나올 날이라 궁금해 언니에게 전화했다. 통화가 안 된다. 답답하고, 걱정된다. 잠시 후 언니한테 연락이 왔다. 가족이 모두 병원에 다녀왔단다. 위내시경 결과 위에 나쁜 혹이 발견되었단다. 나쁜 혹이란 말에 말을 잊지 못했다. 믿고 싶지도 않았다. 시골에서 유기농으로 제일 건강한 음식을 먹고 산다 생각했는데 위암이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누구라도 붙잡고 따지고 싶다. 세상 착한 우리 언니에게 그런 나쁜 병을 주냐고? 누구라도 붙잡고 도와달라 매달리고 싶다. 그 나쁜 혹을 씻은 듯 잘라 내게 해달라고… 어릴 적부터 남부터 챙기던 언니가 이제 좀 편안해 질만 하니 또 아파서 고생할까 봐 덜컥 겁이 나고 무섭다 다행히 그 나쁜 혹은 아주 작단다. 내시경으로 그 부위를 제거하는 간단한 수술로 가능하단다. 하지만 이 나쁜 혹은 조금만 남아 있어도 다시 고개를 들고 사람을 괴롭히는 병으로 알고 있다. 완전하게 혹을 제거해 내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 덕분인지 언니의 착한 마음 덕분인지 내시경을 이용해서 수술을 잘 마치고 회복 중이다.
그런 와중에도 동생의 김장을 못 해줘 마음을 쓴다. 마음을 이리 많이 쓰니 저런 나쁜 병이 찾아온 것은 아닌지 그간 나도 언니를 힘들게 한 부분은 없는지 반성도 하게 된다. 언니 집에 자주 모였던 것 김장도 같이했던 것들이 언니를 힘들게 한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다. 더 이상 힘들게 하지 말자 생각했다. 언니의 일을 겪고 보니 돈 보다 명예보다 건강이 우선이란 생각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나이 먹어 욕심은 내려놓고 건강도 챙겨 가며 쉬엄쉬엄 살아야겠다. 우리에게 모두가 함께할 시간이 얼마가 될지 모르겠다는 불안한 생각이 든다. 동기간들과도 함께 할 수 있을 때 더 자주 함께해야겠다. 째깐 언니가 우리 언니라서 참으로 좋고 고맙다. 앞으로는 째깐 언니에게 받은 사랑을 나도 나누며 남을 먼저 배려하고 함께 손잡고 오순도순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