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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는 제사 문화

조부모님의 제사를 합치며

by 예담

“이번 일요일 할머니 기일인데 시간 가능하면 오후에 잠시 다녀갈 수 있니? 일요일이라서 아빠 기다리실 것 같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수요일쯤 내가 보낸 카톡이다. 분명 남편은 “일요일인데 왜 못 온대?”하고 나를 닦달할 것이다. 며늘아기는 아동심리 상담 일로 토요일도 근무한다. 쉬는 날이 많지 않다. 가정일과 할 일이 얼마나 많을까? 맞벌이한 나는 이해가 된다. 남편과 아이들 중간에서 이런저런 불편 해 질까 봐 미리 중재하려고 보낸 카톡이다. 제사 참석이 어렵다면 남편에게 설명해서 미리 이해시켜 놓아야 그날 마음 편할 것이다. 평일이면 아이들 퇴근도 늦고 어쩔 수 없다고 덮어주지만 마침 일요일이라서 더 신경이 쓰인다.


남편 마음도 이해가 되긴 한다. 종손으로 어릴 적부터 제사를 일상처럼 모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자랐다. 그런 생활로 생각이 굳어져 조상을 신처럼 생각하니 제사 모시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제사를 잘 모셔야 복을 받는다는 생각이다. 아이들이 잘되게 하기 위한 거란 걸 안다. 남편과 아이들의 제사에 대한 견해차가 심하여 양쪽의 입장이 팽팽하다. 양쪽 모두 이해하는 나는 매번 지혜롭게 중간 역할을 해야 한다. 이번 일요일 시어머님 기일에 이어 또 시할머님 기일이다. 그리고 며칠 뒤면 설 차례도 있다. 이십여 년 전 시부모님 돌아가시고 조 부모님의 제사는 부부 함께 한 번에 모시자 제안했다가 남편과 크게 다투었던 적이 있다. 남편은 조상의 제사 모시는 걸 신앙인들의 신을 섬기듯 함을 그때 알았고, 그대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 그동안 말없이 남편의 뜻을 따랐다.


아이들은 제사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우리 대에서 끝날 제사 문화다. 나도 연속적인 제사가 힘에 부치기도 한다. 서서히 제사 음식도 줄이고 조 부모님까지는 부부 함께 모시는 걸로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남편의 융통성 없는 생각이 걱정이다. 아이들에게 혹시 올 수 있으면 엄마의 의견에 힘을 실어 줄 것도 미리 당부해 두었다. 상황을 보고 말씀드리겠다던 며늘아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마 전부터 몸살 기운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제사 참석이 어렵겠단다. 아프다는 말에 마음이 짠하다. 일요일 하루 쉬는 아이인데. 많이 힘들겠구나 싶다. 힘든 상황을 모르고 제사 이야기를 했으니 며늘아기가 얼마나 마음 쓰였을까 안쓰럽다. “그래그래 걱정하지 말고 힘들면 안 와도 돼” 하고 안심시켰다. 아들도 대학원 공부가 필요해 입학 준비하느라 좀 바쁘단다. 마음이 뭉클하다. 열심히 사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힘든 줄은 몰랐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부모로서 미리 아이들의 고충을 눈치채지 못함이 미안하다.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이미 이야기했으니 당신까지 더 이상 부담 주지 말아요.” 하고 미리 부탁했다. 가타부타 답이 없다. 눈치를 살피니 남편도 안타까운 표정이다. 그 틈을 타서 이번에는 나도 양보하지 않으리라 각오하고 말해버렸다. 어머님, 할머님 기제사에 설 차례까지 나도 힘들다. 올해 조모님의 기일을 마지막으로 내년부터 조부님 기일에 두 분 같이 모시자 이야기했다. 또 묵묵부답이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눈치를 살폈으나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다음 날 저녁에 며늘아기에게서 카톡이 왔다. “어머님 감사해요. 아버님께 말씀 잘해주셔서 이번 할머니 기일에 오지 말고 편히 쉬라고 전화 주셨네요”다행이다. 아무런 대답도 없더니… 남편도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시어머님의 기일 날이다. 일요일이라서 혼자서 오전부터 차근차근 삼 전에 삼색나물로 제사 음식을 준비했다. 시동생 내외가 저녁 시간에 맞춰 왔다. 준비해 놓은 제물로 상을 차려 남편의 강신(혼을 불러들이는 향 피우기)을 시작으로 참신(모두 같이 절하기)과 초헌(첫 잔)으로 남편이 술 한잔을 올리고 두 번 절하고, 다음으로 아헌(두 번째 잔)으로 시동생이 술을 따른다. 종헌(마지막 잔)으로 내가 술을 따르고 동서가 첨작(마지막 잔에 더 드리는 잔)한다. 집안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이렇게 네 사람이 한 잔씩, 네 잔의 술을 따른다. 초헌에 이어 첨작까지 딱 네 사람이 필요하다. 예전 같았으면 작은댁 가족과 당숙들까지 거실을 꽉 메웠고 마당까지 섰던 제사 꾼들도 이젠 없다. 우리 부부와 동서 부부 넷이서 단출하게 한 잔씩 올리면 끝이다.


모든 절차를 끝내고 저녁 식사와 음복 한 잔씩 나누며 남편이 입을 열었다. “할머니 기일은 올해까지만 모시고 내년부터는 할아버지 기일에 함께 모시자, 당신과 제수씨도 그간 고생 많았어요” 하고 말한다. 대답이 없어 내심 저 고집불통 영감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지 궁금했는데 속으로 이미 결정해 놓고도 말이 없었다. 발표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불만 없이 단번에 결정해 주니 다행이다 싶다. 변하는 세상에 언제까지나 독야청청할 것 같던 남편의 변화를 보며 반갑기보다 왠지 모를 쓸쓸함이 밀려온다. 반백의 흰머리가 오늘따라 더 희어 보이고, 얼굴의 주름은 더 깊어 보인다. 제사를 줄이고 합치게 된 것은 그만큼 우리가 나이 들어 주변의 정리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제사에 대한 의미보다는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한다. 제사를 목숨처럼 여기던 우리 남편까지도 제사를 합치며 줄이고 있으니 앞으로 제사란 형식의 문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먼저 가신 조상님을 추모하는 마음만은 변치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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