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어르신을 처음 만난 곳은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앞 작은 교차로였습니다.
어르신은 아들 집에 다녀가는 길이었고, 저는 여느 때처럼 출근하던 길이었습니다.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와 좌회전하려는데 우측에서 걸어오던 한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좁은 건널목이라 아주머니가 먼저 지나가시도록 차를 멈추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좌우를 살피며 건널목을 건너시려다 순간, 갑자기 픽 쓰러지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차를 세우고 달려가 외쳤습니다.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일어나 보세요.”
아주머니는 ‘으... 으….’ 신음하며 힘겹게 몸을 움직이려 하셨습니다. 저는 아주머니 손을 잡고 천천히 일으켜 세워 드렸습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어 보였지만, 그냥 보내드리기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 전철역까지 태워다 드릴게요. 병원이 바로 옆이니 진료를 한번 받아보시는 게 좋겠어요.”
“아니에요, 미안해서 어쩌나…. 나 때문에 출근 늦은 거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사장이라 늦게 가도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하하하.”
저는 아주머니를 역 앞에 내려드렸고, 아주머니는 고맙다며 연락처를 물으셨습니다. 저는 명함 한 장을 건네드리고, 댁에 가시면 꼭 온찜질하시라고 당부드린 뒤 헤어졌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낯선 번호로 문자가 왔습니다.
‘시간 되실 때 연락 바랍니다.’
스팸 문자 같기도 하고 바쁘기도 하여 무시했는데, 점심때가 지나 똑같은 문자가 또 왔습니다. 이윽고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여보세요, 이상한 복지센터입니다.”
“거기 센터장님 좀 바꿔주세요. 며칠 전 우리 어머니를 도와주셨다고 해서요.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센터장님, 그곳이 아픈 사람 등급 내주는 곳인가요?”
“이곳에서 등급을 내주는 곳은 아닙니다. 등급 신청하는 방법을 모르시는 분들에게 등급 신청 안내와 접수를 도와드리기는 합니다. 혹시 어머니께서 그날 넘어지신 후유증이 있으신가요?”
“어머니는 덕분에 괜찮습니다. 아버님이 몸이 많이 안 좋으셔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아버님을 한번 봬도 될까요? 주소를 문자로 알려주시면 방문할 수 있습니다.”
그날 저녁 보내준 문자를 보고 어르신 댁에 방문하였습니다. 며칠 전 만났던 아주머니는 반갑게 내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봄인데도 겨울보다 더 춥네요”
“맞아요. 겨울보다 더 춥네요.”
아주머니가 갖다 준 우유를 마시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주머니는 제 코트에 더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아버님의 장기 요양 등급 신청을 도와드리고 나오려는데, 아주머니가 제 옷자락을 잡으셨습니다.
“어쩜 코트가 색이 너무 예쁘네요. 그런 코트를 사려면 어디 가야사요. 참 예쁘네요. “
아주머니는 계속 코트 이야기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예쁜 게 아니라 코트가 예쁘다는 소리였구나! 착각도 크크크 ’
“아주머니 전번에 넘어져 다치신 곳은 괜찮으세요?”
“무릎만 까졌지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요. 고마워요”
“할아버지는 어디가 많이 편찮으세요?”
“뇌경색으로 쓰러진 지가 10년도 넘었어요. 저렇게라도 걷는 것 많이라도 감사하지요”
“할아버지께서는 등급 신청을 하면 바로 등급이 나오겠네요. 접수 도와드릴까요?”
“네, 신청 도와주세요.”
아주머니는 할아버지 등급 신청을 도와달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할아버지 인적 사항을 메모하고 나오려는데 아주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그 코트 나도 하나 살 수 없을까요?” 시간 되시면 지금 나랑 코트 파는 곳 함께 가주면 안 될까요? “
나는 아주머니의 요청에 난감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어떡하죠, 여기저기 다니다가 사 입은 것이라 어디서 샀는지를 잘 모르겠어요. “
”그럼 그 코트 나한테 팔고 사 입으면 안 될까요?, 내가 돈 드릴게요. “
아주머니는 계속 코트를 팔라고 하시는 거였습니다.
”아주머니 이 코트가 그렇게 예뻐요? 나는 그냥 화사하고 가격도 저렴해서 사 입은 것인데….”
“잠깐 벗어봐요 한번 입어보게….”
아주머니의 애절한 표정 때문에 아주머니가 한번 입어보도록 코트를 벗어드렸습니다. 아주머니는 코트를 입고 화장실로 가시더니 화장실 거울 앞에 가서 얼굴을 쭉 내밀며 미소를 지으며 이리보고 저리 보고 손을 올려보고 뒤태를 보며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화장실에서 나와 말씀하셨습니다.
“이거 나 주고 가다가 사 입으세요”
아주머니는 지갑을 열고 5만 원권 지폐를 3~4장 정도 끄집어내려고 하셨습니다.
“그 코트, 나한테 팔면 안 될까요? 내가 돈 줄게요. 입어 보고 싶어서 그래요.”
“아주머니 아니에요. 다음에 제가 사 오면 그때 돈 주세요.”
안방에서 아주머니와 제가 하는 말소리를 듣고는 할아버지께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별거 다 욕심내네. 바쁜 양반 얼른 가시라고 보내드려.”
“알았어요.”
아주머니는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코트를 벗으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주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코트 벗지 마세요. 아주머니 입으세요. 저 가볼게요.”
저는 아주머니한테 코트를 벗어드리고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맺은 인연이 어느덧 10년이 흘렀습니다.
2024년 8월, 아주머니는 낙상 사고로 고관절 수술을 받으셨고, 이듬해 봄 퇴원하셨습니다. 등급 갱신을 위해 댁을 방문했을 때, 아주머니는 장롱 깊숙이 보관해 둔 그 핑크 코트를 꺼내 오셨습니다.
“센터장, 내가 이제 몸이 아파서 이거 입고 어디 다닐 곳이 없어. 도로 가지고 가서 입어요. 내가 그때 왜 욕심을 부렸는지…. 하하하.”
아주머니는 씁쓸하게 웃으시며 코트를 제 앞에 내려놓으셨습니다. 10년 전, 그토록 입고 싶어 하셨던 핑크 코트는 주인의 쇠약해진 몸을 떠나 다시 제게 돌아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후 아주머니는 다시 입원하셨고, 저는 병문안을 갔다가 '집에 들러 할아버지를 살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홀로 계신 할아버지를 뵈러 갔을 때,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는 비틀거리며 장롱에서 무언가를 꺼내 오셨습니다. 아주머니의 밍크코트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을 안 하시고 삐뚤삐뚤 걸으시며 장롱문을 열고 지팡이로 옷 장 속에서 옷을 끄집어내는 거였다. 그것은 아주머니 밍크코트였다.
어르신은 밍크코트를 끄집어내면서 말했다.
”우리 집사람이 아주머니 주라고 했어요, 그때 코트를 뺏어 입어서 미안하다나…. 이제 우리 집사람 잘 걷지도 못해 옷이 필요 없어요. 갖고 가서 입어요 “
”아닙니다. 어르신…. “
”우리 집사람이 주는 거니까 가지고 가요. “
”아닙니다. 다음에 차 가지고 와서 가져갈게요. 다른 어르신 집에 방문해야 하는데 가지고 다니기가…. 다음에 와서 가져갈게요. 아셨죠. 고맙습니다. “
나는 할아버지의 간곡한 말씀을 뒤로하고 허둥지둥 어르신 집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아주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에 눈시울이 갑자기 뜨겁게 핑 돌더니 눈물이 나왔습니다.
2025년 11월 4일 병문안을 가려고 세탁소에 들렀습니다. 아주머니가 나에게 돌려준 핑크 코트를 세탁소에서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핑크 코트를 가지고 몇 개월 만에 송파구 00 요양 병원에 병문안을 갔습니다. 아주머니께서 살이 너무 많이 빠진 것이 아니라 이제는 코트가 살이 너무 쪄서 입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 몇 개월 사이에 저렇게 쇠약해지시다니.’
10년 전 그날 새 주인을 찾아갔던 핑크 코트는 그렇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낡고 해진 모습이 아니라, 여전히 곱고 보드라운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일까요. 변하지 않은 고운 코트를 보는 제 마음은 더 쓸쓸해집니다. 차라리 이 옷이 닳아 없어질 만큼, 아주머니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꽃구경도 다니시고 꿈결 같은 시간을 누리셨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안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야위어 병상에 누워 계시는데, 핑크 코트 혼자 화사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부디 아주머니께서 회복하셔서 저 핑크 코트 색처럼 다시 한번 환하게 웃으실 수 있기를.
오랜 시간 아내인 아주머니께 가족요양을 받으셨던 할아버지는 아주머니 병원 입원 후 요양서비스 자체를 거부하고 계십니다. 일반 요양보호사에게 서비스받으시라고 권유하였으나 극구 거절하시고, 아주머니가 입으셨던 밍크코트나 가지고 가라고 성화이십니다. 결국 오늘도 할아버지를 설득시키지 못하고 어르신 집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다음에 또 방문하여 서비스받으라고 말씀드리면 그날처럼 밍크코트를 내놓으시며 가지고 가라고 할 터인데 난감한 상황입니다. 고객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이 슬픈 선물을 지혜롭게 거절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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