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4일 월요일 아침입니다.
김 00 요양보호사는 아침부터 ‘이상한 복지센터’ 문을 열고는 들어오지도 않은 채 말했습니다.
“센터장님, 선물입니다.”
김 00 요양보호사는 출입문을 살짝 열고 얼굴만 빼꼼히 내민 채, 멜론만 한 크기의 둥근 선물을 쑥 내밀었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구 쪽으로 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들어와서 커피 한잔하고 천천히 가시지 뭐가 그리 바빠서 얼굴만 빼꼼 내미십니까? 이건 무엇입니까? 뭐가 이렇게 가볍습니까?”
“하하하, 네, 선물입니다.”
김 00 요양보호사는 웃으며 아주 가벼운 선물을 제 손에 쥐여주며 말했습니다.
“센터장님, 저 바빠서 갑니다. 부자 되세요.”
김 00 요양보호사가 제 손에 건네주고 간 선물은 아주 가벼웠습니다. 저는 궁금해서 예쁜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뜯지 않고 확 뜯어보았습니다.
노란색 돼지 저금통이었습니다.
저는 돼지 저금통을 보자 2024년 아주 뜨거운 여름날에 돌아가신 심 00 어르신 생각이 났습니다.
심 00 어르신은 기초생활수급자셨습니다. 어르신은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이셨는데, 그 이유는 눈두덩이가 코 밑까지 내려와서 눈을 덮었기 때문입니다. 심 00 어르신은 편지나 문자를 볼 때는 눈두덩이를 추켜올리고 보셨습니다. 길을 걸어갈 때도 한쪽 눈두덩이를 올리고 더듬더듬 다니셨습니다.
저는 심 00 어르신에게 쌍꺼풀 수술을 권했습니다.
“어머니, 눈이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눈이 잘 보이시네요? 어머니 눈두덩이를 그렇게 올리고 다니지 마시고 쌍꺼풀 수술하면 예쁜 꽃도 보고, 예쁜 저도 보실 텐데... 어머니, 안과에서도 쌍꺼풀 수술을 해줘요. 비용도 얼마 들지 않아요. 저도 눈꺼풀이 내려와서 쌍꺼풀 수술했어요. 다들 예뻐지려고 수술 많이 해요.”
“그려, 예쁜 꽃도 보고 싶고 맘껏 달려 다니고도 싶은 게 내 소원이여...”
심 00 어르신은 예쁜 꽃도 보고 싶고 맘껏 달려보고 싶다고 하시면서도 얼굴 표정은 기쁜 기색이 아니셨습니다. 저는 양 00 요양보호사에게 가까운 안과에 할머니를 모시고 가서 상담을 받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선생님, 어르신 모시고 내일 안과에 가서 상담 한번 받아보고 전화해 주세요.”
“네, 알겠어요. 제가 내일 할머니 모시고 안과에 가보겠습니다. 센터장님 참말로 좋은 생각이십니다. 저도 어르신 모시고 다닐 때마다 마음이 짠해요.”
“어머니 쌍꺼풀 수술비 저도 돕겠습니다.”
어르신 수술비를 도우려면 돈이 필요했습니다. 캐비닛 위에 올려놓았던 빨간 돼지 저금통 5마리를 책상에 내려놓았습니다. 평상시에는 돼지 저금통에 오백 원, 백 원, 십 원짜리만 넣었는데, 할머니 수술비 때문에 오천 원, 만 원, 오만 원 지폐도 아깝지 않게 돼지 저금통에 넣었습니다.
다음날 오후 2시에 요양보호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따르릉, 따르릉~~~”
“예, 선생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안과는 다녀오셨나요?”
“네, 오늘 안과에 할머니 모시고 다녀왔어요. 할머니 쌍꺼풀 수술을 하려면 동의서에 사인해야 한다네요.”
“할머니한테 사인하라고 하면 되잖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펜을 쥐어 드렸는데 한참을 망설이시더니 끝내 못 하시겠답니다. 자식들도 안 해준 걸 어떻게 받느냐며 고개를 저으셔서 그냥 모시고 왔습니다.”
“비용은요?”
“할머니께서 사인을 안 하시는데... 비용은 안 물어봤지요.”
“아... 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달 수요일 날 제가 가서 할머니를 설득해 볼게요.”
2020년 4월 18일, 심 00 어르신 댁에 방문했습니다. 어르신은 저를 보자 제 손을 잡으며 고개를 숙이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흔을 넘게 살았는데... 참말로 고맙구먼요. 배 아파 낳은 딸년들도 에미 눈 걱정 한 번을 안 했는데 피 한 방울 안 섞인 센터장님이 이러니... 내 참말로 고맙구먼요.”
어르신은 제 손을 놓지 않고 고맙다는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저는 어르신께서 수술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습니다.
어르신은 ‘이상한 복지센터’와 만난 지 4년 4개월 만에 95세 일기로 소천하셨습니다. 저는 심 00 어르신에게 국화꽃 대신 되지 5마리를 영전에 바쳤습니다.
‘할머니, 천국에 가셔서 꼭 쌍꺼풀 수술하시고 꽃도 보고 아름다운 동산도 맘껏 뛰어다니세요.’
저는 어르신께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난 후부터는 돼지 저금통을 사지 않았고 돼지 저금통에 잔돈도 넣지 않았습니다. 잔돈이 여기저기 책상 위에 널려 있는 것을 보고 김 00 요양보호사가 돼지 저금통을 선물한 것 같습니다. 김 00 요양보호사가 준 돼지 저금통은 여전히 가볍게 비어있습니다. 그 텅 빈 공간을 볼 때마다, 정작 무거운 삶의 짐만 지고 가시느라 단풍 든 세상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떠나신 어르신의 눈가가 떠올라 마음이 아립니다.
부디 그곳에서는, 이 저금통처럼 가벼운 몸으로 단풍 든 동산을 맘껏 달리며 예쁜 세상만 보시길 기도합니다.
*메인화면: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