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어느 오후, 거여2동에 있는 지체장애인 A 시설에 후원금을 전달하러 갔습니다.
A 시설은 연령에 관계없이 지체장애인들을 보호하는 곳입니다. A 시설 원장님은 지체장애인들이 작업하는 현장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지체장애인들은 작업장에서 봉투 등을 접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나이가 매우 들어 보이는 한 남자분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분들은 능숙하게 봉투를 잘 접었지만, 이분은 유난히 손놀림이 느렸습니다. 손을 더듬거리며 봉투를 접어, 다른 사람이 다섯 개를 접는 동안 봉투 한 개도 마무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분 곁으로 가서 종이 접는 것을 도와드리려 했습니다. 가까이 앉으니 그분 눈에는 눈곱이 많이 끼어 있었고, 눈이 매우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어디가 아프신가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눈이 많이 빨갛네요. 아프지 않으세요? 많이 아플 것 같은데 괜찮으신가요?”
그분은 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니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저는 그분을 따라가며 다시 물었습니다.
“아저씨,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
그분은 다른 말은 하지 않았고, 입에서는 침이 계속 주르륵 흘렀습니다.
“도와드리고 싶어서 여쭤보는 겁니다. 나이를 알려주고 싶지 않으시면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저.~~~~ 저~~는 64살 입~~ 니~~~ 다.”
“생일은 언제이십니까?” “생~일... 04월 03일”
그분 스스로 나이와 생일을 말하는 데 10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나이와 생일을 듣고 계산해 보니 아직 장기요양등급을 받기에 90일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A 시설 원장님께 그분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원장님, 조금 전에 뵈었던 나이 든 남자분께 제가 나이를 여쭤보니 64세라고 하시던데요. 맞습니까?”
“네, 64세 맞습니다.”
원장님은 갑작스러운 저의 질문 의도를 짐작하기 어려웠는지 궁금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원장님, 그분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장기요양등급을 받으면 국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약 3개월 정도 부족하네요. 지금 당장은 어렵겠습니다. 장기요양등급 받는 절차가 복잡한데, 협조해 주시면 제가 노력해 보겠습니다.”
“센터장님, 그렇게 해 주시면 저희도 좋습니다. 생일이 지나면 최 어르신을 독립시켜야 해서 저희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 중입니다. 돌봐주어야 할 사람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하고 말입니다.”
우선 원장님께 양해를 구한 후 최 어르신께 안과 병원에 가자고 했습니다. 최 어르신은 병원에 가자는 저의 이야기를 듣더니 침을 주르륵 흘리며 멋쩍어했습니다.
“감~~ 사~~`합니다.”
원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최 어르신을 자가용에 태워 강동 성심병원 안과를 찾았습니다. 진단 결과 최 어르신은 황반변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최 어르신 상태가 너무 악화되어 지금으로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선생님, 현재 시력을 잃고 계셔서 이분이 일상생활이 어렵습니다. 보호자도 없어서 장기요양등급을 받으려고 합니다. 소견서 좀 부탁드립니다.”
의사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검사 결과와 관련해 소견서를 써주셨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습니다. 우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최 어르신 장기요양등급 신청을 하였습니다. 공단 직원이 실사를 다녀갔고, 의사 소견서를 제출하라고 하였습니다. 최 어르신과 다시 병원으로 가서 의사 소견서를 발급받았습니다. 의사 소견서와 강동병원 원장님께서 써주신 소견서를 함께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접수했습니다.
최 어르신은 장기요양 4등급을 받았습니다.
최 어르신은 4등급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좋은 것인가 보다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최 어르신이 말했습니다.
“고~ 맙~습니다.”
최 어르신은 생일이 지난 후 LH를 통해 송파구 오금동 동남구 쪽에 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시설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저 역시 급해졌습니다. 최 어르신을 돌봐 줄 수 있는 요양보호사를 모집해야 했습니다. 최 어르신이 원하는 근무 조건은 월, 화, 목, 금요일과 토요일 6시간씩 4회 근무였습니다.
급히 광고를 내서 요양보호사를 모집했지만, 모두 오래 견디지 못했습니다. 최 어르신은 요양보호사들이 오면 무조건 화부터 내고, 민망하게 만들기 일쑤였습니다. 평일에는 밖으로 나가 3시간 동안 지하철 타기를 원했습니다. 또 토요일에는 오금동에서 마천시장까지 걸어서 시장을 보고 물건을 들고 걷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요양보호사들은 최 어르신 돌보기고 맞추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그만두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지하철 등에서 소변 실수를 하였고, 화장실에서도 대변을 본 후 뒤처리를 잘 못 하였기에 이런 문제로 요양보호사들은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갔습니다.
계속되는 요양보호사 면접에 저 역시 지쳐갔습니다. 마지막이다 싶은 마음에 평소에 일 잘하기로 유명한 이 00 요양보호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선생님, 오후에 일할 곳이 있는데, 저를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남자 어르신이라 요양보호사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좀 도와주세요.”
이 요양보호사는 알겠다는 대답 대신에 어르신을 한 번 보고 결정하겠다며 크게 웃을 뿐이었습니다.
“센터장님, 면접 보고요. 하하하하.”
혹여나 이 요양보호사 마음이 바뀔까 싶어 지금 당장 최 어르신 면접 보자고 하였습니다.
“센터장님, 저는 남자 어르신 케어를 안 해봤는데, 안 가면 안 돼요? 자신이 없어요.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없습니다, 센터장님.”
“선생님, 알았어요. 면접 보고 결정합시다. 자, 차에 타세요.”
“센터장님, 면접 보고 안 해도 되죠?”
이 요양보호사의 걱정과 괜찮다는 제 대답이 여러 번 반복되는 사이 최 어르신 댁에 도착했습니다.
“띵똥 띵똥.”
최 어르신은 저를 보자 문을 당기며 닫으려고 하였습니다. 저는 어르신이 문을 닫지 못하도록 발로 버티며 이 요양보호사에게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빨리 먼저 안으로 들어가세요.”
“네.”
저와 이 요양보호사는 거실로 들어갔습니다. 최 어르신은 안절부절못하며 서성거리셨습니다. 이 요양보호사는 최 어르신에게 다정히 말을 건네며 따뜻한 대화를 유도했습니다.
“사장님, 혼자 생활하시는데 집이 참 청결하시네요.”
최 어르신은 그 말을 듣자 멋쩍어서 머리를 오른손으로 긁었습니다. 최 어르신 댁을 나서며 이 요양보호사가 말했습니다.
“센터장님, 제가 한번 케어해 볼게요. 그런데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네, 선생님, 기대하지 않겠습니다. 참고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어르신께서 첫째, 지하철 타기를 좋아하십니다. 둘째, 걷고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셋째,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십니다. 넷째, 걷기 운동은 마천시장까지 가서 물건 사는 것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다섯째, 눈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그림 그리기를 정말 좋아하십니다. 이상입니다. 최 어르신이 부모님을 잘 만났으면 재능을 키웠을 텐데… 마음이 짠합니다. 눈이 계속 실명되고 있으니 그림 그리는 것을 자제하도록 말씀 좀 잘해 주세요. 심성은 아주 좋으신 분입니다.”
“알겠습니다. 해 보겠습니다.”
이 요양보호사는 2022년 4월 12일부터 최 어르신을 보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이 요양보호사는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최 어르신에게 따뜻한 대화를 나누어 주었고, 시간이 지나며 최 어르신의 의사소통 능력도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요양보호사는 최 어르신이 대변을 온몸에 묻히고 있어도 부끄러워하거나 더럽다고 하지 않고, 남자 어르신임에도 목욕을 적극적으로 도와드렸습니다. 온몸에 묻어 있는 변을 깨끗이 씻어주고, 바닥과 이불은 냄새가 나지 않도록 손으로 빨아, 최대한 청결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깨끗한 환경을 유지해 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최 어르신은 오른쪽 눈은 자연스럽게 실명되었고, 왼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최어르신은 혼자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졌고, 머리에서는 피가 흘렀습니다. 최 어르신은 급할 때는 전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기억해 내고 이 요양보호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이 요양보호사는 급히 달려와 최 어르신을 병원 응급실로 이송하여 어르신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만 시간이 지체되어도 뇌출혈로 돌아가실 수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이 요양보호사의 대처가 최 어르신을 살린 것입니다.
이 요양보호사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선한 행동과 마음을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녀의 선행은 누구에게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여 그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옮겨 봅니다.
- 이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2025년 10월 27일 송파 장기요양인 어울림 한마당 행사에서 서울특별시 송파구의회장 표창을 수상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메인화면: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