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복지센터’ 문을 연 지 벌써 17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루하루가 무척 길게 느껴졌는데, 이제 와 보니 그 긴 시간이 짧은 하루와 같습니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상한 복지센터와 함께하며 어느덧 칠십이 된 제가 서 있었습니다. 고군분투했던 17년이란 세월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제 곁에 있는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릅니다.
인생 후반기를 함께해 온 이상한 복지센터는 제 인생의 동반자였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온전히 ‘나의 것’을 가져본 이상한 복지센터는 삶의 희망이었고, 뜨거운 눈물이었습니다. 만약 이상한 복지센터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인생의 슬프고, 화나고, 속상하고, 짜증 가득한 모습만 바라본 채 그저 그렇게 살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저의 품을 떠날 즈음, 저는 처음으로 집 문을 열고 나가 커다란 하늘을 보고 싶었고, 눈부신 태양을 보고 싶었습니다. 맨발로 한 발 두 발, 두리번거리며 바깥세상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제가 마주한 새로운 세계는 생각보다 가혹했고, 저를 쉽게 넘어지게 했습니다. 오십이 다 된 저를 고용해 줄 복지센터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때 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저의 동반자, 이상한 복지센터였습니다. 50 평생 아껴 모은 돈을 털어 문을 열었던 곳. 누군가 보기에는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사무실이었지만, 저에게는 보물과도 같았습니다. 그곳은 태초에 맛봤던 엄마의 품 속과 같은 안온함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이상한 복지센터를 시작하며, 저는 남들보다 뒤처진 사회생활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모두가 잠든 깊은 밤에도 쉬지 않고 일하고 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제가 생각한 것처럼 녹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센터 운영은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눈물을 훔치는 일도 많았습니다. 생생했던 젊은 시절은 지나갔고, 쉰이 넘은 몸과 머리는 그리 재빠르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미련하고 어리석다는 자책감이 저를 슬프게 만들었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정기적으로 돌아오는 센터 평가 통보를 받을 때면 더욱 그러했습니다. 밤낮으로 노력했지만 처음부터 모든 것이 순조롭지는 않았습니다. 두려움과 불안, 공허함은 커져갔고, ‘이게 나의 한계인가’ 싶었습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평가를 준비했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지나던 중, 갑자기 이상한 복지센터와 계약을 하겠다는 어르신들이 파도치듯 밀려들어 왔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분주함에 불안하고 우울할 틈도 없었습니다. 어르신들과 계약을 하고, 평가를 준비하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계약하겠다는 보호자들의 전화가 계속 울렸고, 직접 방문해 계약하겠다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지인들의 소개까지 이어지면서 이상한 복지센터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센터를 열고 이제 끝인가 싶었던 3년 차의 일입니다.
저는 얼굴과 다리를 꼬집어 보았습니다. 아팠습니다. 꿈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이상한 복지센터에 보물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계약을 하겠다는 분들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고 또 뛰었습니다.
또한 이상한 복지센터를 운영하면서,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어르신과 그에 맞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매칭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공감 능력이 뛰어난 요양보호사 선생님일수록 어르신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선생님들께서는 어르신들이 산책을 좋아하는지, 맛있는 음식을 잘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는지, 청소를 잘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는지 금방 파악했습니다.
이런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결국 저 역시 공감 능력이 뛰어난 센터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외모가 예쁜 것이 아니라 어르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 덕분에 타인에게 베푼 선한 영향력이 결국은 우리 삶의 가장 큰 위로가 된다는 지혜를 알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합니다.
이상한 복지센터를 운영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고, 그 과정 속에는 고난이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될 때까지’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노력했고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컴퓨터를 켜놓고 저와 함께했던 소중한 어르신들의 삶을 글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기억 속에 숨어 있던 추억을 꺼내 글로 적으면서 오히려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언제까지나 혼자 살 수는 없다는 사실. 결국 많은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고, 힘들고 지칠 때는 서로 손 내밀어 잡아주며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지천명(知天命)이 넘은 늦은 나이에 알게 되었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쳐도, 비바람이 불고 천둥이 쳐도 저의 동반자인 이상한 복지센터와 함께라면 그 어떤 고난도 조금은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렇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상한 복지센터에서 말입니다.
*메인화면: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