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의 일
20년 전에는 메스미디어의 힘, 광고의 힘이 컸다.
정해진 몇 개의 방송 채널에서 송출하는 프로그램들을 시간대별로 소비하면서 보게 되는 광고들은 가만히 앉아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의 머릿속으로 주입되고 있었다. 고객들이 제품을 선택하고 비교할 수 있는 채널은 많지 않았다. 다양한 거대 쇼핑몰들이 등장하고 종합쇼핑몰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플랫폼 비즈니스들이 우후죽순 나오기 시작했지만 그때조차도 지금처럼 빠르고 쉽게 수많은 제품들의 품질과 가격을 비교하지는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소위말해 대박이라는 기록적인 매출 상승이 가능했다.
돈만 있다면 각종 미디어와 홈쇼핑 채널에 도배를 하면 고객들은 그 브랜드를 인기 있는 브랜드로 인식하고 서로들 달려들어 구매하였다.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고객들의 시선과 결제는 소수의 브랜드로 몰렸기 때문에 폭발적인 매출 상승을 이룰 수 있었다.
모든 카테고리가 그랬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 수요를 장악하는 순간 그 브랜드는 순식간에 기업이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공급과 수요는 각 카테고리의 경쟁사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쟁자가 지금처럼 차고 넘치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략은 의미가 있었고 '광고비'는 전혀 아깝지 않은 투자였다.
물론 당시도 전쟁터였다.
하지만 지금과는 다른 전쟁터였다. 좋은 제품을 만들고 효과적으로 광고를 잘하면 고객들의 눈에 띄고 사랑받을 수 있는 확률이 그래도 지금보다는 높았던 전쟁터였다.
맛집이라 소문이 나면 꽤 오랜 기간 사랑받았다.
맛부터 서비스까지 모든 것에 만족했던 식당이 어느날 갑자기 생각나서 가보면 당연하게 그 자리에 그 맛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사라진 것은 아닌가?'하고 걱정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브랜드가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이 길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집이 생겨도 고객은 비교할 수 있는 채널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맛보고 경험했던 그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쉽게 버리지 않았다. 익숙한 것을 선택하는 것에 안전함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 그대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선택하면서 고객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쉽게 바꾸지 않았다.
다른 카테고리도 마찬가지였다.
하나의 브랜드가 세상에 나타나고 고된 시간을 버텨내면 그 브랜드의 팬이 되어준 고객들은 그만큼 긴 시간 동안 그 제품을 사용하고 지속적으로 소비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사용하는지, 무엇이 지금 인기를 얻고 퍼져가고 있는지를 지금처럼 빠르게 알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구입하고 만족한 제품은 충분히 긴 시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다.
유행이라 할 수 있었던 것들도 내 생활 반경에서 비슷한 생활 수준의 사람들끼리 입소문을 내고 자극을 받고 따라 했기 때문에 유행이 변화되는 속도가 지금보다는 빠르지 않았다. 친구들끼리 요즘 유행하는 것들을 걸치고, 툭하면 딱하고 알아듣는 항상 갔던 익숙한 장소에 언제든 모일 수 있었다. 우리가 좋아했던 공간이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었다. 사장님들은 반갑게 우리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때로는 부모님 혹은 자녀들의 안부까지 물을 정도로 오랜 인연들이 많았었다.
정말 그랬다.
지금은 지루하게 느낄 수 있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그 모습을 유지하는 곳들이 많았다.
기업으로 성장한 브랜드들은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그 방식을 계속해서 전수했다. 시기에 맞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계속해서 분석하고 적용하였지만 핵심적인 전략과 비법은 후배들에게 전수되었다. "이렇게 하면 이런 성과를 얻을 수 있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성과를 보여줬던 멋진 전문가 선배들도 있었고 후배들도 그들의 말이라면 진리라 생각하고 따랐었다. 실제로 그 방법을 따르면 성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정말 그랬다.
광고는 효과가 있었으며, 충분한 자본만 있으면 상당히 높은 매출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지금은 틀린 말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지금도 광고는 유효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되었고 고객의 상황과 관점이 완전히 변화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마치 틀린 것 같은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지금도 기업들은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만한 자금과 힘을 가지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그래도 납득할만한 유효타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기업으로 넘어가는 시점의 브랜드들은 투자와 수익이라는 뚜렷한 목적하에 움직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작은 브랜드들의 브랜딩과는 거리가 있다. 그 브랜드도 초기에는 대표의 가치관과 철학이 뿌리 깊게 반영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투자와 수익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오는 순간 그 기준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앞만보고 전력을 다해 달릴 수 있도록 시야를 가리고 달리는 말과 같이 계속해서 성장하며 수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러한 핵심적인 가치관을 집요하게 유지하는 멋진 브랜드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2000년 초반부터 Facebook, Youtube와 같은 SNS가 세상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의 일상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비교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제품들이 나의 리스트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것을 아주 쉽고 빠르게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가치 있다 생각했던 것들이 무가치 해지는 속도가 점점 더 가속화되고 브랜드들은 고객들에게 빠르게 잊히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은 우리들의 관심사를 놀랍도록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여 온 세상이 나의 관심사와 부러워했던 대상들로 채워지게 만들었다. 그것들을 가져도 나를 유혹하는 더 많은 좋은 것들이 자극적으로 나의 하루를 채우고 비교하게끔 만들면서 더 빠르게 또 다른 새로운 것을 갈망하게 만들었다.
이 지점부터가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여기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어떤 변화들이 지금의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어야 우리는 본질과 핵심을 중심에 단단하게 품고 살아남을 수 있다.
이 변화의 기점을 시작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까지 아주 자세하게 들여다보자.
지금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방향을 잃어버렸다면 더 집중해서 살펴보시기를 권장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