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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오 Apr 04. 2023

눈물은 꽃이 되고

꽃눈 내리는 어느 봄의 끝자락, 남해에서

 피어나는 것보다 지는 것이 더 아름다운 것이 벚꽃 말고 또 있을까요. 봄의 끝자락에서 눈이 되어 내리는 것이 퍽 아름답습니다. 생명을 다해 땅에 떨어진 것 중 아름다운 것이 꽃 말고 또 있을까요. 나무 밑 흙더미에 자리 잡은 민들레 위로 떨어진 벚꽃 잎들은 쌓여 무덤을 이루고 그 무덤을 이불 삼아 민들레는 꽃을 피웠습니다. 봄의 끝자락에는 꽃눈이 내립니다. 혹자는 꽃비라 부르지만, 하얀 꽃잎이 휘날리는 형상을 본다면 비보단 눈이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것입니다.


 이전에는 꽃이라는 것은 그냥 길 가다 보이면 보는 것이지 특별히 찾아 나서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저도 요새는 허파에 봄바람이 가득 찬 것인지 시간이 나면 진해로, 남해로 꽃을 찾아다닙니다. 제가 이리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찬찬히 생각해 보니, 우리가 헤어질 적에 당신이 제게 '같이 꽃 보러 가고 싶었는데, 이제 꽃은 못 보겠네.'라고 말한 이후부터인가 싶습니다. 그때 당신의 그 말이 저주가 되었는지 내 가슴에 박힌 이후로 저는 도저히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눈을 찾아 꽃을 찾아 방랑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해의 봄은 부산, 진해의 그것과는 또 다릅니다. 남해는 하얗고 분홍의 벚꽃과 함께 유채꽃이 여기저기 만발해 있습니다. 벚꽃 길을 걷다 보면 멀리서부터 풍기는 유채꽃의 강렬한 향기에 정신이 아찔해집니다.  꽃 향기에 취해 주위를 둘러보면 하늘엔 연분홍 벚꽃이 자신의 시체를 세상에 흩날리고 땅엔 노란 유채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자신의 향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바다가 도화지의 나머지 부분을 채워줍니다. 연분홍과 노랑, 그리고 파란색의 조화가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합니다.


 많은 연인들이 봄눈을 맞으러 나왔습니다. 평소엔 바람이 세게 불면 머리가 망가질까, 사랑하는 연인이 바람에 날아갈까, 싫어하던 사람들도 오늘만큼은 바람을 반깁니다. 세찬 바닷바람이 벚나무를 흔들면 봄눈이 함박눈 되어 내리고 길에 쌓어 세상이 멎을 듯합니다. 부산에 살며 올해 한 번도 눈을 보지 못한 저도, 이 봄의 끝에 남해에서야 드디어 함박눈을 머리에 쌓아봅니다.


 제 앞에서 애인의 팔짱을 끼고 걷던 여인이 떨어지던 꽃잎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폴짝이다 이내 꽃잎을 잡아내고는 자신의 애인에게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대' 합니다. 이미 사랑을 찾아 함께 있는 연인들도 무슨 연유에선지 꽃잎 잡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아직 방점을 찍지 못한 사랑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마음일까요.


 떨어지는 꽃을 잡으면 사랑이 이루어진 다기에 저도 꽃이 펑펑 내리는 벚꽃 나무 숲 아래서 가만히 눈을 감고 손을 내밀어봅니다. 혹시나 이 손에도 사랑이 들어와 줄까 싶어 그대를 그려봅니다.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굳은살 투성이의 투박한 제 한 손을 수줍게 내밀어 보았으나 제 손에 떨어지는 건 꽃 되어 내리는 제 눈물 밖에 없었습니다.


 저녁으로는 멸치쌈밥을 먹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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