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작은 형부

셸 위 댄스-상처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사람

by 장하늘

25화.




사람


11) 작은 형부


나에겐 친언니가 둘 있다. 큰언니, 작은언니. 고맙게도 형부도 두 분이 계신다. 작은언니가 10여 년 전 재혼 하면서 작은 형부가 생겼다. 작은 형부는 3년 전부터 어머니가 계신 고향마을로 갔다. 형부의 고향은 땅끝 마을을 지나 완도 섬에서 더 들어가는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있는 작은 섬 신지도이다. 다행히 다리로 연결돼서 배가 아닌 차로 갈 수 있다. 가는 길이 참 머~얼~다.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목포까지 기차로 가서 다시 완도까지 버스를 타고 간 후 택시나 버스로 신지도까지 들어가야 한다. 완도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가더라도 터미널까지 가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대중교통으로는 10시간 가까이 걸리고 차를 가져가도 안 막히면 7시간 정도 걸린다. 휴게소 두 번 쉬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땅끝에서도 끝자락에 달린 작은 섬, 신지도에 작은 형부의 어머님이 계신다. 작은 형부는 고향이었던 신지도를 나와서 청소년기 때부터 일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40대 늦은 나이에 작은언니를 만나 총각딱지를 떼며 혼인했다. 작은언니가 결혼하기로 결심하는데 어머님의 성품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인사드리러 갔을 때 성격 좋고 맘씨 넉넉한 어머니와 이야기 나누며 '이런 어머니 아래 자란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 자매들은 엄마에 대한 우리들만의 딜레마가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든 것이 이해된다. 나 또한 한 동안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결혼해서 몇 년간은 서로 다투기도 하고 잘 지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작은 형부는 3년 전 고민 끝에 고향으로 내려갔다. 갑자기 찾아온 어머니의 치매가 이유였다. 활달하고 호방하고 밝으셨던 어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치매에 걸렸다. 작은 형부가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치매가 생기기 전에 집안에서 넘어졌다고 했는데 그게 원인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 집에 보통 3,4개월 만에 한 번씩 다닐 때였는데 어머니를 뵙고 온 작은 형부가 아무래도 검사를 받아봐야겠다고 했다. 이내 병원을 모시고 갔고 진단이 나왔다. 치매. 그제야 뒤돌아 생각해 보니 몇 개월 전 머리를 다쳤다는 말을 어머님께서 하신 게 생각났다고 한다. 작은 형부는 어머니 혼자 계시다가 바로 치유를 못하고 시기를 놓친 게 원인이었다고 자책하는 듯했다.


작은 형부의 형제는 1남 6녀로 누나 한 명에 여자동생이 다섯 명이라고 한다. 그중 완도 인근에 함께 사는 여동생이 둘이 있다. 어머니가 치매라는 진단을 받은 초창기에는 가까이 사는 여동생들이 자주 찾아갔었다. 진단받고 여동생들이 엄마 상태를 관찰하고 자주 찾아뵈려고 했다. 그런데 치매가 순식간에 진행되면서 딸들 조차 집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딸들을 몰라보게 된 것이다. 어머니의 치매는 어떤 심리적 작용 때문인지 모든 '여성'을 증오하는 듯하다. 딸들도 그저 여자로서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작은 형부는 고민에 빠졌다.


치매가 진행되고 몇 개월이 되었을 때 작은 형부는 작은언니와 상의 후 어머니께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부부가 땅끝으로 갈라져 생활하기로 한 것이다. 작은언니 부부는 이 상황을 슬기롭게 해결하려고 합의했다. <효도는 셀프>로 배우자에게 그 책임을 미룰 수 없다. 더구나 어머니는 모든 여성을 싫어함으로 며느리인 작은언니가 어머니를 돌볼 수도 없다. 물론 요양원에 모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요양원에 모시자고 여동생들의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발악하듯 싫어하며 '내가 그런 곳에 왜 가냐'라고 완강하게 거부하셨다. 작은형부도 홀로 고생하신 어머니를 차마 요양원에 모실 수 없었다. 고심 끝에 작은 형부가 신지도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작은 형부는 부천에 사업장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배우고 해온 일이라고는 기계쟁이가 전부였다. 모든 기계를 가져갈 수도 없어서 단출하게 기계 몇 개만 가지고 완도, 신지도로 내려갔다. 많은 일이 자연스럽게 끊긴 것은 당연하다. 요즘도 가끔 일을 하긴 하지만 일이 많지 않다. 작은 형부는 집 앞에 텃밭을 가꾸고, 가끔 일이 들어오면 일을 하고, 매일 어머니 돌보기가 일상이 되었다. 적은 돈으로 아껴 쓰며 생활하고 어머니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은 언니는 파주로 친정엄마와 함께 이사해서 서울로 직장을 다닌다.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기에 열심히 일하는 중이다. 작은언니는 우리 엄마를 돌보고, 작은 형부는 당신 어머니를 돌본다. 바람직한? 셀프효도에 서로 감사해한다.


2년 전부터 대소변을 못 가리시는 어머니를 돌보는 작은 형부는 하루하루 인내를 쌓으며 지내고 있다. 어머니와 사투 중인 작은 형부는 늘 분주하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집에 있는 물건들을 내다 버린다는 소식을 전한다. 옷은 물론 냉장고에 있는 김치등 음식도 눈 깜짝할 사이에 내다 버리신단다. 없어진 물건을 찾으러 다니는 것도 형부의 일이 되었다. 어머니가 집밖으로 나가서 헤매는 건 일상이다. 섬 안이라 갈 곳이 한정적인 게 다행일 뿐이다. 놀라듯 웃음기 띄며 작년 어느 날 "엄마가 드디어 똥을 싸다 못해 그걸 여기저기 발랐어"라며 작은언니와 통화한다. 작은 형부는 혼자서 울기도 하고 우울해지더라도 작은언니와 통회할 때는 애써 농담을 한다.


작은 형부는 아들을 오빠라고 부르는 어머니를 돌보며 땅끝마을에서도 더 들어가는 섬마을, 신지도에 살고 있다. 작은언니는 꾸준히 신지도를 오간다. 보통 3개월에 한 번씩 내려간다. 초창기에는 언니가 운전해서 내려갔었다. 그러나 2년 전부터는 내가 운전을 해서 엄마, 작은언니 셋이 함께 편도 7시간 이상, 긴 여정을 한다. 크고 작은 수술을 했고 호르몬 약을 먹어야 하는 작은언니에게 오랜 운전은 독이 되기 때문에 내가 나서게 되었다. 완도에 내려가기 며칠 전부터 엄마는 음식장만을 잔뜩 하고 작은언니는 작은 형부와 어머니가 필요한 걸 챙기고 구입한다. 작은 형부 드릴 것들을 차 안에 가득 싣고 내려가고, 작은 형부가 챙겨주는 농산물들을 가득 싣고 올라온다. 신지도에 가면 우린 작은형부집에 인사하고 숙소를 따로 잡아야 한다. 어머니가 집에 외지인이 들어오는 걸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작은 형부는 초보 농사꾼 답지 않게 열심히 텃밭을 가꾸어 계절마다 야채며 과일을 보내준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작은언니와 사이가 좋은 작은 형부는 우리 가족들에게 너무나 값진 위안을 준다.


사돈 어르신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작은 형부 힘내세요.

가끔은 힘 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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