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수진
수진은 평소처럼 톡방에 들어갔다. 변함없이 떠 있는 닉네임들 속에서, 그녀의 일상은 늘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그런데 갑자기 울린 알림이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운영진인 캡틴과 써니가 있는 채팅방으로 따로 부른 것이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운영진 채팅방>
[캡틴] 혹시 방에서 썸 타는 사람 있어?
수진은 말문이 막혔다. 무슨 의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구름] 그런 걸 꼭 말해야 하나요? 개인적인 일이잖아요.
[캡틴] 썸을 탄 게 문제가 아니라 제부도 1박 벙에서 무슨 일 없었어?
남자들을 유혹하거나, 속옷 차림으로 돌아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어.
순간, 수진은 온몸이 얼어붙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구름] 제가 그런 행동을 했다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겠어요? 다들 봤을 텐데요?
[써니] 우리는 그냥 소문을 들었을 뿐이에요.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있는 거고.
[캡틴] 맞아. 확인 차원이야. 괜한 오해로 문제 생기면 곤란하니까.
[구름] 뜬소문이면, 그걸로 사람을 몰아세우면 안 되잖아요.
[캡틴] 썸을 타든 연애를 하든 상관없어. 근데 방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건 용납 못 해.
수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미 판단은 내려진 것 같았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아침.
수진은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늘 ‘언니, 언니’ 하며 다정하게 따르던 토리가 이 모든 소문의 중심이었다는 점이다. 믿을 수 없었다. 배신감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왜? 무엇을 위해?’
순간, 의심이 들었다. ‘혹시 토리와 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수진은 직접 푸들에게 확인했다. 그러나 푸들은 오히려 황당하다는 듯 웃어넘겼다.
"토리와 친하긴? 다들 그냥 비슷비슷하지."
순간, 가슴을 짓누르는 감정이 밀려왔다. 그래도 확인해야 했다. 수진은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혹시… 토리랑 뭔가 있었던 거야?"
그러자 푸들은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나는 토리처럼 억세게 생기고, 뚱뚱한 사람은 좋아하지 않아. 내 눈을 어떻게 보는 거야?"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수진은 마치 차가운 벽에 부딪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장난처럼 내뱉었지만, 그 안에 깔린 의미는 뚜렷했다. 가벼운 웃음 속에 스며든 조롱과 경멸. 그녀는 확신했다.
토리는 질투했거나, 오해했거나, 혹은 전혀 엉뚱한 이유로 그녀를 모함한 것이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오해를 풀고 싶었다. 하지만 제부도에서 함께했던 사람 중 이미 방을 나간 이들도 많았고, 남아 있는 몇 명도 누구 하나 나서주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은 술에 취해 희미했고, 서로의 행동을 뚜렷이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무엇보다, 타인을 위해 적극적으로 변명하는 일은 모두가 꺼렸다. 푸들도 적극적으로 수진을 적극적으로 옹호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들의 침묵은 보이지 않는 벽이 되어 그녀를 가두었다.
소외감과 분노, 억울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네명이 함께 대화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운영진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수진과 토리, 캡틴과 써니, 네 사람이 통화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수진은 밤 9시에 자신의 방에 혼자만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써니가 회의를 주도했고, 캡틴이 거들었다. 토리는 별말 없이 대화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수진은 점점 표정이 굳어졌다. 없는 말을 사실처럼 조작하는 태도, 근거 없는 억측.
분노와 수치심이 치밀었다.
수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전혀 근거 없는 말입니다. 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렸나요?"
그러자, 토리는 돌변했다.
“다리를 다 들어내 놓고 거의 옷을 벗고 있었잖아요?”
수진:무슨 말이죠? 나는 제부도에서 여자방에 먼저 들어가서 잠든 것 뿐이 없어요. 편안한 옷을 입고 있었고, 그 옷은 그저 평범한 잠옷이었어요. 그리고 잠옷을 입고 문밖으로 나온 적이 없어요.
신랄한 독설이 쏟아졌다.
토리: 당신 같은 사람은 모두에게 실체가 알려져야해. 기혼인 주제에 남자들을 유혹하고, 지가 무슨 공주인줄 알고, 그들을 자기 소유물처럼 다뤘어. 그리고 여자들도 무시했지. 이런 사람은 지역사회에서도 매장돼야 해!
순간, 기억이 흩날리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단순한 비난이 아니었다. 인격을 짓밟는 수준의 공격.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토리의 말은 마치 날카로운 칼이 되어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수진은 겨우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남자들이라면 누굴 말하는 거죠? 제가 누구를 유혹했나요? 여자들을 언제 무시했단 거죠? 혹시라도 제가 이곳에서 사람을 만났더라도, 서로 동의하에 만난 것이라면 그것이 이렇게 마녀사냥을 당해야 하는 이유가 되나요?"
그러나, 가장 큰 상처는 운영진의 태도였다.
"우리는 중립을 지켜야 해."
허울뿐인 말이었다. 중립을 가장했지만, 실상은 방관에 불과했다. 그들은 수진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수진은 혹시라도 푸들의 닉네임이 거론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수긍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푸들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다만 수진에게 따라오는 뒷말과 전혀 있지도 않았던 일이 마치 기정사실 인양 비난하며 거듭 거론되었다.
수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관계를 반드시 확인하고, 이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방에서 문란하게 행동한 적도, 누구를 먼저 유혹한 적도, 여자들을 무시한 적도 없습니다."
그녀의 말은 단호했지만, 아무도 선뜻 답하지 않았다.
전화를 귀에 댄 채, 그녀는 정적 속에 홀로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