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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오톡방 17화

17. 제부도

수진, 40살

by 장하늘

17. 제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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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은 처음으로 1박 2일 벙개에 나섰다. 참여 인원은 총 열셋. 그녀가 익히 알고 있는 이는 토리와 푸들뿐, 나머지 열한 명은 모두 낯선 얼굴들이었다. 닉네임을 확인하니 눈에 익은 배열의 이름들로 화면이 가득했다. 참석자:푸들(39/남/미), 토리(39/여/미), 단비(38/여/돌), 여울(42/여/기), 바다(36/남/미), 강풍(41/남/기), 초록(37/여/돌), 토르(44/남/기), 봄비(40/여/돌), 겨울(39/남/돌), 소리(38/여/돌), 민트(41/남/미), 구름(40/여/기).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감정. 처음 겪는 1박 2일의 낯선 모임은, 수진에게 마치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는 입문 의식처럼 느껴졌다. 한낮, 제부도의 해산물 전문점에서 모두가 처음 얼굴을 마주했다.

회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자 수진은 감탄했다. “역시 바닷가라 그런가 봐요.”

"이 집 해물칼국수가 또 별미래요," 토리가 메뉴판을 넘기며 웃었다.

회, 해물칼국수, 바삭한 부침개가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처음엔 음식에 집중하던 이들도 차츰 말문을 틔우기 시작했고, 어느새 술잔이 오갔다. 낯섦은 점차 웃음으로 희석되었다.

숙소로 자리를 옮긴 후, 본격적인 친목의 시간이 시작됐다. 넓은 거실에 원형을 그리고 앉은 사람들 사이로 웃음과 농담이 퍼졌다. 카드게임과 소소한 벌칙이 더해지자 유쾌한 기운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와, 토르 오빠 게임 실력이 장난 아닌데요?” 수진이 놀라듯 말했다.

“그저 운이 좋아서 그래.” 토르가 겸손한 미소를 지었다.

한쪽에선 남녀 간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눈빛이 마주치고, 손끝이 스치고, 말끝이 길어졌다. 수진은 그 장면들을 마치 멀리서 바라보는 관찰자 같았다.

저녁이 되자, 숯불 위 고기가 지글거렸다. 된장찌개가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사람들은 바비큐 옆에서 바삐 움직였다.

“단비, 손끝이 야무지네. 고기를 이렇게 잘 굽다니!” 강풍이 말했다.

“많이 드세요. 이런 건 기본이죠,” 단비가 능숙하게 집게를 움직이며 웃었다.

식사 후, 장작불이 피워졌다. 모두가 야외로 나가 불꽃 주위를 둘러앉았다. 불빛이 얼굴을 타고 춤을 추고, 손에는 노릇하게 익은 고구마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이렇게 앉아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네요.” 초록이 조용히 속삭였다.

수진은 불꽃을 바라보았다. 타오르는 불은 마치 오래 묵은 감정을 태워 보내는 듯했다. 온기가 볼을 감싸며, 그녀는 말없이 숨을 고르듯 가슴을 내쉬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분위기는 더욱 들떴다. 술이 돌고, 음악이 흐르고, 누군가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흥겨운 열기는 한밤중까지 이어졌다.

수진은 술기운이 번지는 걸 느꼈다. 웃음소리는 멀리서 들리는 메아리처럼 아득했다. 그녀의 몸에는 피로가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저 먼저 들어갈게요. 좀 쉬어야겠어요.”

“잘 자요!” 누군가 외쳤고, 수진은 조용히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가 되고 싶었다.

화장실에서 씻고,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피곤함 속에도 평온함이 스며 있었다.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창밖으로는 아직도 웃음소리와 음악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녀의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졌다.

다음 날 아침, 숙소는 고요했다. 전날의 열기는 희미해지고, 사람들은 피곤한 얼굴로 하나둘 일어났다.

“머리가 띵하네요. 어제 너무 마셨나 봐요.” 민트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아침 식탁에는 북엇국과 김치,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었다.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사람들은 하나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좋은 시간이었어요. 다들 조심히 가세요.”

각자의 손에는 연락처가 담긴 핸드폰이 들려 있었고, 작별의 인사가 오갔다. 수진은 가방을 둘러메고 숙소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짧았지만 긴 1박 2일이었다. 기억 속 어딘가에 남은 얼굴과 아직 익지 않은 이름 사이에서, 그녀는 또 하나의 밤을 마음에 새겼다.

차에 올라탄 수진은 창밖 바다를 바라보았다. 잔잔한 파도가 밀려왔고, 그녀의 마음속에도 조용한 물결이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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