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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오톡방 15화

15. 입방

40, 수진

by 장하늘

15. 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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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공항으로 떠나는 날, 수진은 더 이상 눌러둔 감정을 다독일 수 없었다. 혀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에게 연락하는 순간, 스스로가 한없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감정을 억눌러 보았으나, 손은 어느새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혀니의 이름을 검색했다.

프로필이 떠올랐다. 익숙한 화면이었다. 처음 그의 연락처를 받았을 때부터 변하지 않았던 사진. 하늘 위를 가르는 새 한 마리.

그는 자유를 갈망하는 걸까?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은 걸까?

수진은 프로필을 닫았다. 손끝에 남은 흔적을 지우듯, 화면을 꺼버렸다.

그리고 혀니의 생각으로부터 도망치듯 검색창을 열었다. ‘오픈채팅’

한동안 떠나 있었던 세계. 낯설지 않지만, 섣불리 발을 들이기엔 망설여지는 공간. 그녀는 처음 기혼방을 검색했다. 화면 속 낯익은 방 이름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손가락이 멈췄다.

‘내가 다시 들어가도 될까?’

기혼방에는 철저한 규칙이 있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듯 보이지만, 한번 내보내진 사람은 다시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수진은 과거에 강퇴당한 기억을 떠올렸다. 정확한 이유는 몰랐으나, 관계가 뒤엉킨 후 자연스레 쫓겨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혹여 누군가 그녀를 기억한다면, 그 문은 또다시 닫힐 것이었다.

그 생각에 수진은 주저했다. 기혼방은 익숙한 곳이었지만, 더는 안전하지 않았다.

기혼방의 목록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기미돌 방을 검색했다.

‘이미 한 번 들어갔다 나왔었지…’

그때는 머뭇거리다 제대로 적응해보기도 전에 겁을 먹고 나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남편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왜 자신만 이를 참아야 하는 걸까? 억울함과 허탈함이 가슴을 먹먹하게 짓눌렀다.

가입 절차를 다시 밟았다. 닉네임을 입력하는 화면이 떴다. 익숙한 ‘커피’와 ‘타임’을 그대로 쓰는 것은 위험했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꼬일 수도 있었다.

‘구름/40/여/기’

그녀는 손가락을 움직여 새로운 이름을 입력했다. 기혼, 미혼, 돌싱이 섞인 방이니, 기혼을 뜻하는 ‘기’만 남겼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손가락을 내렸다.

화면이 전환되며 익숙한 채팅창이 펼쳐졌다. 익명과 익명들이 서로를 부르고, 낯선 이들이 친근한 말들을 주고받는 공간.

안녕하세요. 처음 왔어요.

짧고 간결한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반응을 기다렸다.

반가워요! 구름님.

처음 오셨으면 잘 적응하세요!

경계와 환영이 뒤섞인, 익숙한 분위기였다. 수진은 채팅창을 훑었다. 누군가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고, 누군가는 깊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말들은 스크린을 타고 흘렀고, 감정들은 문장 너머로 은근하게 퍼져나갔다.

그 흐름을 조용히 따라가며 인사말을 남겼다.

구름: 날씨가 참좋네요

이어지는 댓글.

닉네임이 구름이시네요. 하늘 보는 거 좋아하세요?

상대의 닉네임은 ‘달빛’. 감미롭고 부드러운 이름이었다. 수진은 한동안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조심스레 손가락을 움직였다.

네, 가끔 하늘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해요.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 그리고 또다시 빠질 수 있는 두려움.

그녀는 화면을 보며 가만히 숨을 골랐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대화. 그러나 이곳에서의 인연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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