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 40살
며칠 후, 채팅방에서 벙개가 열렸다. 장소는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유명한 맛집이었다. 대형 술집이나 소란스러운 바가 아닌, 정갈한 음식이 중심이 되는 조용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이었다. 참여자는 총 다섯 명. 써니(37/여/미) 운영진, 푸들(39/남/미), 토리(39/여/미), 쏘주(42/남/돌), 그리고 구름(40/여/기)이 모였다.
수진은 벙개 장소에 도착하며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감정을 느꼈다. 오톡방의 평소 벙개들과는 다르게, 이번 모임은 여성 참여자가 많아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자연스럽게 술보다 음식에 초점이 맞춰졌고,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는 대화가 오갔다.
“여기 오리 요리가 정말 맛있대요. 와인 종류도 다양하다고 하고요.” 써니가 메뉴판을 넘기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음식 위주로 가볼까요?” 토리가 부드럽게 제안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음식을 주문했다. 대화는 음식과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흐르고, 분위기는 빠르게 편안해졌다. 오리요리가 나오자 수진은 오톡방에서 처음 만난 오리가 떠올라서 왠지 오리고기에 손이 가지 않았다.
푸들은 대화 속에서도 은근히 수진을 챙겼다. 가볍게 농담을 건네고, 자주 말을 걸며 자연스러운 관심을 표현했다. 수진은 그런 관심이 싫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것은 토리의 다정함이었다.
토리는 수진과 비슷한 연배였고, 사는 지역도 가까웠다. 그녀는 대화 속에서 수진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구름 언니, 저랑 같은 동네시네요? 우연이네요!
그러게요. 생각보다 가까워서 깜짝 놀랐어요. 수진이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날 벙개는 과음 없이 조용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되었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토리는 수진에게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집까지 잘 가고 계시죠? 혹시 시간 되면 다음 주에 점심 같이 하실래요? 제가 아는 맛집 있는데, 같이 가보고 싶어요.’
수진은 예상치 못한 초대에 잠시 망설였다. 오픈채팅에서의 관계는 대부분 남녀 간의 긴장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토리와의 관계는 달랐다. 진심이 느껴지는, 편안한 우정 같은 감정이 스며들었다.
그녀는 결국 답장을 보냈다.
‘좋아! 연락 줘.’
그 이후, 두 사람은 종종 연락을 주고받았다. 토리는 따뜻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수진이 남편의 외도에 대해 털어놓아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진심 어린 공감을 건넸다.
“언니, 솔직히 말해서 그 상황이면 누구나 힘들죠. 너무 참고만 살지 마세요. 가끔은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도 필요해요.”
수진은 그런 토리의 말이 위로가 됐다. 오픈채팅방이 단순한 남녀 관계만이 아니라, 이렇게 여성들 간의 유대감도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 안도감을 느꼈다.
어느 날, 토리에게서 또 다른 메시지가 왔다.
‘오늘 점심 같이 하실래요? 제가 맛있는 곳 찾아놨어요.’
수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장을 보냈다.
‘좋아, 어디서?’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느꼈던 공허함을 채워줄, 새로운 방식의 관계를 발견하고 있었다. 이후 여자들, 그리고 여러 사람과 친목을 유지하며 오톡방에서의 시간이 순식간에 3개월이 지나갔다. 벙개가 있을 때 자주 벙개에 나가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친하게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