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1
응급실 들어온 지 4일째 되는 날.
드르르 드르르, 내 침대를 끌고 가는 바퀴소리만 요란하게 두 귀에 쟁쟁했다.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들어 감고 있었지만 힘들여 눈을 떴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고 있었다. 폭이 좁고 희끄무레한 천정만 보일 뿐.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한참을 지나 드디어 침대가 멈췄다. 흐르는 물소리만 세차게 들리는 곳. 음산했다. 쏴아 쏴아 물 흐르는 소리가 귀에 거슬려 걸을 수 있다면 뛰쳐나가고 싶도록 싫었다. 무섭고 두렵기도 했다. 그때 마취를 위해 내게 다가서는 간호사에게 나는 순간 소리쳤다.
“아직 이요! 의사 선생님 설명을 못 들어서 저 검사 못합니다. 담당 선생님께 무엇을 검사하는 것인지 설명을 들어야 마취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검사 취소 할 겁니다.”
참을 수 없는 가슴통증 때문에 응급실로 입원한 주제에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난 걸까?
응급실로 입원해 물 한 모금 못 먹고 사흘이 지난날 직원이 동의서를 받으러 왔다. 담당 의사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다. 그녀는 내가 수술받아야 해서 사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흘 만에 다시 검사를 하는데 그날 오전 의사 선생님이 회진할 것인데 그때 설명해 줄 거라고 했다.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기 때문에 시술과 수술해야 한다는 말은 그 직원에게 들은 것이 전부일뿐이다. 나는 담당 의사 선생님과 첫 대면 날이라 잔뜩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 지 담당선생님은 오지 않았고 파란 옷을 입은 남자직원이 나를 여기로 데려다 놓은 상황이다.
내 상태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것은 11월 6일 동의서를 받으러 온 직원에게 들은 다음과 같은 말이 전부다.
“<11월 7일(월)>
상부위장관 내시경, 위장관초음파 + 수면
<11월 8일(화)>
상부위장관 내시경,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 -> 돌 빼는 것(담관) + 수면
<11월 9일(수)>
담낭절제술, 전신마취, 복강경 수술 (1~2개 구멍, 3개 클립)”
환자가 응급실로 와서 입원해 수술한다면 최소 어떤 검사를 어떻게 하고 수술은 어떻게 할 것이라는 의사의 설명을 들어야 하는 것이 정석이 아닌가?
나는 불안했다. 보호자 없이 간호사 간병동에 입원하니 그 답답함을 표현할 길이 없다.
검사실 간호사가 보호자를 찾았다. “보호자는 없습니다.” 내 대답이 끝나자 검사실 직원들이 어디론지 다 가버렸다.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병실에서 가져온 담요를 덮었음에도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감기에 걸릴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사방을 둘러보니 넓은 공간에 물소리만 세차게 들릴 뿐 사람이 없다. 무섭고 추웠다. 어서 병실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링거 줄 때문에 전화기를 한참 걸려 여는 바람에 전화가 끊겼다. 한쪽 팔은 링거 줄 때문에 다른 한 손으로 승강이 끝에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했더니 여행에서 돌아와 시골서 올라온 남편이다.
“간호사에게 말해서 나 병실로 데려가라고 해줘요. 검사실인데 아무도 없고 추워서 죽겠어요.”
간호사가 연락할 거라는 남편의 말이 끝나자마자 검사실 직원이 달려왔다.
“조금만 기다리면 회진을 마치고 의사 선생님 오실 거예요. 그리고 전화기는 이리 주세요.”
침대 시트하나를 더 덮어주며 검사실 직원이 말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의사 선생님이 와서 종이에 간과 담낭, 담도를 작은 종이에 그리며 아주 간단히 설명을 했다. 내일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오늘 수면으로 내시경과 위장관을 초음파로 볼 거라고 했다
.
나의 선택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검사가 끝났다. 의사 선생님은 수면 검사 중에 내가 너무나 움직여서 내일 시술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수면마취 중에 엄청 움직였다고 한다. 칼도 가지고 들어가야 하는 위험한 시술인데 내일은 의식이 있게 해야겠다고 했다. 성인 담관이 8mm인데 나는 나이가 있어 6mm라고 했다. 이 좁은 관을 내시경이 들어갈 수 없어 내시경에 도구를 달고 들어가 돌을 빼고, 물로 청소도 하고, 칼도 가지고 들어가 잘라내야 할 곳도 있단다.
수면도 어려운데 의식이 있게 시술을 한다니 겁이 났다. 더 이상 통증을 느낀다는 것은 죽는 것보다 싫었다. 6장의 동의서에 사인을 할 때 기분이 씁쓸하면서 밀려오던 그 고독감.
코로나 19 상황에 하필 남편은 여행 가고 없을 때다. 갑작스러운 가슴통증으로 응급실로 들어와 간호사 간병동에 입원한 현실이지만 이 상황에 처한 내가 슬펐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혼자서 병원에 가던 순간부터 밀려오던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에 파르르 파르르 나도 모르게 떨리던 내 몸. 오로지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이 상황 앞에서 불현듯 돌아가신 내 엄마의 오라버니가 한 말씀이 생각났다.
“나 젖혀놓고는 다 남이다.”
‘그렇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