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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 엄마 Jul 27. 2023

장마철 고구마말랭이

뽀, 뿌의 간식이라고는 고구마말랭이가 전부인데, 이제 몇 개 안 남았다.

똑 떨어지기 전에 미리 고구마말랭이를 만들기 위하여 한 솥 삶아서 통풍이 잘되는 바구니에 예쁘게 썰어 담았다. 

문제는 날씨였다. 이 덥고 습한 장마철에 외부에서 말릴 수도 없고, 다용도실도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것은 매 한 가지다. 

고민 끝에 싱크대에 고구마를 썰어놓은 바구니를 펼쳐놓고 주방 에어컨을 켜고 출근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서는 순간 시큼한 냄새가 스멀스멀 몰려왔고 주방까지 가는 동안 이 냄새의 주인공이 고구마가 아니기를 그 짧은 시간에도 바라본다. 항상 그렇듯 우려는 현실이 되고, 고구마말랭이에서 쉰내가 났다. 

'전부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일이 하나씩 들어 냄새를 맡아보고, 일단 확실히 냄새가 나는 것은 분리해서 빼낸다. 

두 번째로 다시 애매한 것들의 냄새를 맡아보고 맡아보고 수없이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고민한다.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버리자니 아깝고 먹이자니 찝찝한 것이 내 맘 속에 번뇌가 일기 시작한다. 


역시 난 어설픈 주부다. 벌써 두 번째다. 

봄에 아파트관리소에서 화단에 제초제를 뿌린다는 방송을 했고, 알면서도 고구마말랭이를 말리는 다용도실 창문을 안 닫은 바람에 말리던 고구마말랭이를 전부 버렸었다. 


애들이 먹고 탈이 나는 것보다는 안전한 것이 낫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눈을 질끈 감고 애매한 것들도 버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남은 것이 거의 없었다. 

고구마를 삶고 껍질을 벗기고 한 입만 달라는 뽀와 뿌의 눈길을 외면하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기를 몇 시간 동안 했는데 우리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다니 사소한 것에 분노가 치밀었다. 

나도 나 거니와, 고구마를 사서 삶고 자르는 동안에 뽀와 뿌의 눈길을 또 외면해야 한다. 에구구..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내가 너무 아날로그로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품건조기는 괜히 있는 것이 아닐 텐데, 왜 매번 힘들게 고구마를 썰어서 버리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쇼핑몰에서 클릭을 하니 다음날 배송도 되었다. 

다시 주말이 왔고 고구마를 삶고 자르기를 반복했다. 그동안 우리 아가들(뽀, 뿌)은 다시 간절한 눈빛을 발사한다. 

남편은 며칠 내린 폭우로 엉망이 된 테라스를 청소했고, 호기심 많은 뿌는 청소하는 테라스도 궁금하고 고구마를 한입 얻어먹을 수 있을까 눈치를 보면서 왔다 갔다 제자리에 머물지를 못한다. 귀여운 녀석~ㅋ



자른 고구마와 닭가슴살을 트레이에 정리해서 식품건조기에 넣었다. 70도로 6시간 건조하니 말랑 말랑한 고구마말랭이가 되었다. 

그동안 고구마를 바구니에 담아 뒤집기를 매일 반복하면서 1주일에 걸쳐서 고구마말랭이를 만들었는데, 너무 간단하게 끝났다. 

'아~ 역시 인간은 문명의 혜택을 받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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