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뽀 엄마 Aug 11. 2023

상실, 그 후 혼란

그는 대학 때 함께 공부하던 멤버 중 한 사람이었다.

훤칠한 키, 조각 같은 얼굴과 균형 잡힌 몸매는 여자라면 누구라도 한번 더 뒤돌아 보고 싶을 만한 외모였으나 그의 높은 콧대는 아무나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적극적이고 삶에 대한 애착도 많아 뭐든지 열심히 하는 타입이었다. 그와 친했던 몇몇 중에는 나도 있었다.

이후 세월은 흘렀고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 충실했으므로 기억에서 잠시 잊고 살았다.


작년 봄 몸살이 나서 자주 가는 병원에서 영양제를 맞고 있던 중, 간호사와 중년 남자가 내 옆 베드에서 영양제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병원 베드는 칸칸마다 커튼으로 가려져 있으므로 얼굴은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남자는 꽤 자주 병원을 오는 듯 간호사와 친밀하게 얘기를 나눴고 대화는 끝도 없었다.

'남자가 참 말이 많네. 와이프가 없어 얘기할 데가 없어서 간호사에게 저리 시시콜콜 얘기를 하나?' 좀 시끄럽다는 생각을 하던 중 간호사가 'OOO 씨...'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절대 동명이인 일 수 없는 독특한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대학동기였다. 간호사와 얘기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니 세월이 묵기는 했으나 몇십 년 전 그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1시간여 동안 우리는 나란히 옆 베드에서 영양제를 맞았고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도 곧 따라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몇십 년의 세월은 그의 조각 같은 얼굴은 사라지게 하고 몸매 또한 흔한 중년 남성의 풍채로 변하게 했다. 도저히 젊은 시절의 그의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고 정말 내가 알고 있던 그 사람이 맞는지 의심까지 들었다.

'아는 체를 해볼까?' 잠시 망설였으나 몇십 년 만에 만나는 동기와 하하 호호 떠들 만큼의 컨디션은 아니었으므로 아쉬움을 남기고 발길을 돌렸다.


또 일상의 생활이 계속되었고 여름이 되었다.

항상 바쁘게 시간을 쪼개서 일하는 나는, 주기적으로 몸이 아플 신호를 보내면 내 몸을 보호해야 할 때인 것을 안다. 목이 따끔거리고 어깨가 묵직하게 아파오면 영양제를 맞아야 할 때이다.

이번에도 그 병원에 가서 똑 같이 영양제를 맞았다. 잠시 후 내 옆 베드에 몇 달 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다시 누워 영양제를 맞는 것이 아닌가?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영양제를 다 맞고 간호사에게 가서 내 옆자리의 남자가 OOO이 맞는지 확인했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에게로 갔다.

"OOO 씨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요?"

"오우~~ OOO 씨 그대로네요" 그의 접대성 멘트는 여전히 사람 기분을 좋게 한다.

그대로 일 리가 나? 세월은 나에게도 공평하게 다가와 얼굴 처짐과 주름을 주었고 뚱뚱한 몸매를 선사했다.

"사실 몇 달 전에도 내 옆에서 영양제를 맞았었는데.. 두 번이나 우연히 만나다니 정말 반갑네요."

그리고 우리는 어디에 사는지? 직장은 어딘지? 결혼은 했는지? 등등.. 병원에서 치료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수십 년의 근황을 짧고 간략하게 나누었다.

서로 명함을 주고 받으며 일간 한번 보자는 의례적인 인사말과 함께 병원을 나섰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그로부터 문자가 왔다.

'힘 들어서 퇴근 후 영양제를 맞으러 가야겠다'

'좀 내려놓으세요'

'내려놓을 수가 없네'

그는 경찰청에 근무했다. 그 다웠다. 열정도 앳살도 많아 직장에서 남들 못지않게 승진을 하고 싶었으리라. 몸이 부서지는 줄 모르고 일에 전념했으리라.

병원에서의 짧은 만남에서 난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음을 직감했다.

올만에 식사라도 해 볼까 생각도 했으나, 나 역시 삶이 고단하고 힘들어서 그의 긴 말을 들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다음에 한번 보자는 똑같은 의례적인 인사말을 하고 또 일상에 빠졌다.


가을에 그 사람 핸드폰 번호로 부고 문자가 왔다.

상주에는 그 사람과 동일한 성에 비슷한 이름이 몇 개나 보였다. '아~ 형제가 많았었구나'

난 여전히 바빴고 함께 문상 갈 대학 동기도 없었기에 망설였다. 계좌번호를 알려주면 성의를 표시하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으나 답이 없었다. '저 사람 슬픔이 좀 가라앉으면 밥이라도 한 끼 사야겠다.'라고 생각했다.


한 달쯤 지났다. 드디어 식사라도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에 문자를 자세히 보았다. 누가 돌아가셨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인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고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돌아가신 분이 아버지(혹은 어머니)가 아니었던가? 읽고 또 읽어 보았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누구 별세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처음부터 한'자'도 빠짐없이 다시 읽어 보았다.


[부고] OOO

그였다. 난 무엇을 보고 부모님이라 생각했단 말인가? 단지 나와 동년배의 나이라 당연히 본인 별세는 말이 안 된다 생각하고 부모님 별세라 여겼을까?

다시 부고를 읽어보았다. 그의 별세임이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다.

그렇게 적극적이고 활발했던 사람이었는데, 얼마 전에 우연히 만나 다정하게 얘기도 나눴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믿어지지 않았다.

그 사람 톡 프사에는 그의 젊은 시절 수려했던 외모에 경찰 제복을 입은 영정사진이 이미 오래전에 바뀌어있었으나 나만 몰랐다.


그가 떠나기 전 우연히 두 번이나 만났을 때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 내게 할 말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밥이나 한번 사 줄걸, 그 속에 맺힌 얘기들 한번 들어나 줄걸, 후회가 밀려왔다.




남자는 내가 한창 젊은 시절에 같은 직장 같은 부서에서 5년간 함께 근무했었다.

흙수저의 남자는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애를 쓰는 게 눈에 보였다. 눈치가 빨라 윗사람이 가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리고 앞장서서 긁어주던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함께 식사를 하면 정이 많이 든다. 같이 밥을 먹으면 식구라 했던가? 음식은 사람의 몸을 따뜻하게 하고 마음의 긴장까지 풀어헤쳐 속마음을 터 놓게 만든다.

우리 부서는 잦은 직장 회식으로 수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만큼 정도 많이 들었으리라.


세월이 흘러 그는 그의 직장에서 나는 나의 직장에서 충실히 일을 하였으나, 어차피 같은 조직 내에 있었기에 업무적으로 간간히 만나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안녕을 기원했다.


가을에 받은 그의 부고로 인한 충격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을 무렵, 겨울이었다.

남자의 부고 문자를 받았다. 암 말기였으나 알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때라 손을 쓸 수 없었다는 풍문과 함께였다.

안타까운 별이 또 떨어졌다.

이후 우리 조직 내의 사람들은 스트레스받으며 직장에 너무 목을 맨 남자를 나무랐다. 일은 적당히 하고 건강을 챙겼어야 했는데, 이제 본인들도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명예퇴직을 해야겠다고 한다.




그와 남자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주어진 환경에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하고자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너무 없이 태어난 것이 죄일까?

적당히 노력하고 적당히 스트레스 받으며 적당히 일 했다면 이런 갑작스러운 죽음을 피 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역시 우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아무리 발부둥 쳐봐도 소용없는 것일까?


엎드려 잠시 잠이 들었다. 눈앞이 칠흑같이 어두웠으나 저 멀리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인다. 나 인 것 같다. 내가 죽은 것일까? 난 이제 요단강을 건너는 것일까? 내가 죽으면 남편은? 아들은? 뽀와 뿌는 어쩌란 말인가? 온몸에 소름이 돋고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난 요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길을 잃은 사추기다.



매거진의 이전글 절망, 길을 잃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