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생선을 즐길 줄 아셨던 것이다
‘난 생선은 먹기 싫다, 냄새도 맡기 싫어.’
그러던 분인데...
엄마의 식사를 준비하게 되면서부터 늘 반찬으로 무엇을 챙겨야 할지가 숙제였다. 편찮으시기 전에 가끔 식사 준비를 도울 때는 있었지만 그럴 때도 엄마가 주도하는 과정 일부를 잠시 보조하는 정도였지 내가 나서서 무언가를 한 기억은 별로 없었다. 재료를 사고, 다듬고, 씻고 준비하는 모든 과정들도 그저 지나치는 한 장면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맘 때는 식재료로 어떤 것이 좋은지, 목록을 정했으면 좋은 재료는 무엇을 보고 골라야 하는지, 사 온 재료는 어떻게 다듬고 준비해야 하는 것인지와 같은 일련의 과정이 모두 낯설게 느껴졌다. 기껏해야 식사 후에 설거지를 도맡는 정도로 나름의 할 몫을 다 했다고 생각했던 때와는 입장이 전혀 달라진 것이다.
평소에 워낙 채소를 즐겨 드시던 터라 주로 나물 반찬을 만들어 드셨었다. 하지만 편찮으신 이후로 평소 입맛을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콩나물이나 숙주나물은 잘 씻어서 끓이기만 하면 되니 그나마 수월하게 장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드시는 양이 작다 보니 아무리 적은 양을 준비해도 밥상에 여러 끼니를 올려야 되니 멀쩡한 나조차도 금방 물렸다. 호박을 굽거나 가지를 볶는 일조차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적당히 무르게, 간도 알맞게 조리를 한다는 것은 꽤나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조금씩 익숙해지니 고추볶음에도 멸치를 넣어 어느 정도 맛을 낼 수 있게 되었고 말린 토란대로 국도 끓일 수 있게 되었다.
식사 준비에 대한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가까운 곳에 맛있는 반찬 가게를 잘 찾아보고 이용하라는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지방에서 지낼 때만 해도 아파트 단지 인근에 반찬가게 서너 개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 살면서도 아파트보다는 주택이 많은 오래된 동네에 살아서 그런지 그 흔한 반찬가게 하나 찾기가 마땅치 않았다. 같은 동네에 사시는 막내 이모가 반찬 몇 가지를 사다주시면 알려주신 집이 있긴 했다. 집에서 20여분 떨어진 전통시장인데 병문안을 오실 때 몇 번 사다 주셨더랬다. 게 중에 몇 개는 엄마 입맛에 맞으시는 듯했는데 늘 손수 만들어 드시던 양념에 길들여지셔서인지 밖에서 사 오는 반찬 중에 맛있게 끝까지 드시는 것은 드물었다.
무엇보다도 즐겨 드시던 반찬은 나물, 두부, 각종 채소들이 중심이 된 채식인데 기력을 생각하면 고기나 생선 같은 단백질을 잘 드시지 못하는 게 제일 안타까웠다. 편찮으시기 전에도 소고기, 돼지고기 같은 동물성 단백질을 즐겨 드시지 않으셨는데, 이전에야 그렇다 하더라도 수술 이후 회복을 위해서라도 양질의 단백질 섭취는 필수였다. 그나마 육류는 국을 끓일 때 넣을 수 있으니 미역국, 토란국에 소고기를 넣어 드실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생선은 좀처럼 시도하기 힘들었다. 회복을 위해 입원하셨던 병원에서도 공용식기에 희미하게 배인 생선 비린내가 역하다고 식사를 못하셨으니 집에서 장만하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매일 상차림에 고민이 많던 가을 어느 날, 학교 일로 하루 집을 비운 사이 엄마가 집에 택배가 하나 왔다며 전화를 하셨었다. 받는 이가 내 이름이고 냉동 제품이라 그냥 둘 수 없어 열어 보았더니 백화점에서나 봤던 귀한 생선인 것 같은데, 우선 냉동실에 잘 넣어 두셨다고 했다. 그런데 택배상자에도 보낸 이는 수산회사만 적혀 있어 누가 보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누가 이 귀한 것을 보낸 것일까. '참! 며칠 전 임상수련 선생님이 집주소를 물었지?' 혹시나 했던 보낸 이는 역시나 임상수련 동기 선생님이었다. 그분 남편이 제주도 출장 갔는데 현지에서 옥돔을 사 보냈다는 것이다.
‘선생님 어머니 편찮으시다는데 직접 병문안도 못하고... 어머니 몸에 좋은 것 챙겨 드리고 선생님도 함께 드셔요.’
예상치 못한 뜻밖의 선물을 받고 따뜻한 문자를 나누었다. 엄마와 함께 포장을 뜯으니 잘 손질되어 먹기 좋게 건조된 옥돔 열 마리가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위로의 응원 메시지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데 출장 가는 남편에게 일부러 부탁해서 선물을 챙겨 보내주는 마음에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엄마는 옥돔을 맛있게 잘 드셨다. 다른 생선에 비해 살도 많고 비린내도 거의 없을뿐더러 가시도 크고 굵어서 발라 먹기도 수월했다. 보리굴비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입맛을 돋우웠다. 생선을 즐겨 드시지 않았던 것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옥돔을 식탁에 올리면 반 공기도 채 안 되는 양의 밥이지만 즐겁게 드셨다.
그로부터 며칠 후,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에 포장된 택배가 또 하나 도착했다. 이번엔 보리굴비였다. 간병만큼 식사 준비에 어려움이 많다는 하소연을 흘려듣지 않으시고 챙겨주신 직장 동료의 마음씀이었다. 보리굴비도 손질되어 한 마리씩 개별 포장되어 있었다. 팬에 구워도 되고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되고 뜨거운 물에 담그기만 해도 바로 먹을 수 있게 기본 조리가 된 상태여서 더없이 편리했다. 생선 반찬을 챙기고 싶어도 여간해서 시도하지 않았었는데, 옥돔에 이어 보리굴비까지... 이런 방법은 냄새도 안 나고 간편하니 반가움이 컸다. 귀한 재료를 쉽게 조리할 수 있으니 엄마는 물론이고 어설픈 간병인의 상태까지 챙겨주는 동료 선생님의 마음씀이 고마워 내 마음도 울렁거렸다.
보리굴비는 기대보다 맛이 훨씬 좋았다. 기본 조리를 해서 포장된 것이지만 특유의 비린내와 엄마의 평소 식성을 고려할 때 즐겨 드시지 않으시면 어쩌나 살짝 우려했던 것이 무색하게 무척 잘 드셨다. 짭조름하고 고소하고 씹히는 식감도 좋아 아버지도 맛있게 드셨다. 아마도 잘 손질해서 기본 조리 과정을 거친 것이라 정성이 들어가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보리굴비의 상품성에 비할 수 없는 동료 선생님의 깊은 애정이 함께 담겨 있어 더 맛있었던 것 같았다.
‘이렇게 귀한 생선을 또 누가 보내 주신 거냐. 나 때문에 네가 갚을 은혜가 자꾸 쌓인다.’
뜻밖에도 옥돔과 보리굴비를 맛있게 드시는 것을 보면서 평소 생선을 싫어하신 것이 아니라 입맛에 맞는 생선을 만나지 못해서였던 건 아닌가 싶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고등어는 가끔 구우셨어도 비린내가 싫다시며 잘 드시지 않았는데, 어쩌면 값비싼 생선을 쉽게 고르지 못했던 시간들이 생선을 못 드시는 것으로 합리화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고등어 같은 대중적인 생선은 싸고 구하기 쉽지만 식사 후까지 존재감이 뚜렷해서 웬만큼 즐기지 않으면 집에서 자주 챙겨 먹기 쉽지 않다(간병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생선을 비리지 않게 조리하는 노하우가 생겨 지금은 고등어구이도 비린내가 덜 나게 조리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몸값이 나가기는 해도 보리굴비나 옥돔처럼 귀한 생선은 맛도 좋았고 식후에도 오랜 흔적을 남기지 않고 깔끔했다. 만날 때는 즐겁게, 헤어질 땐 향기롭지 못한 흔적을 오래 남기지 않는 것. 어쩌면 세상사와도 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고마운 마음들을 받았다. 앞으로 갚아야 할 은혜가 쌓인다. 지치고 힘들 때 받은 힘이 또 하루를 살게 했다.
p.s. 간병 초기 한참 식단 고민을 할 때 기억들을 더듬어 앞으로 몇 개의 에피소드를 남겨 보기로 했다. 혹여 비슷한 상황으로 식단을 고민하는 분들 중 누군가에게라도 참고가 되면 좋겠다. 인증사진을 남기지 못한 아쉬움에 대화를 찾다 보니 그때 그 고마움에 다시 마음이 훈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