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보다 손글씨 카드에 더 힘이 난다
일반인들에게 다양한 음식을 고르게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 환자들에게도 질이 좋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중에서도 단백질은 단연 신경이 쓰였던 요소다. 소화기관 상당 부분에 외과적 수술이 이루어졌던 터라 평소 드시던 대로 식사 양이나 조리 방법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다. 한 끼에 드실 수 있는 양이 평소에 1/3~1/4 정도 수준이어서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골고루 준비하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퇴원 전에 영양 상담과 교육을 제공해 주었다. 한 끼에 드셔야 하는 영양소의 종류와 양이 그려진 브로셔를 받아왔었다. 대표적인 메뉴가 나와 있어 참고하기 좋게 잘 만들어졌는데, 실제로 브로셔 내용을 적용하는 일은 나처럼 왕초보 간병인에게는 가장 큰 숙제 중에 하나였다.
엄마는 워낙 과일을 좋아하셨어서 평소에는 매 끼니 식사 외에 드시는 것이라고는 다양한 과일 정도였다. 식사 반찬으로도 계절 채소나 말린 나물류, 된장찌개 같은 채식주의자에 가까운 메뉴를 좋아하셨다. 완전식품이라고 하는 달걀마저도 특유의 비린내가 싫으시다며 어쩌나 삶아서 드시는 수준이지 달걀부침이나 계란말이도 썩 좋아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니 두부 같은 식물성 단백질 정도만 겨우 드시던 입맛을 고려할 때 소화도 잘 되고 입맛에도 잘 맞는 단백질이 풍부한 메뉴를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단백질은 근육이나 뼈를 만들고, 혈액 머리카락 같은 신체의 다양한 기관을 만드는데도 필요하고 효소, 호르몬 등의 성분이 된다고 하니 기본적인 체력을 끌어올릴 뿐 아니라 수술 후 회복에는 필수적이었다. 게다가 탄수화물은 섭취 후에 혈당 수치를 급격하게 높인다고 알려진 데 비해, 단백질은 그럴 위험이 적어서 당뇨가 덤핑 증후군 등의 수술 후 생길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을 고려할 때도 적당한 양을 꼭 챙겨드려야 할 이유가 있었다.
육류나 생선 같은 단백질이 풍부한 식재료에 워낙 흥미가 없으셨던 엄마에게 최적의 아이템이 등장했다. 바로 단백질 파우더. 요즘 운동을 조금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닭가슴살과 더불어 영양보충과 아름다운 근육을 만드는데 필수템이라고까지 하는 그것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 운동하는 사람들이나 다이어트 중인 경우에 식사를 대신해서 균형 있게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서만 먹는 것인 줄 알았던 단백질 파우더를 드시게 된 것이다(근래에는 건강한 사람들도 근육을 잘 만들기 위해 애용한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것은 외사촌 언니의 마음으로 가능했다.
엄마는 특정 커뮤니티 같은 곳에 가입하여 인증해서 공유만 하지 않으실 뿐 평소에도 늘 휴대폰에 있는 건강앱으로 하루 1만보를 걸으시는 것을 의무 아닌 의무처럼 생활화하셨던 분이었다. 과일을 즐겨 드셔서 그런지 제 나이보다 최소 5살 이상은 어려 보이는 동안이라 아버지와 함께 외출하실 때는 5살 나이차가 무색하게 10살은 차이가 보이실 정도였다. 봉사활동 하는 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걷기 모임에서는 참여하는 분들 중에 제일 높은 연세였지만 늘 앞장서서 걸으시는 분이셨다. ‘너는 젊은 애가 왜 나보다도 못 걷냐. 그렇게 체력이 약해서 어떡하냐.’며 핀잔을 주시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의 투병 소식은 가족은 물론이고 엄마를 아는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외사촌 언니도 그분들 중에 하나였다. 언니는 엄마의 소식을 듣고 당장이라도 달려와 보고 싶다고 했지만 장애가 있는 큰 아이와 어린 둘째 아이가 코로나 때문에 등교를 못 하고 재택 수업을 받고 있어서 마음처럼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엄마도 투병 초기 면역력이 극도로 약해져 있으셨던 터라 직접 대면하는 사람은 아버지와 나를 제외하고는 가끔 반찬을 챙겨다 주는 막내 이모 정도였다. 언니는 경기도 수원에 살고 있는데 ‘가까이 있으면서 찾아뵙지도 못하고 너무 죄송하다.’고 많이 미안해했다. 무엇이든 챙겨 드리고 싶은데 뭘 챙겨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의견을 구했다. 하지만 나로서도 엄마가 마음껏 드실 수 있는 것도 없고 잘 드시지도 않아서 그저 마음 담긴 안부 전화 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고 했다.
그렇게 통화를 하고 이틀 후 택배가 도착했다. 택배 상자 안에는 초유 단백 성분으로 구성된 파우더 세트와 종합 비타민, 영양제가 가득 담겨 있었다. 단백질을 많이 드셔야 하는데 고기도 잘 안 드시고, 드실 때도 양이 많지 않다고 걱정하는 나의 푸념을 흘려듣지 않은 것이다. 육류든 생선이든 음식에 들어간 단백질이 좋지만 조리를 하는 수고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내가 조리에도 영 자신 없어하는 것을 알아차린 언니의 센스이기도했다. 단백질 파우더는 한 포당 40g씩 포장되어 있는데 하루에 섭취해야 하는 단백질의 36%를 채울 수 있는 성분으로 되어 있었다. 그 밖에도 칼슘, 마그네슘, 각종 비타민 성분도 골고루 들어 있어서 더 좋았다. 무엇보다 물에 타서 흔들어 마시면 되는 간편함도 마음에 들었던 데다가 엄마에게 타 드리니 맛이 좋다며 만족해하셔서 더없이 좋은 선물이었다.
단백질 파우더는 건강한 사람이 건강을 잘 유지하거나 더욱 멋진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도 좋겠지만, 연세가 드셔서 소화기능이 약해지신 분들이나 환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제품인 것 같다. 단백질이 꼭 필요하지만 음식으로 섭취하기 힘들 때나 간편하게 드시고 싶을 때 아주 훌륭한 보충제가 될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는 어떤 영양소든 음식으로 조리하여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는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하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결핍이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역할을 잘 충실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택배 상자에는 한 가지 더 귀한 것이 들어 있었다. 언니가 손으로 쓴 작은 응원 카드 하나. ‘고모~ 항암치료 많이 힘드시죠?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 여러 여건 상 마음만 보내드려요. 치료 잘 견뎌내시고 얼른 쾌유하시길 기도할게요! 힘내세요~~.’ 엄마는 그 카드를 읽고 또 읽으셨다. 전화로 주고받는 안부도 고마웠지만 펜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를 보고 읽는 것은 또 다른 뭉클함을 느끼시는 듯했다. 엄마는 금세 코끝이 빨개지시더니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을 전하고 한참 통화를 하셨다. 통화를 마치시고 엄마는 투명 테이프를 찾으시더니 언니의 카드를 침대 머리맡에 붙이셨다.
그렇게 그 카드는 아직도 침대 머리맡 왼쪽에 지금까지 잘 붙여 있다. 카드를 받으셨던 때가 항암치료 초기였는데 그 이후로 점점 힘들어지실 때마다 그 카드는 엄마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던 것 같다. 어쩌다가 침대에 걸터앉아 계실 때, 잠시 멍한 눈으로 그 카드를 바라보는 모습을 몇 번 목격한 적이 있다. 벌써 3년이 다 되었는데도 그 카드는 여전히 엄마의 머리맡을 지키며 소리 없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