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초록을 살리고, 초록은 엄마를 살린다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은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그런 동네다. ‘서울 같다’는 의미에는 여러 가지가 담길 수 있을 것이다. 메가 시티니 만큼 고층 빌딩과 넓은 도로, 많은 자동차 같은 외형적인 것이 먼저 떠오른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지하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충전이 가능한 냉난방 설비를 갖춘 버스 정류장, 반경 1~2Km 이내에 대형 마트가 기본 두세 개 정도처럼 편리한 인프라 시설도 있겠고. 특히 코로나가 바꾼 생활 중에 가장 손꼽히는 택배 시스템은 밤늦게 주문해도 다음 달 새벽이면 근사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 서울에서 부모님은 30여 년째 같은 집에 살고 계신다. 이 집은 2.5층의 단독주택이다. 건축한 지 35년이 훌쩍 넘은 집이라 외관도 제법 나이 먹은 테가 난다. 요즘은 동네에 새로 짓는 집들이 많아서 더더욱 나이 값을 하는 집이다.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지은 지 얼마 안 된 새집이나 다름없었는데, 부모님 나이 드시는 만큼 집도 함께 나이를 먹어서 요즘에는 곳곳에 보수할 일들이 생기는 것이 집도 사람과 같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실감 난다. 겨울이면 외풍이 세서 방안에서도 양말을 꼭 신어야 하고 내복은 필수고 플리스 카디건을 걸치지 않으면 어깨가 시린 날이 많다. 특히 수족냉증이 나에겐 낡은 집에서 겨울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 동네는 그 흔한 대형마트도 꽤 거리가 있어서 지하철 역을 기준으로 양 옆의 동네는 대형마트며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즐비한 것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노후한 동네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커피를 한 잔 마시기 위해서는 도보 30분 1.1Km를 걸어가거나 10분 거리의 지하철 역에 가서 한 정거장 지하철을 타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이 동네와 집을 너무나 사랑하신다.
10여 년 전 직장 때문에 처음 독립을 했을 때, 엄마가 이사를 도와주시고 내가 이사한 아파트에서 주무셨던 날. 아파트 단지가 대로 옆에 있는 데다가 인근에 IC가 연결되어 있어 심야까지 오가는 자동차 소음으로 좀처럼 잠을 못 이루셨다. 더구나 14층 고층이었던지라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도저히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하셨다. 앞뒤 베란다 창문으로 마주 보이는 이웃 아파트 동을 보시면서는 같은 모양의 외관이 감옥처럼 보인 다시며 머리가 아프다고도 하셨다. 고층이라 조망도 좋고 외풍이 없어 어깨가 시릴 일 없어 만족했던 나와는 달리 집이 숨을 안 쉬는 것 같다며 답답해 숨이 막히는 것 같다고 하실 정도였다.
편리한 아파트보다는 변두리 구옥이라도 내 집이 늘 최고라시는 엄마. 그런 엄마가 이 집을 사랑하는 이유는 단연 옥상이다.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같은 높이의 집들이 대부분이었고, 높은 고층 건물이 드물었어서 탁 트인 시선이 꽤 매력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신축한 건물들이 많아져서 주변에서는 가장 낮은 건물이 되어 그런 매력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옥상은 엄마의 정원이자 놀이터, 생명을 가꾸는 살림터 그 이상이다.
처음 이 옥상에는 몇 개의 화초 화분이 있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은 기억도 안 나지만 아마 이른 봄 영산홍이나 철쭉 정도를 사다 가꾸신 것이 시작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몇 개 안 되던 화분은 초록손인 엄마를 만나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불어 났다. 화초만 가꾸시던 것에서 고추 모종이나 상추 같이 제때 물만 주면 잘 자라는 채소들이 생기더니 이제는 종류도 면적도 엄청난 텃밭이 되었다. 봄에는 상추, 여름엔 깻잎, 고추, 호박, 가지, 여름부터 가을까지 토마토, 부추 등을 끊이지 않고 밥상에 올릴 수 있었다. 늦가을에는 토란, 울금, 아로니아 같은 것들을 수확한다고 며칠 땀을 쏟았다. 계절 사이사이 무화과와 시금치, 미나리도 엄마의 텃밭의 지분을 차지하던 것들이다. 채소뿐만이 아니라 작약, 구절초, 메리골드, 기생난, 군자란 같은 아름다운 꽃들과 알로에, 호랑이발톱, 왕관 모양 선인장들도 빼놓으면 섭섭할 화분들이다.
어떤 것들은 화분에 심었지만 제대로 텃밭을 꾸며 심은 채소들이라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일손이 많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매일 하루 한 번씩 물을 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여름에는 아침저녁으로 두 번은 물을 주어야지 뜨거운 햇볕을 견딜 수 있다. 특별히 농약이나 비료 같은 것을 주지 않는다 뿐이지 하루도 빠짐없이 채소와 화초를 가꾸는 일은 정말이지 노동인 셈이다.
엄마가 암진단을 받고 감당해야 할 일들이 예상보다 많아서 놀랐는데, 그중에 옥상 텃밭도 하나의 과제였다. 예전에는 옥상에서부터 집 아래로 늘어져 있는 초록 넝쿨에 달린 호박이 탐스럽게 보였다. 사람들이 흐뭇한 시선으로 올려다보며 보기 좋다는 말을 한마디씩 하며 지나가는 것을 듣는 일도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엄마가 편찮으시고 나서는 식물들도 주인이 아픈 것을 아닌지 잎들이 축축 처지고 시들어 흉물스러웠다.
아버지가 매일 물을 주시고 가꾸기는 하셨지만 매일 잡초를 뽑고 가지를 다듬어 주고, 애정 어린 손길을 주는 것은 엄마였기 때문에 그런 손길을 잃은 식물들은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2022년에 수술을 마치고 23년 초까지 항암치료를 힘겹게 마치신 후, 엄마는 다시 채소들을 심고 가꾸기 시작하셨다. 물론 그전에 비해서는 화분도 줄였고, 심는 양도 줄이긴 했지만 여느 때처럼 고추와 상추를 심으셨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옥상에 올라가서 전날보다 조금 더 자란 잎들을 보시며 좋아하셨다. 아무리 힘든 일 하지 마시라고 잔소리를 하고 나도 힘드니 도와드리지 않겠다고 선언을 해도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싹이 새로 나고 잎이 조금 더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그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이전보다 더 깊이 생명과 삶을 생각하셨던 것 같다. 제각기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다른 꽃들을 휴대폰에 담고 틈틈이 꺼내 보시는 시선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나도 힘들다고 투덜대면서 엄마의 텃밭 일은 관여하지 않았지만 그곳은 엄마의 놀이터요 당신의 삶을 투사하는 곳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21년이었던가, 그해 늦여름에 병원에서 임상 수련을 함께 했던 선생님의 추천으로 ‘정원의 쓸모’라는 책을 읽었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인 '수 스튜어트 스미스'가 쓴 책인데 '흙 묻은 손이 마음을 어루만지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정원과 식물이 인간의 정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여러 연구와 실제를 통해서 과학적으로 밝힌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엄마의 놀이터였던 텃밭은 감정적으로만, 말로만 엄마를 살리는 곳이 아니라 실제로 엄마를 살리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가을 수확기에 울금과 고춧잎, 토란을 갈무리하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었던 것은 엄마를 도와야겠다는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 과학적 연구의 결과를 보고 개심한 내 이기심이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렇게 엄마는 지난가을에도 옥상에 심은 고추로 5Kg이 넘는 고춧가루를 장만하셨다. 깻잎대와 고추 부각은 올 겨울 맛 좋은 반찬이 되어 줄 것이다. 올해도 작년보다는 줄였지만 내년에는 조금 더 줄여야 할 것 같다. 적은 면적이라도 초록 가득한 밭과 다채로운 꽃들은 얼마든지 즐기실 수 있을 테니.
2024년 여름 현재. 작년보다 텃밭의 면적은 줄고, 기르는 채소의 종류도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옥상은 엄마에게 좋은 놀이터다. 올봄부터 다시 시작된 항암치료로 체력이 달려서 산책마저 벅찬 날에도 아낌없이 햇빛을 쐬고 초록의 생명이 자라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다. 비록 엄마는 체중도 줄고 수척해지셨지만 물과 빛으로 무럭무럭 자라나는 생명을 가꾸고 바라보며 다시 힘을 얻고 희망을 키워가시길 바랄 뿐이다.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계속... 엄마의 놀이터가 초록으로 가득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