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학생들과 캠핑 프로젝트2
프로젝트 수업을 하다 보면 자주 시간과 비용이라는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히곤 한다.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인생이란 본래 그렇다. 원하는 것을 제약 없이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한계가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 속에서 최선의 것을 찾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아이들에겐 필요하다.
본격적인 캠핑을 준비하며 우리는 우선 캠핑 방식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당일치기로 할 것인지, 1박을 할 것인지, 교내에서 할 것인지, 외부 캠핑장을 이용할 것인지. 각각의 경우 비용은 어떻게 되는지, 준비물은 무엇이 필요한지, 편리함과 즐길거리 등의 차이는 어떤지 등을 비교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인적인 선호를 말하자면, 솔직히 교내에서 당일치기 캠핑을 하고 싶었다. 따로 짐을 챙길 필요도 없고, 힘들게 이동을 할 필요도 없이 편안하고 익숙한 공간에서 비교적 여유롭게 캠핑을 즐기다 귀가하여 안락한 내 침대에서 숙면을 취하는 하루. 얼마나 좋은가.
물론 이루어질 리 없다는 것을 알기에 꿈꿔 본 헛된 바람이었다.
캠핑에 대한 기대감에 들뜬 아이들에게는 잠자리의 불편함도, 짐 챙기기의 고됨도 그리 큰 어려움이 아니었다. 그렇게 올해도 교외에서 1박 캠핑이 결정되었다.
우리 학교가 위치한 청평은, 도시에선 흔한 체인점이나 편의시설, 문화시설 등이 부족하지만 캠핑장만은 수두룩하다. 가까운 거리로만 한정지어도 럭셔리 글램핑부터 갓 오픈한 신상 캠핑장까지 선택지가 다양하다.
그러나 여러 캠핑장을 검색해서 비교해 본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자라섬 오토캠핑장’을 선택했다.
최소 5-6만원 이상의 여타 캠핑장과 달리 25,000원(평일 기준) 밖에 하지 않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었다. 게다가 장애인 할인 30%를 받으면 17,500원에 이용할 수 있으니 아주 매력적인 금액이었다.
너도나도 자라섬에 손을 드는 아이들을 슬쩍 떠보았다.
“더 좋은 캠핑장에 가는 건 어때? 돈 더 모으면 되잖아.”
SNS에 자랑할 법한 사진들로 고급스럽게 꾸며진 캠핑장 사진을 띄워주며 유혹해 보았지만 아이들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3월 초, 400만원짜리 뉴욕 여행에도 거침없이 투표를 하던 통 큰 아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홀쭉한 저축봉투 앞에서 지갑을 졸라매는 짠돌이들만 남아 있었다.
용돈을 저축해 모은 금액 안에서만 프로젝트 활동을 진행하기로 한 성과가 제법 있는 듯했다. 물론 모두가 꾸준히 저축을 한 것은 아니고, 부모님께 받아온 듯 한 번에 목돈을 넣는 아이들도 몇 있었으나 그래도 최소한 돈의 가치를 모르고 무모한 선택을 하던 태도는 달라진 듯하니 그것만으로도 매번 용돈을 세며 저축을 강조한 보람이 있었다.
자라섬 오토캠핑장으로 장소를 정한 후에는 컴퓨터 수업과 연계해 아이들이 직접 캠핑장을 예약했다. 프로젝트 수업은 언어, 수학, 컴퓨터, 인간관계 등 다양한 교과가 통합적으로 진행된다. 대개는 주 1회 4시간 수업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추가적인 학습이 필요한 경우에는 타 과목 교사와 협력하여 진행하기도 한다. 언제든 기꺼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우리 학교의 또다른 장점이다.
사실 아이들이 스스로 예약을 하는 데에는 우리의 교육목표도 있으나 부득이하게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도 있다. 자라섬은 장애인 할인이라는 혜택이 있지만 그걸 적용하려면 반드시 할인 당사자가 예약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1인 1개의 할인만 적용이라 우리처럼 단체로 할인 혜택을 받으려면 필요한 수만큼 아이들이 각각 1개씩 나누어 회원가입을 하고 예약을 해야 한다. 경계선급의 인지능력을 가진 우리 아이들은 도움을 받아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다른 발달장애인들도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면,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령노인 등 다른 감면대상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할 수 없다면 타인에게 아이디,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휴대폰 인증정보 등 개인정보를 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물론 그 정도도 어려운 이들이 캠핑장을 이용할 일이 얼마나 되느냐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로 인해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수없이 많은 곳에서 배제되어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회의 박탈이 쌓이고 쌓여 점차 격차를 키우고 종내는 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킨다.
실질적인 이용자의 편의는 고려하지 않는 혜택에 할 말이 많지만 어쨌든 우리는 우리의 목표대로 아이들이 직접 회원가입을 하고 날짜와 구역을 선택해 캠핑장을 예약했다.
요즘 전국의 캠핑장들이 예약전쟁이라는데, 평일이라 어려움 없이 예약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장소를 확보했으니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음식. 캠핑의 꽃은 캠핑요리이다.
텐트의 크기를 고려해 3-4명씩 조를 나눈 아이들은 조별로 저녁과 아침, 두 끼의 식사메뉴를 논의했다.
삼겹살, 닭꼬치, 소시지, 비빔칼국수, 로제파스타, 라면, 프렌치토스트, 볶음밥 등 취향에 따라 다양한 메뉴가 나왔다.
그중 한 조는 한우를 구워 먹겠다며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한우는 꽤 비쌀 텐데?”
“괜찮아요, 돈 모으면 돼요! 우리 전복도 구워 먹을까?“
우려하는 교사의 말에 아랑곳하긴커녕 한술 더 떠 전복도 먹자며 큰소리를 치는 아이와 멋모르고 신이 나 콜을 외치는 친구들.
터무니없는 구매목록을 작성하고 있었지만 일단은 원하는 대로 하게 두었다. 나에게는 다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수학 시간, 작성한 구매목록을 보며 예상비용을 계산했다. 마트 홈페이지에 접속해 구매할 물품의 양과 비용을 찾아보고 총예산을 구해 최종적으로 1인 비용까지 계산하는 활동이다.
“고기 1인분이 몇 g인지 검색해 봐.”
식당에서는 보통 150~200g을 1인분이라 하나 우리 아이들은 한창때의 청년이므로 그걸로는 턱도 없다. 소 한 마리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소시지 등 다른 음식도 있는 것을 감안해 300g으로 기준을 정했다.
1인 300g에 조별 인원수를 곱해 총 고기의 양을 구하고, 다시 고기 가격을 검색해 최종 금액을 구한다.
수에 취약한 지적장애 아이들은 대부분 수학을 싫어하지만 실제 본인이 먹을 것을 계산해야 하니 머리를 쥐어짜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린다.
“헐…! 충격적이에요..”
계산기에 입력된 한우 1.2kg의 가격은 무려 348,000원. 자신만만하게 한우를 외쳐대던 아이가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함께 충격을 받은 친구가 조용히 말했다.
“너무 비싸다… 삼겹살로 바꾸자.”
“오케이, 콜.”
아이들은 그렇게 대안을 찾아 자발적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다시 계산을 해야 해서 이전까지 해놓은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그 과정 안에서 더 많은 것들을 배웠을 테니 괜찮다.
패키지 관광버스에 실려 오가는 길은 편하고 안전하지만 기억에 잘 남지 않고, 자유여행으로 찾아 헤맨 길은 어렵고 힘들어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진짜 중요한 것은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겐 정답보다 정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몇 번의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고 나면 어른들은 아이가 답을 찾지 못할까 봐 초조해진다. 심지어 다른 아이들이 모두 앞서 나가기 시작한다면, 불안함에 혹은 안타까움에 기다리지 못하고 대신 문제를 해결해 준다.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과정 없이 타인의 힘으로 번번이 문제가 해결되면, 아이들은 성장하지 못한다. 자신의 힘으로 헤쳐나가지 않은 길은, 다시 마주해도 처음마냥 막막할 뿐이다.
발달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의 상당수는 사고하는 습관이 결여되어 있다. 그로 인해 지닌 바 능력보다 발현되는 능력이 현저히 적은 경우가 많다. 비장애 아이들보다 더 많은 기회와 경험이 필요함에도 현실은 장애라는 이유로 박탈되는 기회와 제한되는 경험이 대다수이다.
우리의 역할은 아이들이 능력 안에서 최대한 스스로 해나갈 수 있도록 기다리고, 조언하며, 격려하는 것이다. 충분히 고민하고 시도하며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칠지라도 언젠가는 자신의 힘으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비록 세상의 기대에는 못 미칠지라도 아이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그 걸음이 너무 무겁지 않도록, 지쳐 주저앉지 않도록, 든든한 조력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몫일 것이다.
덧) 230919 KTV <생각의힘> 에서 관련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