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이드가 부캐인 극한직업
아이들과 자유여행을 준비하며 가장 큰 난관은 우리가 너무 대그룹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오사카 여행인원은 총 24명이었고, 올해는 31명이 함께 한다.
졸업여행 대상자인 3학년뿐만 아니라 인턴쉽 과정의 학생들 일부가 합류하며 그룹크기가 더 커졌다.
인턴쉽은 졸업 이후 학생들이 개인의 욕구나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과정이다. 우리 학교는 기본적으로 3년 과정이지만 발달장애 학생들의 개인차를 고려하여 조기취업이나 인턴쉽 과정을 통해 탄력적으로 학제가 운영된다.
십여 년 전에는 학생들의 우선순위가 대개 취업이었다. 발달장애인들이 다닐 수 있는 대학도 흔치 않았고, 일자리도 마땅치 않은 시대였다.
우리 학교에 입학하는 이유도 취업을 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았고, 능력이 있는 학생들은 3학년 초부터 조기취업을 희망하기도 했다.
취업만 하면 성공적인 인생이고, 행복한 삶이 될 거라 믿던 때였다.
그러나 복지일자리 등 장애인들이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양적으로 늘어나고, 학령인구의 감소로 위기에 놓인 학교들이 많아지며 원한다면 일반대학도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더불어 고물가시대와 맞물리며 비학위 과정의 대안대학인 우리 학교는 신입생 감소의 위기를 겪고 있지만 반대로 재학생들의 만족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다양한 선택지 중 우리 학교를 선택하는 이유로는 이제 취업보다 ’눈높이가 맞는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즐거운 학창 시절을 누리고 싶어서’인 경우가 많아졌다. 경증의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초중고 학창 시절 대부분을 일반학교에서 비장애 학생들과 통합되어 지내며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고, 학교에서 긍정적인 경험이 별로 없기에 우리 학교에서의 즐거움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졸업여행 등 프로젝트 수업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놀러 가기 때문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그리고 직접 계획을 세우고 실행을 하는 과정들이 ‘진짜 대학생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조기취업이 가능한 학생들도 의사를 물어보면 학교생활을 충분히 즐기고 나가고 싶다며 취업시기를 늦추거나 인턴쉽 과정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에 맞춰 우리도 교육과정에 프로젝트 수업을 확대하고 전공심화반을 개설해 인턴쉽 과정을 세분화하는 등 변화를 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일자리의 양적확대와는 별개로 질적인 문제, 취업유지 등의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며, 이미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 학생들 중에도 계약이 종료되거나 쉼을 원하는 등의 이유로 다시 학교로 복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우리 학교는 취업지원센터를 운영하며 졸업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네트워킹을 이어가고 있어 언제든 졸업생들이 찾아올 수 있는 안식처가 되고자 한다.
며칠 전에도 근로자의 날을 맞아 60여 명의 취업생들이 학교를 방문했고, 취업과 직장생활에 대해 후배들에게 이야기해 주며 교류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학교를 좋아하고, 학교에서 행복해하며,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사회에서 제 몫을 해내는 아이들은, 내가 오래도록 이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아무튼 이런 이유들로, 졸업학년은 3학년이지만 우리 학교에는 그보다 더 선배들이 꽤 남아있다.
지난해 오사카 졸업여행을 추진했을 때 가장 부러워한 학생들이 그러한 선배 인턴들, 특히 코로나로 졸업여행을 가지 못했던 18~20학번 학생들이었다. 1, 2학년들은 부러워하면서도 다음에는 자신들도 간다는 기대에 차 있었다면 이미 졸업을 한 인턴 학생들은 단순히 부러움을 넘어서 억울함과 분노를 내비치기도 했다.
우리도 안타까웠으나 해외 자유여행에, 그것도 처음 진행해 보는 여행에 인원을 더 늘리기는 무리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달랬었다.
올해 역시 시작은 3학년 학생들만 대상으로 하였다. 언젠가 기회가 되고 상황이 된다면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청년 배낭여행 같은 걸 추진해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버킷리스트가 있으나 솔직히 시간적, 경제적 여건상 지금으로선 무리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근로자의 날 학교에 온 졸업생이 이번 졸업여행에 함께 가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이 여행이 그 아이에게 얼마나 힐링이 될지 생각하면 기꺼이 데려가고 싶지만 한 명을 허락하는 순간 수많은 졸업생들에게 연락이 빗발칠 것이 뻔하기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졸업여행도 본래는 겨우 두 번째에 큰 욕심을 내기보다는 현재 3학년 학생들과 안전하게, 즐겁게 다녀오는 것을 우선으로 시작을 했다. 그러나 트래블월렛에서 여행비용을 후원해 주기로 하면서 소수의 학생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생각에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인원을 추가한다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대상은 졸업여행을 간 적 없는 인턴 학생들이었다. 마음이야 희망자 모두와 함께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자유여행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인원은 한계가 있다.
여행인원이 늘어날 때 가장 문제는 아무래도 숙소와 항공권 등의 예약이다. 패키지여행이라면 여행사에서 알아서 해주겠지만 우리는 자유여행이므로 예약도 검색을 통해 직접 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숙박 어플에서 2~30명은 검색도 안 된다. 아마 그들도 우리처럼 대인원이 여행사 없이 자유여행을 하는 건 예상하지 않았나 보다. 우리가 원하는 형태의 단체숙소는 어플 검색을 통해서 잘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올해 여행지로 결정된 홍콩은 비싼 집값으로 유명한 만큼 상상 이상으로 숙박비가 비쌌다. 지난해 오사카에서 지불한 숙박비의 두 배를 훌쩍 넘어가는 곳이 태반이었다.
고민 끝에 아파트, 호텔 대신에 게스트하우스와 한인민박으로 눈을 돌렸다. 작은 숙소에 방을 전부 대관해서 사용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가격도, 위치도 적당한 한인민박을 찾았고, 다행히 예약도 가능했다. '홍콩 파크모텔'이라는 곳인데, 이름은 모텔이지만 실제로는 게스트하우스이다. 사장님이 이름을 모텔이라 지은 걸 이불 킥하며 후회하고 있다는 글을 홈페이지에서 읽었다.
이름 때문에 처음에 약간 망설였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후기도 좋고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듯했다. 게스트하우스지만 각 방마다 샤워실과 화장실이 딸려 있고, 함께 모일 수 있는 거실도 있어 퍽 만족스러웠다. 9월 여행을 일찌감치 시작한 덕분인지 방을 넉넉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사장님도 우리의 여행 취지를 듣고는 추가할인 등 친절을 베풀어주셨다. 발달장애 학생들과 함께 하며 부당한 대우와 편견에 속상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만나는 온정에 고마울 때도 많다.
그렇게 숙소를 무사히 구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제일 큰 골칫거리였던 숙소가 해결되었고, 30여 명 숙박이 가능했기 때문에 졸업여행 참가인원도 그에 맞춰 늘리기로 했다. 신청서가 배부되기 무섭게 너도나도 참가의사를 밝히며, 학생 26명과 교사 5명 총 31명의 여행인원이 확정되었다.
자유여행을 하기에는 엄청 큰 그룹이지만 여행에 합류하게 되어 뛸 듯이 기뻐하는 학생들을 보면 우리의 수고는 감수할 만한 것이 된다. 일이 커질 것에 걱정도 되지만 지난해 쌓인 경험치가 있기에 올해는 너끈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자신감을 가져본다.
다행히 숙소는 이미 구했고, 단체 예약이 어려웠던 항공권 결제는 트래블월렛 측의 도움으로 손쉽게 해결되었다.
항공권 단체구매는 충분한 비용을 지불하면 어렵지는 않다. 다만 지난해 우리는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구하고자 했고, 여행사를 통한 단체구매는 인터넷에서 개인적으로 결제하는 것보다 훨씬 비쌌다. 그리고 인터넷 최저가 역시 좌석수에 제한이 있어서 여러 번에 나누어 검색과 결제를 반복하다 보면, 처음 본 가격보다 훌쩍 금액이 뛰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면 이착륙 시간과 관계없이 저렴한 시간대로 구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집결하고 해산하는 시간, 현지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는 시간도 고려를 해야 했다.
여러모로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감사하게도 이번에는 트래블월렛의 후원이 있어 지난해보다 한결 수월하게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아마 지원이 없었더라면 올해도 미안하지만 인턴 학생들까지 함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나의 일에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고 있고, 보람을 느끼지만 사실 이 일은 오롯이 나의 노력만으로 잘 되지는 않는다. 사회 곳곳에서, 크고 작게 베풀어지는 따뜻한 손길들이,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는 마음들이 하나둘 모였기에 지금 우리가 하는 일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 고마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또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당장은 눈에 띄는 결실을 내지 못하더라도, 언제 어디서 인가는 꽃피우리라 믿으며 하루하루 나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도. 어느새 5월, 지쳐가는 몸과 마음에 다시금 힘내라고 응원하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