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으로 배우는 경제교육
두 번째 졸업여행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지난해의 아쉬운 점을 보완하고자 한 것 중 하나는 여행비용 저축이다.
지난해 오사카 자유여행은 갑작스럽게 결정되었고, 준비기간이 두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원래는 패키지여행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앤데믹 이후 여행수요가 폭증하며 비용이 생각보다 비쌌고, 여행사에서는 발달장애 학생들이라는 말에 곤란해하며 추가비용을 요구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특별한 서비스를 요청한 것도 아닌데 왜 비용을 더 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억울함이 샘솟았다. 그 여행사 측에서 '발달장애'라는 말에 어떤 어려움을 예측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장애인'은 한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같은 장애를 진단명으로 가졌어도, 그들은 제각각 다른 개인이다. 몇 명의 사례를 전체 집단으로 일반화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몇 백 명의 발달장애인을 경험했지만 모든 발달장애인을 알지는 못한다. 장애로 인한 특성, 선천적인 기질, 가정환경, 교육, 개인의 경험 등 다양한 요인이 어우러져 한 사람을 구성한다.
그러나 ‘장애’라는 하나의 요인은 종종 한 사람의 전부를 설명하는 특성이 되고, 같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은 모두 동일한 사람으로 취급되어 부당한 편견을 마주하게 된다.
지난 여름 강원도 평창으로 캠프를 갔을 때는 워터파크에서, 과거에 '어떤 장애인'이 대변실수를 했다며 우리에게 불편함을 드러냈다. 정작 우리는 처음 방문한 장소였다. 각별한 주의를 약속하고 겨우 입장을 한 이후에도, 직원들이 우리 학생들은 놀이기구를 탑승할 수 없다며 막아섰다. 그렇게 지침이 내려왔다며 당당하게 직원들 단체카톡방도 보여주었다.
발달장애인이라고 모두 워터파크 이용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장애인이라고 전혀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닌데, 편견을 합리적 판단이라 믿는 그들은 우리를 차별적으로 대우하며 조금의 미안함도, 부끄러움도 없었다.
우리는 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백여 명의 학생들과 매해 여름캠프를 가고 워터파크를 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워터파크는 우리가 이전에 갔었던 워터파크들에 비하면 매우 협소하고 놀이기구 난이도도 높지 않았다. 이보다 더 큰 워터파크도 문제없이 이용해 왔고, 교사들이 알아서 잘 관리하겠다는 실랑이를 한참 한 끝에 놀이기구를 탑승할 수 있었다.
그해 우리는 무탈하게 워터파크를 이용하고 나왔고, 패키지 대신 자유여행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지난해에는 갑작스럽게 자유여행을 추진하느라 저축까지 지도할 여력이 없었다.
올해는 여행준비의 시작과 함께 저축을 계획하고 용돈을 모으기로 했다.
비용문제는 프로젝트 수업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교실 밖 활동에는 필연적으로 돈이 든다.
우리 아이들은 대체로 경제관념이 약하다. 지적장애 학생들은 수에 취약하고, 일부 자폐성장애 학생들은 달력이나 암산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기도 하지만 돈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소비하는 데에는 대부분 어려움을 보인다.
비단 장애로 인한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청소년기를 이제 막 벗어난 아이들은 스스로 용돈을 관리해 본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필요한 돈은 그때그때 부모님께 받고, 자신의 용돈으로는 간식을 사는 정도이다 보니 관리의 필요성을 모른다. 있으면 쓰고 없으면 말고.
용돈을 아예 받지 않는 아이들도 간혹 있다. 돈 계산에 자신이 없다거나 과거에 금전적인 문제가 있었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삶에서 돈을 사용하고 관리하는 일은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일이다.
부모가 평생 대신해 줄 수 없고, 타인에게 온전히 의탁할 수도 없다.
장애, 질병, 노령으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에게 후견인을 선임해 재산 관리나 신상 보호 사무를 지원하는 성년후견인 같은 제도도 있지만 이는 개인의 영역별 능력 편차를 고려하지 않고 모든 사회활동 참여를 획일적이고 광범위하게 제한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더 크다.
실제로 우리 학교 학생들 중에는 각고의 노력 끝에 국가자격증인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이전에 신청한 성년후견인 때문에 자격증 발급을 거부당한 사례도 있다.
(참고: 2023년 JTBC 뉴스 현실 '우영우'는 변호사 자격증 못 딴다… 성년후견인 제도 때문?)
당시 부모님은 자녀를 보호하고자 한 것이 자녀의 발목을 잡는 결과가 되어 돌아온 것에 무척 상심하셨다. 결국 소송 끝에 성년후견인 등록을 취소하고 자격증을 발급받아 현재는 요양병원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그 역시 본래 성년후견인을 신청한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도움이 필요한 영역은 제각기 다르건만 하나를 지원받으려면 모든 부분에 제약을 받아야 하고, 그걸 피하려면 아예 지원을 받지 않아야 한다니. 제도의 보완만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고,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연습을 반드시 해야 한다.
계산이나 크기 비교 등 수개념은 지적장애로 인해 제한이 있는 영역이나 다행히 요즘은 카드결제, 어플사용 등 대체수단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많다. 대신 돈을 적절한 곳에, 적당한 선에서 사용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해졌다.
적절하게, 적당히. 이 얼마나 어려운 말인가. 비장애인도 절제하지 못하고 계획 없이 소비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현실이다.
정답도 없고 기준도 개인마다 다른 경제관념을 가르치기란 참 어렵다. 너무 많은 것을 목표로 하면 답도 없고 끝도 없으므로 내가 아이들에게 중요하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딱 하나다.
돈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욕구를 절제할 줄 아는 것.
우리 아이들의 상당수는 충동 조절과 만족지연능력이 부족하다. 미래나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는 게 어렵고, 즉각적인 보상을 추구하는 경향이 높다.
하지만 저축을 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더 큰 즐거움을 얻는 경험을 반복한다면, 그건 충분히 학습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 학교 1학년들은 대학생활 버킷리스트를 정해 한 해 동안 이뤄나가는 도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이를 위해 용돈을 저축하고, 모은 돈 안에서 예산에 맞춰 소비하도록 교육한다. 지나치게 많거나 적은 용돈은 교육의 어려움을 초래하므로 사전에 가정과 공유하여 적절한 선의 용돈과 저축계획을 수립했다.
처음엔 저축의 개념도 희박하고, 자발적으로 수행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 심지어 용돈이 부족해지면 저축한 돈을 다시 돌려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저축을 해야 여행을 갈 수 있다고 설명해도, 당장 간식을 먹고 싶은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제 돈을 달라며 고집을 부렸다.
그렇지만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필요한 돈을 계획하고, 부족한 금액을 계산하고, 친구들과 현재 저축현황을 비교하는 활동을 하자 용돈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멈추고 오히려 지갑 속 잔돈까지 탈탈 털어 저축을 했다.
그리고 첫 번째 활동을 하고 오면 다음 저축은 한결 수월해진다.
졸업여행은 용돈을 모아 가기엔 액수가 너무 큰 터라 항목을 구분하는 과정을 거쳤다.
여행 어플을 참고하여 비용을 항목별로 나누고, 항공권, 숙소, 관광입장료, 식비 및 간식비, 기념품 쇼핑 등에 예상되는 대략의 비용을 계산했다.
그리고 그중 공통으로 지불하게 될 항공권, 숙소, 관광입장료를 제외하고, 현지에서 개별적으로 소비하게 될 식비 및 간식비, 기념품 쇼핑에 필요한 금액을 계획하고 계산했다. 금액에 맞춰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한 항목들이니 저축 결과에 따라 선택지의 범위가 달라질 터였다.
“해외여행은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전부 부모님께 달라고 하고, 너희는 펑펑 쓰기만 할 수는 없어. 홍콩에 가서 각자 사 먹을 돈과 쇼핑할 돈은 너희들 용돈을 모아서 쓰는 거야.”
적게는 30만 원부터 많게는 70만 원까지 원대한 목표들이 세워졌다.
목표금액을 정한 후에는 여행까지 남은 기간을 세고, 매주 모아야 하는 금액을 계산했다. 목표금액이 크지만 9월 여행까지 남은 기간이 넉넉하기 때문에 매주 1~3만 원 정도의 금액이 나왔다.
수학을 싫어하고 수학은 포기했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태반이지만 프로젝트 수업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프로젝트 수업 중에는 언어, 컴퓨터, 인간관계 등 다양한 교과를 통합적으로 활용한다. 그중 빠지지 않고 반복되는 것이 수학이다. 시간을 계산하고, 예산을 정하고, 돈을 세고, 정산을 하는 등 우리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활동이 많지만 동기가 확실하게 부여된 아이들은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를 쓴다.
어떤 아이들은 프로젝트 수업에 대해 공부를 안 해서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은 학생 주도적인 수업이라 여느 교과보다 훨씬 해야 할 과제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공부가 아니라 좋다’는 마음이, 학습에 자신감 없는 아이들에게 자발성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굳이 그 귀여운 오해를 정정해주지는 않는다.
대신 지금 하고 있는 저축, 계산, 검색, 발표, 논의, 대중교통이용 등의 여러 활동들이 너희들의 삶에 얼마나 필요하고 유용한 것들인지를 알게 하려 한다.
저축목표를 세운 후에는 평상시 용돈을 지출하는 내역을 쓰도록 했다. 카페 음료, 과자, 배달음식, PC방, 교통카드 충전, 데이트 비용 등 여러 항목이 줄줄이 나왔다. 그중 줄일 수 있는 지출을 정하도록 했다.
당장의 소소한 지출로 얻을 수 있는 만족보다 홍콩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기에 아이들은 기꺼이 간식 등 지출을 줄이겠다고 다짐을 했다. 미래에 대한 기대는 현재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지금, 차곡차곡 쌓여가는 용돈만큼 아이들의 설렘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