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암. 회사에서 퇴근하고 졸음이 몰려오는 밤 10시 반. 아이가 잠든 걸 확인하고 운동화를 신은 채 집을 나선다.
나는 3월에 있을 10km 마라톤 대회를 준비 중이다. 운동은 자주 하지도 않으면서 마음만은 준비 중이라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마라톤에 나가게 된 계기는 지인들이 추천해서이다. 나는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경향이 많은데, 요즘 가깝게 지내는 지인 모임 사람들이 산책과 러닝의 매력을 극찬했다. 그러고는 지인들이 각자 혼자 하는데 외롭다고 나한테 같이 하자고 꼬셨다. 나는 새로운 취미를 만드는 게 취미인지라, 이참에 러닝도 취미로 해보고 싶었다.
마트 시식코너를 돌아가면서 하나씩 집어먹어 보는 것처럼 나는 이런저런 활동들을 맛보기로 살짝씩 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요가, 캘리그라피, 꽃꽂이 등 배우거나 한번 해보면서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다 보면 이런 거 배우려고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다른 면으로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서 그들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아가는 것도 묘미이다. 지인들의 달리는 생활도 궁금해져서 최대한 같이 달리기 위해 시간을 맞추려고 노력했고, 어느새 한 달에 한두 번씩은 평생 해본 적 없는 러닝을 같이 하고 있었다.
헌데 마라톤은 무작정 달리기만 하고 혼자 하는 고독한 스포츠로 생각했다. 그러니 내 기준에서는 재미없고 따분해 보일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 스스로 자처해서 절대 할 일이 없어 보이는 활동인지라 더욱이 주변 사람들이 한다니까 따라서 하고 싶었다. 지인들이 특별히 달리는 좋은 점을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바쁜 사람들이 즐겁게 한다는 건 분명 이유가 있을 듯 싶었다. 그리고 이럴 때 아니면 평생 안 할 것 같으니까 해보는거다.
거기에 더해 무라카미 하루키님이 글을 쓰고 달리는 삶에 관해 쓴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문장을 체감해 보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하루키님은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 달린다고 했다.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공백 상태는 어떤 경지일까. 거기에 무슨 쾌감이 깃들어있을까. 책을 읽으며 내내 궁금했었다.
달리기가 지루하고 고독한 운동이라는 관점은 실제로 달린 날에 내 허벅지 살 조금과 함께 타버리고 없어졌다. 달리면서 할일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뛰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지, 무릎이 아파지는지, 호흡이 일정한지 등등 몸이 어떤 상태인지 집중해야 더 오래 더 편하게 달릴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나의 상태에 몰입하는 것.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종종 내가 불편해지는지도 모른 채 남을 편하게 만들려고만 애쓰는 나 자신에 놀라고는 한다. 달리면서 내 몸이 말하는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레 평소에도 내 감정의 소리에 귀 기울여질 것 같다.
그리고 내 몸에 배어있었던 중고등학교 때 달리던 흐름을 찾아갔다. 기분 좋게 구름 위로 점프하듯 발을 내딛지만 끝내 중력에 이끌려 툭 둔탁하게 떨어지는 발바닥. 발뒤꿈치부터 닿고 이후 발바닥 뒤에서부터 앞으로 지면에 빠르게 전해지는 감각. 툭 툭툭 한 걸음 한 걸음 집중하다 보면 머릿속 먹구름이 하나씩 하나씩 지워진다. 이 고민 탓에 내일이면 무너질 것 같던 일들도 아무 일 아닌 듯이. 아 맞다, 초등부터 고등까지 반에서 손에 꼽는 계주 선수였는데. 내내 잊고 지내다가 러닝을 하다 보니 몸이 기억해 냈다. 아, 달리기 좋아했었지. (그땐 주로 단거리 달리기였다.)
러닝 크루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면서 달리니 재미도 더해졌다. 나는 아직 달리기 초보라 듣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매일 달리는 언니들은 뭐 그리 할말이 많은지 오디오가 빌 새 없다. 달리면서 내 몸의 비명소리도 집중해야 하고, 언니들 웃음소리도 들어야 하니 달리는 내내 바쁘다. 지인 J와 L은 항상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다. 어제는 뭘 먹었는지 공유하고, 공복 다이어트를 한다며 몇 시부터 공복인지 일상처럼 묻는다. 웃음 포인트는 둘 다 식이조절에 실패한 이야기를 자주 늘어놓는다는 점이다. 날씬하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싶어 매일 달리지만 먹는 건 참을 수 없다는 부지런하고 유쾌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달리는 사람들의 즐거운 이야기가 잘 비빈 비빔밥에 참기름 한 스푼을 두른 것처럼 러닝 매력의 풍미를 더했다.
자주 달리고 싶지만, 현실이 쉬이 나를 달리게만 두지 않는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일하는 나와, 회사 퇴근 이후엔 육아 출근이 이어지는 삶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회사와 집에서 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여전히 앞서고 그 이외의 시간에 나를 챙기려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나를 챙기는 시간마저 욕심내면 모든 걸 견디지 못하고 번아웃이 올 것 같은 불안감이 맴돈다. 결국 나 스스로를 챙기는 일은 순위에서 밀려 3순위 일이 되고 만다.
그런데 마라톤이 나를 챙기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3순위에 밀려있던 일이었는데 말이다. 계속하다 보니 내 몸 챙김을 할 수 있다. 달릴 때 어디가 아픈지, 아니면 전보다 어디가 덜 아픈지 챙기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마음을 챙기고, 마라톤은 몸을 챙길 수 있다. 글쓰기와 마라톤이 심신을 다 살피는 데에 조화롭다.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님도 글 쓰면서 마라톤을 좋아하는구나 싶다. 그렇게 이해해 보려고 애썼던 책 내용도 실제로 달리다 보니 조금이나마 끄덕이게 된다.
최근에 읽은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욕심낼 자격은 따로 없다.」
내가 욕심내도 될 수준인지, 자격은 있는지 괜히 지레 겁먹은 건 아닐까. 나 자신의 한계를 만드는 건 나였던 게 아닐까 싶다. 뭐, 조금 욕심내도 되겠지. 그렇지만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천천히 해보려 한다. 마라톤 또한 새로운 취미이자,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는 게 생각만 해도 하고 싶어지고 설렌다. 욕심부리지 말고 조금씩 해보는 거다. 마트에 가서 먹어보지도 않은 만두 한 팩을 덥석 집어들 필요는 없다. 시식코너에서 맛보기로 한입 먹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취미 시식코너에서 마라톤 한입 먹어보자고. 일단 3월에 있을 동아 마라톤 10km부터 완주 도전할 생각이다. 어제 20분 러닝머신 달렸다고 허벅지가 타들어 가는 것 같지만 조금씩 태워보기로 한다. 내 열정이든, 허벅지살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