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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소아과 Mar 21. 2024

명의에 대한 부모의 갈망

자식을 최고의 의사에게 수술받게 하고 싶은 그 마음 

119에서부터 심정지로 실려와서 응급실에서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한 아이는 응급처치 후 검사결과 상 뇌에 거대한 종양과 출혈이 발견되었다. 당장 머리를 여는 개두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미 한번 심장이 멈춘 아이는 언제 다시 심장이 멈출 줄 몰랐다. 그 아이가 달고 있는 약물만으로도 베드 주변이 꽉 찰 정도로 거의 모든 약물이 최고 농도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당장 소아 개두술로 유명한 대학병원으로 전원 할 것을 요구했다.  그 병원으로 이동하는 동안의 이송위험성, 사망 가능성을 설명하는 저에게 극도로 분노한 부모님은 협박하는 거냐, 당장 전원해라, 이 병원에서는 수술 못 받는다, 여기서 죽으면 너부터 내가 가만두지 않는다. 나한테 개소리할 시간에 당장 유명한 그 병원으로 애를 데려다 놔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를 다시 소생시킨 것에 대한 수고했다 말 한마디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이런 육두문자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어째 어째 전원을 했고, 상태가 너무 불안정했기에 이송차 안에서 CPR 칠 각오로 동행했다. 다행히 그 아이는 살아서 뇌수술로 유명하다는 병원에 도착했다. 결과는 어떤지 모른다. 


자식에게는 늘 최고의 것만 해주고 싶다.


돈이 많든, 돈이 적든, 가진 모든 걸 다 줘서라도 자식에게 최고의 것을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나도 한 자식의 부모로서, 그 마음이 어떤 건지 너무 잘 알고 있다. 특히 아이가 죽어간다는데, 최고의 병원에서 최고의 명의에게 수술받는 것이  아이를 살리는 가장 좋은 법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의학적 입장에서는 1분 1초라도 빨리 수술받는 것이 소생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지만, 보호자는 인터넷 댓글에 [뇌수술은 절대 지방에서 받지 마세요. 서울 XX 병원에서 받으세요]라는 그 댓글을 더 철석같이 믿었다. 우리 병원에서 뇌수술 한다는 것은 그 아이 부모님은 아이를 죽이는 방법이나 다름없었다. 실제 수술 한다 해도 사망 가능성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나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술을 강행해서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를 책임진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죽어도 이송차 안에서 죽겠다는 부모님에게 자의퇴원 동의서를 받고 내가 직접 동행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다 알고 있지만 나에게 닥친 현실은 지옥이었다. 다시 구급차를 타고 돌아와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30명의 환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화가 난 환자 보호자도 있었다. 지금 몇 시간째 기다리는데, 이게 무슨 응급실이냐! 틀린 말씀은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밤에 응급실과 병동을 통틀어 소아과 의사는 나 하나였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당직의가 있었지만, 당직의는 감염위험 때문에 응급실에 실제 위급한 환자가 아니면 보지 않겠다고 했다. 경증의 30명의 환자가 몇 시간 대기 후 자체적인 중증환자가 되어 컴플레인은 극에 달했다. 단순 발열 환아라 해열제를 처방하고 집에 돌려보냈는데, 겨우 이거 하려고 몇 시간이나 기다리게 했냐는 보호자의 비아냥은 못 들은 척했다. 내가 그 전날 아침 6시에 기상 후 새벽 4시 가까이 되는 시간까지 1분도 쉬지 못하고 끊임없이 일을 했으나, 진료가 지연된 것에 대해 어떻게 사과를 해야할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아침 해가 밝았을 때, 그 당시만 해도 24시간 근무 후 8시간의 정규업무를 이어서 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다시 병동으로 올라갔지만,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응급실에서 계속 콜이 왔고, 정규업무조차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보통 의료사고는 이럴 때 난다. 다행히 그날은 운이 좋았다. 별 일 없이 악몽 같은 날이 끝났다. 


아이의 병의 중증도와 관련 없이 모든 부모는 간절하다. 내과에서 인턴을 돌면 심폐소생술 거부동의서를 많이 받는데, 소아과에서는 인턴 때도, 전공의 때도 심폐소생술 거부동의서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른의 죽음은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면,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부모는 1명도 없다. 다른 과에서는, 특히 고령의 환자들이 많은 과에서는 의사가 포기하기 전에 가족들이, 본인들이 그만하고 싶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아이를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소아과 의사가 아니라 부모다. 부모님들의 그 마음에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그게 역설적으로 굉장한 무게감으로 짓누를 때가 있다. 그래서 소아과가 힘든 이유기도 하다.   


그날은, 명의가 아니라서 죄송스러운 날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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