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인수(4)

by 이유진 봄해
한라산 북쪽 자락.


하늘은 맑았고, 먼 아래로 건물들이 조밀하게 펼쳐졌다. 그 너머, 바다가 물감 번지듯 푸른빛을 흘렸다. 잔디는 고르게 깔렸고, 나무는 나직이 흔들렸다. 그 사이로 작은 비석들이 조용히 누워있었다. 오후 예배를 마친 뒤, 우리 곁으로 연이 된 이들이 함께 둘러섰다. 앞쪽엔 검은 예복을 입은 분이 서 있었고, 그분은 짧은 말을 천천히 머금은 채 내뱉었다. 맑고 또렷한 그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 예복 자락은 그 바람을 따라 가만히 떨렸다.


그 자락 아래, 손바닥 만한 크기의 땅이 열려 있었다. 안쪽엔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연한 빛의 플라스틱 관이 둥글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곳에 아버지의 골분을 천천히 부었다. 가루는 흩어지지 않고, 곧장 땅으로 스며들었다. 모든 가루가 내려앉자, 나는 한 걸음 물러섰다. 곁에 서 있던 공원 직원이 다가와 몸을 숙였다. 그는 플라스틱 관을 조심스레 들어 올리고, 미리 덜어 놓은 흙과 자른 잔디를 덮어 주었다. 그 뒤, 나는 두 손으로 잔디를 눌러 자리를 다졌다. 특별한 말도, 표정도 없이, 그저, 해야 할 일을 끝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남은 것은 고인이 남긴 신분증 한 장이었다. 오랫동안 거주지불명으로 살아오셨지만, 죽음을 앞두고서야 겨우 거주지를 등록하고 발급받은 신분증이었다. 사진 속 얼굴은 마지막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 네모난 플라스틱 한 장이, 아버지를 기억하는 마지막 물건이 되었다.


모두 돌아간 뒤, 우리는 공원 길을 따라 걸었고, 나는 관리실에 들러 아버지의 작은 비석을 주문했다. 만삭의 아내가 공원 벤치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그 앞을 맴돌았고, 어머니는 조용히 그 곁에 있었다. 나는 멀리서 어머니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 등은 오래전, 맨발로 멀어지던 그날의 등과 같았다.




퍽.

그날, 아버지의 주먹이 어머니의 등을 내리쳤다. 어머니는 맨발로 도망쳤다. 아버지는 도망치듯 살아오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는, 도망칠 수 없었다. 나를 혼자 둘 수 없었다고. 어머니는 돌아왔고, 울지 않기 위해 한참을 가만히 숨만 쉬었다. 멀리도 가지 못한, 그 등을 세워 다시 나를 안았다.


그 등은, 여전히 멀어지지 않았다. 제주로 이사하며 어머니를 모셔왔다. 그땐, 내가 어머니를 데려왔다고 여겼다. 생각해 보면, 연고 하나 없는 이곳에 어머니가 따라오신 건, 어머니에게 내가 곧 연고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 되돌아왔고, 아이들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나는 작은 아이를 안고, 느리게 기운 햇빛 속에 가만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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