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작은 손들이 앞다퉈 귤을 집었다. 귤은 알맹이로 나뉘어 접시에 가득 담겨 있었다. 누가 먼저 먹을지, 누가 더 많이 가져갈지, 입안 가득 귤즙이 퍼지며 실랑이가 이어졌다. 나도 귤 한 알쯤은 먹을 수 있으려나 싶던 순간, 아내가 한라봉을 까서 건넸고, 하나 뜯어 입에 넣었다. 달콤한 즙이 입안에 퍼졌다. 귤껍질 옆으로 가지런히 놓인 서류가 눈에 들어왔다.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 서류였다. 입학을 앞두고도 한글은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여덟 살 전까지는 몰라도 괜찮다는 마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 네 남매와 함께 부둥켜안고, 천천히 배워가고 싶었다. 우리는 그 마음을 따라 홈스쿨링을 시작했다. 학교에 홈스쿨링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먼저 입학 등록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소풍 가듯, 네 남매와 함께 학교를 찾았다. 운동장은 아이들로 가득했다. 제주 동쪽의 한적한 마을은, 많은 육지 사람들이 이주해 올 만큼 붐볐다. 학교는 이미 증축을 마쳤고, 귤나무 주변으로 타운하우스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우리는 교무실에서 간단한 서류를 작성했다. 곧 아이의 지내는 모습을 살피기 위한 가정 방문과 틈틈이 이어질 유선 연락이 있다고 했다. 학교 밖을 나왔다. 조금 떨어진 외진 곳에 닿았고, 마당 있는 작은 집 한 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문 옆 빨간 우편함엔, 부재중 우편물 스티커 하나가 붙어 있었다. 작년에도 비슷한 우편물을 받은 적이 있었기에, 나는 ‘그 일’이 떠올랐다.
무연고 사망 통지를 받고, 아버지의 시신을 인수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고 그저,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을 뿐이었다. 남겨진 주소지를 찾아 고인의 사망 소식을 전했을 때, 그곳을 관리하던 분에게서 들었다. 예전에도 한 차례 쓰러졌고, 이번엔 방 문을 열다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병원 기록엔, 당뇨성 케톤산증으로 숨졌다고 적혀 있었다. 당뇨가 악화되어 쓰러졌다가 다시 돌아오셨을 때, 아버지는 아마 죽음을 깊이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남긴 말, “꼭 무연고 처리해 주세요”라는 부탁을 떠올리면, 체념과 배려, 그리고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었던, 고인의 자존심이 담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장례는 빈소 없이 치렀고, 서둘러 정리한 마지막 옷가지들이 떠올랐다. 그 후로 시간이 흘렀고,
유언은 지켜지지 않은 채, 두 번째 봄을 맞았다.
집에 있는 아내에게 한 통의 우편물이 도착했다. 아내가 건넨 봉투 안에는, 고인의 빚과 관련된 서류가 들어 있었다. 승계집행문등본과 판결정본. 나중에 알게 됐다. 그건 고인의 빚을 내가 상속인 자격으로 떠안았다는 뜻이었고, 그들이 이제 나를 상대로 압류를 포함한 강제 집행을 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생소한 단어와 숫자들이 서로를 덮으며 흘러내렸고, 그 속에서 하나의 문장에 시선이 멈췄다.
피고 망 이OO의 승계인 이OO
그 끝에, 익숙해야 할 이름이 너무도 낯설게 적혀 있었다. 내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