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봉투는 마치, 칼날 같았다
아내가 건넨 봉투 안에는 '승계인'이라는 낯선 말과, 내 이름이 있었다.
그 우편물을 받아 들기 전부터, 아내의 숨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며칠째 아이 셋이 모두 앓고 있었다. 기침, 콧물, 울음이 이어졌고 아내는 그 아이들을 품에 안고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도 또 한 생명을 뱃속에 품고 있었다. 그날 아침, 일하던 중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들도 아프고... 나도, 아픈데." 가쁜 숨 사이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보다 그걸 견디고 있는, 아내가 걱정이었고, 당장 달려가고 싶었다. 다행히 쉬던 동료에게 사정을 말하고 잠시 자리를 넘긴 뒤,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큰아이의 기침 소리가 계속됐다. 컹컹대는 소리가 걱정되어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증상이 심해지면, 응급실로 가야 한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신발을 벗고, 막내를 안았다. 나는 그제야 긴 숨을 내쉬었다. 식탁 위에 몇 통의 우편물이 놓여 있었다. 아이들이 여전히 보채는 가운데서도 아내는 그중 하나를 집어 내 손에 쥐어 주었고, 얼굴은 심란한 마음이 드러나 있었다. 울먹이는 아내를 달래며, 조용히 봉투를 들고 나왔다. 한라산을 넘고 서귀포로 향하는 한 시간 남짓. 운전대를 잡은 손끝에, 날 선 무언가가 손에서부터 온몸으로 번졌다.
그 봉투는 마치, 칼날 같았다.
빚을 갚으라는 날 선 문장이 안쪽에 숨겨져 있었다. 그 문장은 사는 곳이 있어야 빚진 이를 벨 수 있었고, 주소를 남기지 않으면, 닿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숨는 길을 선택하셨던 걸지도 모른다. 그건 어떤 사회적 활동도 할 수 없는 삶. 어디에도 이름을 올릴 수 없고, 어느 한 군데 신분을 증명해야 하는 곳이라면 그 문턱조차 넘을 수 없었다. 그 삶이, 어딘가 씁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은 법원에 공시송달을 신청했고, 결국 법원의 명령이 내려졌다. 아버지의 거주지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그 봉투는 직접 받지 않더라도 송달된 것으로 간주되었고, 그 순간부터 법적 효력이 발생했다. 아버지가 아무리 오래 숨어 있어도, 그 서류는 여전히 힘을 잃지 않았다. 피하지 못할 눈빛처럼, 빚을 남긴 자와 얽힌 이들을 끝내 찾아내었다.
나는 일터로 돌아와, 틈틈이 상속에 대해 찾아봤다. 상속 포기를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은 이미 지났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상속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내가 상속을 포기하면 그다음 순위 상속인에게 빚이 넘어간다고 했다. 아버지의 조카나 사촌, 혹은 더 먼 친척 중 누군가가 그 빚을, 떠안게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새벽까지 일터 한켠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응시했다. 고인의 빚이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거나 알 수 없었던 경우, 법원에 신청할 수 있는 방식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나에 대한 친권을 상실했던 시점과 거주지 불명으로 오랜 시간 교류 없이 지낸 사실을 정리해 진술서를 작성했다. 사유가 받아들여진다면, 빚을 감당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었다.
아침 퇴근길, 나는 가장 가까운 법률사무소 앞에 섰다. 독촉장에 적힌 사건번호는, 고인의 시신보다 무겁게 가슴에 내려앉는 숫자였다. 그 무게를 혼자 끌어안고 애써 해결하려 하기보다, 이젠 누군가의 손에 맡기고 대신 처리해 주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