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피할 곳이 없어.
아내가 울먹이며 했던 말이었다. 서로 언성을 높이고 등을 돌려 집 밖으로 나가도, 아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이들 옆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때론 온갖 안 좋은 생각이 머리를 채웠지만, 아이들은 그런 내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 사이, 마당에 외등을 켜두었다. 집은 외진 곳에 있었고, 주위엔 가로등 몇 개만이 비추고 있었다. 밤이면 어둠이 그득해졌다. 그래서 이 작은 불빛 하나가 주는 의미는 컸다. 평소엔 모두 잠든 시간이면 꺼두었을 외등이었다. 하지만 그 불빛이 켜져 있다는 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아내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땐, 그 손에는 며칠치 먹거리가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마지막 피할 곳이자,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되어 있었다. 가끔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도, 여전히 끼니를 챙겨야 했고, 아이들을 재워야 했지만.
나는 그날, 법률사무소에 들렸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책상 너머, 처음 마주한 변호사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그분을 법률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그가 알려준 서류들을 하나씩 준비해 나갔다.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상속인이 있는지 확인했고, 아버지가 남긴 재산 내역도 조사했다. 일괄 조회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나, 나는 직접 은행과 시청을 오가며 예금과 부동산 내역을 확인했다. 그렇게 확인된 아버지의 재산은, 생전에 받지 못한 근로장려금 환급금 백오십만 원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나는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절차상, 그 환급금을 받은 뒤 소송을 제기한 대부업체에 넘겨야 했다. 법원은 아버지의 명의로 남은, 재산의 범위 내에서만 빚을 갚으라고 인용해 주었다. 이후 몇 달간 신문 공고를 통해 절차가 마무리됐다. 고인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이 있다면, 상속인이 한정승인을 했으니 정해진 기간 안에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빚을 짊어지지 않게 되었다.
그 결정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땐, 이번 한 번으로 모든 것이 끝날 거라고 믿었다. 더는 빚에 대한 독촉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고 또 다른 대부업체로부터 소장을 받았을 땐, 모든 게 다시 시작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 법원의 이 결정문은 소장이 들어있는 날 선 봉투 앞에서, 그것을 막아서는 방패가 되어 주었다. 앞으로 마주할지도 모를 같은 문제들 앞에서, 내가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나와 아내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밥을 차리고, 작고 까다로운 네 남매의 입속을 마주하며 양치질을 챙겼다. 그리고 꼭 끌어안고 아이들을 재웠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처음이자, 유일한 피할 곳이었다. 그런 생각 끝에 문득,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아버지에게도 그런 피할 곳이 있었을까. 울고 싶을 때 돌아갈 수 있는 작은 집, 말없이 기다려주는 사람이, 아버지 곁에는 있었을까. 어쩌면 마음 둘 곳 없던 시절을 보내셨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 외로움과 아픔까지 짐작해보고 싶었지만,
그 책임까지 내가 짊어지고 싶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