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사체 반응
그날, 아버지의 골분을 흙 속에 부었다. 내 옆에 서 있던 어머니의 마음속에도, 오래도록 삼켜온 기억들이 말없이 가라앉아 있었을지 모른다. 오랜 시간 곁에 있으면서도 어머니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삶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마음 한구석으로 밀어낸 채 지냈다. 여전히 멀어지지 않은 그 등 너머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어떻게 그 세월을 살아내셨을까. 숨죽이며 살아낸 날들,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기억들이 등뼈를 타고 단단한 침묵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기억했다. 그 말투와 얼굴, 집 안을 맴돌던 짙은 농약 냄새까지도.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 열한 살의 어머니는 밭 한가운데 쪼그려 앉아 호미로 풀을 매고 있었다. 몸은 땀에 젖었고, 손은 무엇을 지우듯 흙을 파내고 있었다. 그때, 개구리 한 마리가 어머니 앞까지 다가왔다. 그러더니 불쑥, 배를 드러내고 엎어졌다. 하얀 배가 들렸고, 입가에는 침이 흘렀다. 숨을 멈춘 듯, 죽은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호미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곧장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부엌 쪽으로 발을 돌렸다. 부엌 옆 토방, 부엌과 안채 사이에 낮게 덧붙은 마루가 있었다. 그 위에는 토사물이 흥건하게 퍼져 있었고, 농약 냄새가 진하게 났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올케언니였다. 어머니는 곧장 언니가 품앗이하고 있는 밭으로 달려갔다.
외삼촌은 어머니와 같은 방에 있었다. 달력을 찢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열 살이 되어서야 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어머니의 출생 등록은 마을 이장에게 맡겨졌고, 실제보다 두 해 늦게 처리되었다. 그래서 외삼촌이 쓴 글은 열한 살 어머니에겐 낯설고 어려웠다. 그때 외삼촌이 말했다.
밭이 가서 풀이나 매라.
그 말투에서, 어머니는 왠지 모를 불길함이 밀려왔지만 더는 머물 수 없었다. 방을 나와,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밭으로 향했다. 그날 외삼촌은 농약을 마셨다. 어른들 말로는, 농약을 삼킨 뒤 목줄기와 뱃속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바닥을 뒹굴며 방을 옮겨 다녔고, 이곳저곳엔 쏟아낸 토사물 흔적이 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극심한 고통에도 죽지 않자, 낫을 어떻게 들어 올렸는지 설명할 수 없었지만, 발견되었을 땐 정수리에 낫이 깊숙이 꽂혀 있었다고 했다.
그 개구리는 왜 죽어 있었던 걸까. 그건, '사체놀이' 또는 '탁사체 반응'이라 불리는 현상이었다. 놀라거나 위협을 느낀 개구리가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죽은 척하는 반응. 몸을 뒤집고, 배를 보이며, 침까지 흘리는. 의식을 끊은 듯 몸을 늘어뜨리는 생존 본능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어머니는 그것을 몰랐다. 어머니가 본 것은 죽은 개구리가 아니라, 어쩌면 누군가의 죽음을 미리 알리는 징조였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메니에르’라는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병명은 훗날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그저 갑자기 세상이 기울어지고, 몸이 땅에 들러붙는 것 같다고 했다. 입 안은 말라붙고, 속은 울렁거려 아무것도 삼킬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어머니는 그럴 때마다 누워서는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가끔은 입가에 침을 흘렸고, 토사물 옆에서 몸을 말아 웅크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토사물을 치우고, 차가워진 어머니의 발을 조심스레 주물러주는 것뿐이었다. 어떤 날은 베란다 문을 열어둔 채,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 계셨다. 바람은 불었지만, 그 바람이 어머니를 식히는지 더 흔들리게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물끄러미 그 옆에 앉아, 무언가를 묻고 싶다가도 입을 다물고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날 어머니는 개구리가 죽는 걸 보았다고 했다. 몸을 뒤집고 배를 드러낸 채, 죽은 듯 누워 있는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어머니는 무언가가 너무 두렵고, 너무 아파서 그저 가만히 누워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긴 세월 속에서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어머니의 등 너머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