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ㅡ
우리 집 옆에는 제법 넓은 텃밭이 하나 있었다. 뒷집 할머니의 밭이었지만, 몇 해 전부터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에게 내주셨다. 아이들을 예뻐하셨고, 마음껏 뛰놀아도 좋다며 웃으셨다. 우리가 잠시 인근 마을로 거처를 옮긴 동안, 그 집에 어머니가 들어와 지내셨다.
그해, 어머니는 집 옆 텃밭을 정성껏 가꾸셨다. 우리가 집에 들를 때마다 밭은 잡초 하나 없이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고, 등 뒤로 몸을 숙인 채 땅을 파내고 풀을 골라내는 어머니가 보였다. 세월은 흘렀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몸을 낮춰 땅과 등을 맞댄 채, 무언가를 고르고, 지우며 하루를 일구고 있었다. 아내는 그런 어머니가 걱정되어 재차 말했다. "허리 아프신데, 무리해서 풀 매지 마세요." 그리고는 어머니 곁에 앉아 풀을 매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공원길을 함께 걷다가 나와 어머니는 근처 ‘푸주옥’이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그 사이 이미 밥을 먹고 온 아내와 아이들은 식당 옆 공원 놀이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 자리에 앉으니, 벽에 붙은 메뉴판에서 도가니탕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도가니탕 하나와 설렁탕 하나를 주문했다. 도가니탕은 어머니 앞에 놓아드렸고, 나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다. 돌아와 보니, 내가 받은 설렁탕 안에는 도가니가 가득 담겨 있었다. 순간 긴 숨이 나왔다. ‘나도 도가니탕 시킬걸.‘ 괜히 후회가 밀려왔다. 그날 도가니가 듬뿍 담긴 설렁탕을 먹으며, 문득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식당에서 일하고 밤늦게 돌아오신 어머니는, 잠자리에 누운 내 곁에서 자주 이 노래를 불러 주셨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ㅡ" 나는 어머니 옆에서 노랫말을 몇 번이고 물어보곤 했다. 노랫말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곁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말끝으로, 손끝으로 어머니의 체온을 붙잡고 싶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다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그 시절 내 안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날 그릇에 남은 국처럼, 그 감정도 식지 않은 채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스무 살에 아버지와 결혼하셨고, 이듬해 나를 낳으셨다. 그날, 아버지에게 등을 맞고 맨발로 도망쳤지만, 어머니는 다시 돌아와 나를 안았다. 그 후, 아버지는 넘겨주지 않던 친권을 어머니에게 내주었고, 두 분은 이혼하셨다. 열한 살이던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지방으로 내려왔다. 오래된 벽채의 방 한 칸짜리 사글세 집에서 문을 나서면, 변기 없는 공동 화장실이 있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곁에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집은 내게 유일한 안식처 같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집에 있니? 어디 계시니?
아버지를 찾는 목소리에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모른다고 대답한 뒤 급히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를 찾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어떻게 우리 집 번호를 알고 있었을지 불안했다. 그날 이후로도 몇 번, 비슷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그래서였을까. 어린 나는 학교를 다닐 때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고만 싶었다. 아버지의 부재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 빈자리를 피해 자랐다.
그 집에선 대부분 혼자였다. 어머니는 홀로 짊어진 삶을 감당하기 위해 여러 일을 하셨고, 늦은 저녁이 돼서야 집에 돌아오셨다. 가끔 잠결에 손이 닿은 어머니의 등이 조용히 들썩이곤 했다. 어쩌면, 돌아누운 등 너머에서 가만히 울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그저 어머니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등 너머에는,
어머니만이 아니라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