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수급자
나는 복직한 뒤 육지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 밤, 아내의 살을 타고 어깨 아래에서부터 목덜미까지 무언가가 기어올랐다. 아내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고, 차갑고 축축한 감촉이 손에 잡히는 순간, 본능적으로 그것을 옆으로 던졌다. 아내는 벌떡 일어나 불을 켰고, 주위를 샅샅이 살폈지만, 어디에도 이상한 낌새는 없었다. 두 아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잠들어 있었다. 겨우 안도의 숨을 쉬며 몸을 다시 눕혔을 때, 베개 밑에서 낮게, 쉰 듯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불안한 마음에 아내는 다시 등을 일으켜 불을 켜고, 조심스럽게 베개를 들었다. 그 아래, 길고 굵은 지네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린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주말이 되어 제주로 돌아온 나는 아내에게서 그날 밤의 일을 들었다. 지네는 사람처럼 숨을 쉬지 않았다. 아내가 들었다는 거친 숨소리는, 베개 커버와 지네의 몸이 스치며 낸 낮은 마찰음이었는지 모른다. 검붉은 지네가 아내의 목을 타고 기어올랐다. 다행히, 그 밤 아내는 지네에게 물리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실감했다. 이 따뜻하고 습한 땅, 오래된 돌담과 작은 숲이 감싸고 있는 우리 집. 이곳은 지네에게 더없이 좋은 서식지였다.
제주로 온 어머니는 자주 지네에 놀라셨다. 습기와 틈새, 돌담과 숲이 뒤엉킨 이곳의 모습은, 도시에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어머니를 당황하게 했다. 육지에 있을 땐 오래된 임대아파트에 살았다. 주기적인 방역과 소독 덕분에 눈에 띄는 벌레는 없었다. 비록 낡고 작은 공간이었지만, 생활은 일정했고, 어머니는 그 안에서 최소한의 안정감을 누리셨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베개 밑에 웅크린 지네처럼, 어머니 곁에 머물던 하나의 호칭이 있었다. 그 말 앞에서 어머니는 움츠러들었다.
어머니는 기초수급자였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머니는 노동력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하고, 부양자인 내 소득이 일정 기준 이하로 인정되면서 수급자가 되셨다. 이후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의 가정 방문과 면담이 매년 이어졌고, 그 평가에 따라 자격이 유지되었다. 수급자가 되고 나니, 매달 일정 금액의 생계급여가 지급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등급의 의료급여 대상자가 되면서 병원 진료비는 대부분 천 원으로 줄었다. 어머니가 수급자가 되기를 바랐던 가장 큰 이유가 의료비 부담 때문이었다. 잦은 병원 방문, 약값, 검사비가 늘 무겁게 따라붙는 고정된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 제도는 분명 필요한 보호막이었지만, 동시에 벗어나기 어려운 굴레이기도 했다. 병원을 계속 다녀야만 노동력 없음이라는 진단을 받을 수 있었고, 진단서 없이는 자격이 유지되지 않았다. 아프지 않으면 혜택은 끊기고, 제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아픔을 계속 증명해야 했다. 앞으로 어머니에게 다른 삶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제주로 오고 난 이후, 생활이 조금씩 달라졌다.
이곳에서, 자주 지네의 얼굴을 마주해서였을까. 어머니는 그 앞에서 움츠러들기보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천천히 약을 끊었고, 병원에도 더 이상 다니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기초수급 자격은 종료되었다. 대신, 어머니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공공근로 일자리를 신청했다. 긴 시간, 일하지 못한 세월을 뒤로하고 낯선 일터와 새로운 환경 앞에서 걱정하셨지만, 어머니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 후로도 꾸준히 일을 이어갔고, 어머니는 조금씩 능동적인 삶의 방식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오랜만에 어머니와 함께 함덕 바다에 갔다. 저녁으로 해장국을 먹었다. 아이들도 맵지 않게 끓인 해장국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식사 후, 아이들은 서우봉 언덕을 먼저 뛰어 올라갔다. 뒤늦게 언덕 위에 도착하니, 바람 사이로 하얀 메밀꽃이 말간 얼굴로 피어 있었다. “할머니, 할머니!” 아이들이 어머니 손을 잡고 꽃 사이로 들어갔다. 꽃을 헤치며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어머니의 눈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아이들 틈에 서 있는 어머니는 그 순간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계셨다.
저녁 깊어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하나둘 잠이 들었고, 집에 도착한 나는 아내와 함께 조심스레 아이들을 안아 방에 눕혔다. 이불을 덮어주고 조용히 문을 닫은 뒤,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기 위해 나는 다시 차에 올랐다. 곧 차는 어머니 집에 도착했고, 어머니는 천천히 차에서 내리셨다. 나는 창문을 내려 문 앞에 서 있는 어머니께 손을 흔들었고, 어머니도 가만히 웃으며 손을 들어 답했다. 차를 돌려 돌아오는 길, 사이드미러를 흘끗 보았다. 어머니는 아직 그 자리에 서 계셨다.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여전히,
내 등 너머엔, 어머니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