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등(2)

by 이유진 봄해
수도꼭지가 또 부러졌다.


주택으로 이사 온 뒤, 외부 수도꼭지를 벌써 세 번째 교체하게 됐다. 텃밭에 물을 주고, 마당의 꽃과 잔디를 가꾸다 보니 수도 사용이 많았다. 여름이면, 아이들은 매일 마당에서 물놀이를 했다.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바다가 있지만, 네 남매를 데리고 바다에 다녀오는 건 쉽지 않았다. 수영복을 입히고 짐을 챙기는 것도, 돌아와 모래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것도 손이 많이 갔다. 막내는 더 놀겠다며 버티기 일쑤였고, 결국 안아 데려와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마당을 더 자주 이용했다. 수돗가에서 물을 받아 놀게 하고, 끝나면 바로 집으로 들이는 게 훨씬 편했다. 이런 일상 속에서 수돗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육지에서 살다 제주로 내려와 주택 생활을 시작한 뒤, 수도꼭지를 고치고 손보는 일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어머니 역시, 어지럼증 약을 드시는 일에 익숙해지신 지 오래였다. 어머니는 십오 년 동안 어지럼증 약을 드셨다. 옷 주머니에도, 가방 안에도, 식탁 위에도 약이 놓여 있었다. 언제 갑자기 어지럼증이 찾아올지 몰라, 늘 손이 닿는 곳에 약을 두셨다. 하지만 그 약은 치료제가 아니었다. '메니에르'라는 진단명 아래, 약은 단지 증상을 잠시 누그러뜨릴 뿐이었다. 오랜 시간 약을 복용하면서, 약효도 점점 희미해졌다. 닳아버린 수도꼭지처럼,


흔들림을 잠글 수 없었다.

결국 병원에서는 더 강한 약을 처방했다. 이번엔 괜찮아질 거라고, 효과가 더 좋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수도꼭지를 교체하듯 약을 바꿔가며 십오 년이 흘렀다. 하지만 증상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상태가 심해질수록 더 많은 약이 주어졌고, 입원하는 동안에는 물이 새지 않도록 수도꼭지를 더 세게 잠그듯, 어머니의 몸도 점점 조여갔다. 약은 늘 어머니 곁에 있었지만, 치료는 멀어져 갔다.


제주로 내려온 그 해 겨울, 어머니는 약을 줄이기로 하셨다. 먼저, 필요 이상의 약을 모두 버리셨다. 그날 서랍 속이며, 옷장에 걸린 옷 주머니 안까지 약이 들어 있었다며, 약을 하나하나 버리며 오래 우셨다. 약을 끊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한밤중에도 종종 우리 집에 찾아오셨다. 불안하셨던 걸까. 수도꼭지를 바꾸는 대신, 가둬둔 물을 몽땅 비워내듯 마음을 쏟아내셨다. 불안이 터져 나올 때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결국 잘 이겨내셨다. 다시 어지럼증으로 휘청이며 누우셨을 때도, 약을 찾지 않으시고 그저 방 안에 누워 버티셨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약을 드시던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활이 조금씩 변해갔다.


어느 날, 또 한 번의 어지럼증을 겪었다.

겨우 몸을 일으키셨을 때, 어머니의 귀는 더 이상 일상의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의사는 돌발성 난청이라며, 청력이 일부 소실된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는 점점 소리에서 멀어져 갔다. 사람들은 어머니에게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그런 반응들을 묵묵히 받아내셨다. 들리지 않는 말들 사이에서, 표정을 읽고 분위기를 짐작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 양쪽 귀에 보청기를 해드렸다. 보청기 판매 센터에서 처음 보청기를 끼셨을 때, 어머니는 잠시 멈춰 섰다. 익숙하던 먹먹함 속에서 갑자기 낯선 소리들이 모여 들어왔다. 처음엔 어색하고, 시끄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 낯선 이질감 속에서도, 오히려 소리의 질감이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으셨을까. 그 순간, 어머니 눈가에 물기가 번졌다. 작은 건전지를 제때 갈아줘야 했고, 습기에 약하니 전용 통에 넣어 관리도 잘해야 했지만, 어머니는 보청기를 무척이나 소중히 다루셨다.


어느덧, 나는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날 병원에서, 어머니 곁에 앉아 의사의 말을 대신 듣는 중에 알게 되었다. 어머니 한쪽 귀 고막은 인공 고막이었다. 진료실을 나와 물었을 때, 원래의 고막은 아버지에게 맞아 찢어졌다고 했다. 등 뒤에서 갑자기 뺨을 맞았고, 그 충격에 고막이 터졌다고 했다. 사글셋방 한 칸에서 살아가던 그 시절, 어머니는 내 앞에서 늘 웃으셨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묵묵히 배어든 멍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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