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좁은 곳(1)

by 이유진 봄해
그곳엔 거대한 원통형 기계가 있었다.


나는 조금 전까지 눕고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담요는 긴장한 몸짓 그대로 흐트러져 있었다. 그날은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었다.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피검사를 비롯해 기본적인 항목들을 무리 없이 마쳤다. 마지막 한 가지, 처음 받아보는 검사만이 남아 있었다. 검사실로 들어섰을 때, 한쪽에 커다란 원통형 기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검사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기계 앞 침대에 누웠다. 그는 내게 담요를 덮어주고, 귀에는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헤드셋을 씌워주었다. 나는 낯선 절차를 앞두고 잠시 멈춰 선 사람처럼, 담요를 덮고 헤드셋을 낀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곧, 얼굴이 움직이지 않도록 경추를 고정하는 장치가 씌워졌다. 그 순간부터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기계가 움직였고, 나는 천천히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눈과 코 바로 앞에는 기계 안쪽 벽이 거의 닿을 듯 가까웠다.


숨을 들이쉴 공간조차 좁게 느껴졌다.


그리고 금속판을 두드리는 듯한 자기 공명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쇠망치로 두드리듯, 무겁고 일정한 소음이 이어졌다. 그 진동이 그대로 가슴까지 내려왔다. 쌓여 있던 불안이 갑자기 터져 나왔다. 나는 더는 버틸 수 없었고, 갑작스레 온몸이 저항하듯 움직였다. 기계가 멈췄고, 직원이 다가와 괜찮은지 물었다.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된 뒤, 나는 구급대원으로 일했다. 구급대원은 일 년에 한두 번, 건강검진 항목으로 MRI검사를 받았다. 출동이 잦고, 환자를 들것에 눕혀 옮기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대부분 허리에 무리를 겪었다. 외상이 없는 환자의 경우에는 업어서 계단을 내려오는 일도 흔했다. 그래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도 일 년이 지나면, 허리에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방공무원으로 들어온 이듬해, 나는 아내와 결혼했다.


"어땠어?" 집으로 돌아온 내게 아내가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별일 아니라고 여겼던 걸까. 처음 받아보는 MRI검사에서 나는 심한 답답함을 느꼈다. 기계가 멈추고, 검사실 직원이 괜찮은지 물었을 때 나는 깊게 숨을 내쉰 뒤, 괜찮다고 말했다. 이번엔 담요를 덮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 기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천천히 안쪽으로 끌려 들어갔다. 눈을 감고 있자니 오히려 더 답답했다. 그래서 한쪽 눈만 감은 채,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걸 반복했다. 삼십 분 남짓. 시간이 흐른 뒤, 기계는 마치 나를 토해내듯 밖으로 밀어냈다. 불안하고 답답했던 마음은 검사가 끝났다는 안도감에 곧 가라앉았다.


나는 육아휴직 동안, 아내와 함께 제주로 내려온 뒤로 그일은 잊고 지냈다. 시도 간 인사교류가 성사되었고, 아버지의 시신을 인수해 그 유골을 제주 어승생 한울누리 공원에 안장했다. 나는 이곳에서 화재진압 대원으로 일하며 서서히 적응해 갔다. 가끔은 소방차를 운전했고, 뱀을 잡거나 벌집을 제거하는 구조 상황을 마주했다. 종종 화재 현장을 새롭게 경험하며 일을 배워나갔다. 매캐한 연기 냄새, 젖은 방화복, 잿더미 사이를 헤집으며 혹시 모를 불씨가 있는지 살폈다. 선임들은 필요한 일 앞에서 한번 더 설명해 주며 나를 이끌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재 출동 벨이 울렸다. 곧이어 출동지령서가 프린트되어 나왔다. 지령서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집에 불이 났다.


시끄럽게 울리는 소방차 안, 나는 방화복 바지에 다리를 밀어 넣고, 상의를 걸쳤다. 공기호흡기를 어깨에 메자, 무전으로 화재 상황이 맞다는 말이 들려왔다. 면체를 얼굴에 쓰고 양압 상태를 확인했다. 숨을 들이켜자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랜턴과 열화상카메라의 전원을 켰을 때, 소방차는 현장에 도착했다.


건물 창틈으로 검은 연기가 무섭게 뿜어져 나와 오르고 있었다. 팀장님과 나는 호스를 끌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슴에는 열화상카메라가 걸려 있었지만, 검은 연기로 가득 찬 공간에서 나는 화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카메라는 안을 비추고 있었지만, 내 눈은 그조차 읽지 못하는 어둠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때, 천장에서 무언가가 '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방화두건으로 감싼 귀가 점점 뜨거워졌다. 나는 자세를 낮추고,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마치 심장에 불이 붙은 듯했다. 무언가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타들어 갔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한 연기가 뼛속까지 차올랐다. 손이 저절로 올라가 공기호흡기 면체를 감쌌다.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그것이, 그 순간만큼은 벗어던지고 싶은 무게였다. 벗는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 답답함은,


죽음을 망설이게 할 만큼 절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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