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좁은 곳(2)

by 이유진 봄해
작은 아이가 다급히, 아빠를 부르며 뛰쳐나왔다.


네 남매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 가지 알게 되었다. 아이가 대체로 어릴수록 꿈과 현실, 기억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둠과 정적이 얼마나 무섭게 다가올 수 있는지, 익숙한 공간마저 얼마나 낯설게 느껴지는지 알게 되었다. 특히, 체온과 마음의 거리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자다가 갑자기 눈을 뜬 아이는 내 품에 안겨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안절부절못했다. 작은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고, 작게 흐느끼며 몸을 뒤척였다. 혹시 소변이 마려운 건 아닐까 싶어 화장실에 데려가 변기에 앉혀보기도 했고, 말로 다정하게 달래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해결도 보이지 않을 때는 나도 모르게 다그치듯 말했다.


늦은 밤, 둘째 아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마치 세상에 막 태어난 듯 낯선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아이는 나를 부르며 문을 열고 급히 나왔다. 식탁에 앉아 있던 나는 팔을 벌리며 말했다. "아빠, 여기 있어. 괜찮아." 아이를 품에 안고 같은 말을 반복하며 다독였다. 한참을 그러자 아이는 다시 깊은 잠에 들었다.





열한 살 즈음, 집에서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를 기다리다 잠들었다. 언제 들어오실까, 문 쪽을 몇 번이고 바라보다가 눈이 스르르 감겼다. 한밤중, 잠에서 깼다. 방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그곳은 불빛이 있어도 이상하게 너무 어두웠다. 어머니를 불러보았지만, 곧 어머니가 곁에 없다는 걸 알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그 순간 집은 나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무슨 신발을 신었는지도 모른 채,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으로 걸어갔다. 그 밤의 골목은 조용했다. 식당 앞에 도착했지만, 불은 꺼져 있었고 문은 잠겨 있었다. 울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 어머니가 언제 돌아왔는지 기억은 희미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세월이 지나도 몸은 기억했다.


버려짐.


그 시절의 불안한 공기와 어둠 속에서 자라난 답답함은 기억 너머, 몸에도 남아 있었다. 밝은 곳에서 갑자기 어두워지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자극을 받을 때면, 이유도 모른 채 심장이 빠르게 뛰고, 온몸이 굳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피해 달아나고 싶었다. 어쩌면 그 시절의 불안과 답답함이 오래, 깊이 스며든 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그 흔적 속에서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반응이 무엇인지, 왜 그런지를 알지 못한 채, 아버지의 빈자리와 어머니의 등 뒤에서 그저, 혼자 살아내는 데 익숙해져 갔다.





그날, 화재 현장에서 짙고 꽉 막힌 어둠이 나를 감쌌다. 그 답답함 속에서, 순간적으로 공기호흡기 면체를 벗어버리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밀려왔다. 숨은 거칠어졌고, 나는 공기용기 속 산소를 거칠게 들이마셨다. 돌아서 나가야 하나,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 목을 조였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호스, 끌고 와!” 그 말이었다. 호스는 소방차에서 보낸 물로 이미 무겁게 불룩 차올라 있었고, 그분 혼자선 그것을 끌고 나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나는 바로 어떤말을 외쳤다. 그리고 호스를 뒤에서 당기고 끌며, 그 끝이 향하는 방향으로 몸을 밀어 넣듯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의 어깨에 손이 닿았다. 그 순간, 목을 조여오던 불안은 불이 꺼지듯 조용히 사그라졌다.


센터로 돌아와 소방차에 물을 채우고, 공기호흡기 용기도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검게 그을린 방화복을 벗고 물로 씻긴 뒤, 차고지에 걸어 말려두었다. 젖은 호스는 천천히 정리했고, 샤워실에 들어가 묵은 연기 냄새를 씻어냈다. 그제야,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무도 보지 못한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불이 아니라, 내 안의 낯선 충동과 맞서고 있었다. 면체를 벗고 싶었던 순간,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 그 누구도 몰랐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어둠이 내 안에 남긴 건, 불길보다 더 뜨거운 답답함이었다.


나는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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