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를 잡고 나왔다면, 끝까지 믿고 가라.
경고음이 울렸다. 그건, 화재 현장의 짙은 어둠 속에서 공기용기의 산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밖으로 나가야 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밖'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시야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믿을 수 있는 건 손끝의 감각뿐이었다. 벽을 짚고 돌아 나가거나, 손에 들고 있는 호스를 따라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호스는 외부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호스를 잡고 나갔다. 무릎을 끌며 더듬더듬 나아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호스가 곧게 뻗어 있지 않았다. 어디선가 꼬이고 돌아가 있었다. 호스를 따라 몸도 돌아갔다. 점점 방향 감각이 흐려지고, 경고음은 계속 울려댔다.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을까' 불안감이 들었다. 그 순간 손에서 호스를 놓고 싶었다. 하지만 그분은 호스를 놓지 않았다. 그 어둠 속에서 만약 호스를 놓아버렸다면, 방향을 완전히 잃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분은 십오 년 넘게 현장에서 뛰어온 베테랑 소방관이었다. 두려움 같은 건 전혀 모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분도 어둠 속에서, 산소가 떨어져 가는 그 긴박한 순간에 손을 놓고 도망치고 싶었다고 했다. 숨이 턱턱 막히고 온몸을 조여 오는 답답함 속에서, 자신도 무서웠다고 했다. 내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살아가는 이들조차, 어쩌면 늘 불안과 싸우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손에 쥐고 있는 무언가에 집중했다. 나를 밖으로 이끌어줄 '호스'라고 믿었다. 그건, 내가 끝까지 붙들고 가야 할 끈 같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아침이 되자,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나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동안 있었던 일, 어둠 속에서 느꼈던 답답함, 그리고 그 감정이 마음을 얼마나 조여왔는지. 숨기지 않고 그대로 말했다. 아내는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그리고 불안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애초에 두려울 만한 상황은 없었다고 그러니, 자기 손만 잡으라고 했다. 그러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내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아내는 차 안에서 한 번도 마음 편히 눈을 감고 잠든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 안에서는 알 수 없는 불안이 늘 곁에 있었고, 자신도 어쩌지 못해 힘들었다고 했다. 그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십 년을 함께 살아오며, 그제야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 것 같았다. 우리는 불안도, 위로도, 그 모든 마음을 담아 꼭 안아주었다.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한 지 어느덧 십 년이 흘렀다. 긴 시간 동안 익숙했던 공간을 떠나, 나는 새로운 부서로 첫 출근하는 아침을 맞이했다. 소방서 후문을 지나 한층 아래로 내려가 탈의실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조용한 복도를 지나며, 마음 한편에 스미는 낯설고도 묘한 긴장을 느꼈다. 옷장을 열고 근무복을 꺼내 입으며, 새로운 시작에 마음을 다잡았다.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채우고, 거의 신어본 적 없던 구두를 신었다. 목에는 공무원증을 걸었고, 복도를 따라 다시 올라와 사무실 앞에 섰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직은 서먹한 얼굴들과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책상 앞에 앉았고 서류들을 정리해 가방에 담았다. 곧 그 가방을 어깨에 멘 뒤 밖으로 나갔다. 밖은 맑았고, 바람이 차게 불어왔다. 아직은 겨울의 한가운데, 찬 기운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나는 함께 팀으로 배정된 직원과 나란히 어느 건물 앞에 섰다. 우리는 건물의 소방시설이 적법하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관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도착한 관계자에게 조사 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뒤,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화물용 철제 승강기 앞에 섰을 때 천천히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승강기는 벌린 입을 닫았고, 철컥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그 순간 심장이 툭하고 두근거렸다. 낯선 공간, 닫힌 문, 흔들리는 기계음. 나는 물었다.
혹시, 지하로 내려가는 건가요?
관계자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위층으로 올라가요." 그 말에 두근거리던 심장이 이내 가라앉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에 멘 가방 끈을 슬며시 쥐었다.
공황장애를 마주한 이후, 일상 곳곳에서 가슴속 두근거림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또 어떤 순간은 이처럼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처음엔 그 감정이 두려웠다. 밀어낼수록 더 집요하게 다가왔고,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감정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혼잣말처럼, 그러나 누군가 분명히 듣고 계신다는 마음으로 내 상태를 털어놓았다. 그 순간, 나 자신에게도 처음으로 솔직해졌다. 그건 겁에 질린 내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것이었다. 나는 이미 그 감정을 여러 번 지나왔고, 그때마다 여전히 서 있었다. 긴장과 평온이 교차하는 그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