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는 누구였을까

신변확인

by 이유진 봄해
어느 날, 신변 확인 지령서가 프린트되어 나왔다.


우리는 귤나무가 늘어선 과수원 옆, 오래된 주택에 도착했다. 이미 관할 사회복지 공무원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방범창 너머 창문도 단단히 닫혀 있었다. 다만 창틈 사이로 텔레비전 소리만이 희미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사회복지 공무원에게 문 개방을 위한 파손 고지를 한 뒤, 현관 손잡이를 단번에 뜯었다. 문은 곧 열렸고, 우리는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섰다.


조용한 부엌을 지나, 미닫이문이 반쯤 열린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신발 밑창에 무언가 쩍 하고 들러붙는 소리가 났다. 그 방 안, 이불 위에 할아버지 한 분이 누워 계셨다. 턱과 몸을 만져보니 이미 굳어 있었고, 숨을 거둔 지 한참 지난 듯했다. 방 안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분 곁, 작은 둥근 상 위에 접시 하나가 놓여 있었다. 접시 위엔 껍질이 말끔히 벗겨진 감 한 개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 잘게 썰지도 않은 채, 그대로 놓여 있는 감. 선명한 주황빛은 여전히 또렷했지만, 수분이 빠져 조금 쪼그라들었다. 그분의 삶은 멈춰있었지만, 그 감은 말없이 시간의 흐름을 전하고 있었다.





집에서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했다. 네 남매는 집 안을 뛰어다녔고, 작은 집이라 숨을 만한 곳은 많지 않았다. 나는 어쩌다 옷장 안에 몸을 숨겼다. 좁고 어두운 공간. 이상하게도 답답함은 없었다. 문 밖에서는 아이들이 나를 찾느라 요란스러웠다. 나는 그 소란 속에서 발을 모으고 웅크렸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사라질 즈음, 그 말이 떠올랐다. "그분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폐쇄적으로 살아온 분이었습니다." 신변 확인 현장에 있었을 때, 사회복지 공무원이 했던 말이었다.


화재 현장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인명 검색과 화재진압은 동시에 진행됐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 방 안의 옷장도 꼭 열어봤다. 혹시 모를 요구조자를 발견할 수 있었고, 뜻밖에도 아이들이 그 안에 숨어 있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불이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면, 의외로 방 안으로 숨는다는 지, 옷장 안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래서 불이 나면, 아이들에게 신고보단 잘 도망쳐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옷장 안은 숨는 곳이 아니라, 갇히는 곳이었다. 고인이 된 아버지의 삶은 오랜 시간, 마치 스스로 옷장 안으로 들어가듯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아오셨다. 내게 이 옷장은 아이들의 눈을 피해 잠시 머무는 공간이었지만, 그곳에서 아버지는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기를 바랐다.


나도 가슴속 어딘가에 있는 작은 옷장 안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불을 끄고 문을 닫은 채, 그 안에서 숨죽이며 지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가둬놓고, 그 안의 어둠을 익숙함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혼자라고 믿었던 순간들. 말없이 앉아 있던 밤, 낯선 침묵 속에서 종종 숨이 막혔다. 그런데도 나는 꺼내 달라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시간이 흘러, 이 감정들이 사라지기만을 바랐다.


무연고로 살아오신 아버지. 그런데 내 마음도, 실은 오래전부터 심리적 무연고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외롭다고 말하지 못하고, 괜찮은 척하며 혼자 견뎌왔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침묵으로 버티며, 어머니를 밉다 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멀리 두며 살아온 건 아닐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지방으로 내려간 그날, 아버지는 수원에 계셨다. 그리고 스무 해가 지나, 무연고 시신을 확인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다시 찾은 곳도 수원이었다. 멀리 가지 못한 건, 바보스럽게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내가 옷장 안에 숨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어디 숨었는지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 나를 부르며 자기들끼리 웃었다. 결국 그들이 옷장 문을 열어주었다. 장난처럼 가벼운 손길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구조되었다고 느꼈다. 주방에서는 아내가 등 뒤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밥 먹자." 행복을 위해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괜찮았다. 소박한 식탁 앞에 불러주는 이들이 곁에 있었고, 그 따뜻한 부름이 나를 꺼내주는 구조였다.


그날, 작은 상 위에 놓여 있던 감 하나를 떠올렸다. 그건, 그분이 끝내 드시지 못한 마지막 한입 같았다. 하지만 멈춰버린 삶의 한가운데에서도, 그분은 여전히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계셨던 건 아닐까. 아버지 역시 누군가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 같다. 쪼그라든 채 말없이 놓여 있던 그 감처럼, 냉장고 문에 남겨진 아버지의 마지막 말에서.


꼭, 무연고 처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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